두 달여 뒤면 78세의 사상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다. 지난 8일 오전(한국시간) 승리선언 연설에서 바이든 당선인은 자신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될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는 적이 아니라 ‘미국인’이며 갈등 뒤에는 치유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국민의 나라이며, 미국 정신을 회복하고 중산층을 재건하고 미국을 세계에서 존중받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바이든 당선인의 연설은 거칠고 편 가르기를 조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격조 있고 감동적이었다.
국제협조주의와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외교 문외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예측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자가 지난 11월 8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세계에서 가장 많아 23만명을 넘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상당 기간 외교보다는 코로나 억제와 분열된 미국 사회의 극복이라는 국내과제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외교정책 자체가 미국 대통령 선거의 중요 쟁점이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우리 정부와 언론이 세심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온 것 같지도 않다. 뒤늦게 바이든 당선인이나 측근을 찾아 정부와 여당 의원들이 세계 최고 위험지역인 워싱턴을 가려는 것을 보면 정치 신인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던 4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여 씁쓸하기도 하다.
나아가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 국민과 핵심이익 보호를 위해 필요하면 군사력 사용(물론 최후의 수단)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은 미국 외교의 전통적 조류 가운데 민주주의 이념의 확산과 법의 지배를 강조했던 윌슨주의적인 외교와 미국의 물질적 번영과 안전을 중시했던 잭슨주의적 외교가 혼합된 양상을 보이는 것 같아 흥미롭다.
'포린 어페어스' 올해 6월호에는 “아시아에서 어떻게 전쟁을 막을 것인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필자는 2007년 신미국안보센터(CNAS)를 설립한 미셸 플루노이로, 그는 바이든 당선인이 부통령 시절인 2016년 6월 신미국안보센터 초청 연설에서 국방장관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에게 추천했다고 밝힐 정도로 신임이 두터워 사상 첫 여성 국방장관 후보로 유력시되는 국방전문가다.
논문에서 플루노이는 미·중 경쟁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첨예해질 것이라며, 전쟁의 위협을 줄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특히, 중국이 군사력을 증강하는 사이 오바마 행정부가 약속한 ‘아시아 회귀’가 실행되지 않아 아시아 주둔 미군은 10년 전 수준과 같아 억제력이 약화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지도자가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해 미국의 능력과 의지를 시험하려는 잘못된 판단이 미·중 직접충돌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플루노이는 억제력 재구축을 위해 미국이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동맹국이나 우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오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미·중 고위급 전략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과의 전화통화에서 한·미동맹의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긴밀한 소통을 강조했지만, 미국 측은 한반도의 평화정착보다 미국의 국익과 직결된 인도·태평양지역의 안보와 번영, 특히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한국의 공헌에 기대가 클 것이다. 이는 전 세계와 동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한국을 보는 미국과, 남북관계와 한반도 차원에서 미국을 보려는 한국 간의 시각차에서 비롯되며, 차이가 크면 클수록 한·미동맹은 약화되고 갈등도 빚어질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북한 핵능력의 축소를 전제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의사가 있다고 말했지만, 기고문에서 미국의 교섭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해 ‘비핵화한 북한’이라는 목적의 진전을 위해 동맹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과 지속적이며 협조된 대응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할 3000명이 넘는 고위 공직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무·국방 장관을 비롯한 각료와 실무책임자라 할 수 있는 차관보급의 고위관료와 백악관 참모진용이 갖춰지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중 간의 경쟁은 앞으로 상당 기간 격화될 것이며, 미국은 동맹 관계의 강화와 역할분담 증진을 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뒷받침하는 두 축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인데, 동맹국인 한·일 간 갈등이 지속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의 유·무언의 압력은 앞으로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행정권이 대통령에게 있는 미국의 장관이나 백악관 참모는 대통령의 결정을 돕는 보좌역에 불과해 장관을 ‘Minister’가 아닌 ‘Secretary’로 부르지만,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참모는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바이든 행정부에 기용되거나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을 낱낱이 해부하는 작업을 이제부터라도 서둘러야 한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인 지난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식 대화법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고 비판하면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라”고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에 자연재해라는 ‘3중고’에 직면한 북한은 현재 진행 중인 ‘80일 전투’를 마무리하고 내년 1월 초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해 대내외과제에 대한 중·단기 구상을 밝힐 것이다.
그러나 북·미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듣기에 좋을지 모르나 한국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서 멈춰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조급함을 보이면 보일수록 우리가 움직일 공간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여야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한·미동맹이냐 남북협력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데에는 당파적 이익만 있을 뿐 국익이 없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국제정세의 흐름에 맞춰 국익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하는 정치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