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아세안과 베트남에 미칠 영향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직까지 베트남 정부의 공식적인 반응은 없는 상황이지만 베트남 현지 언론들은 바이든이 당선된 직후 연일 관련 기사를 내보내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지의 대체적인 분석은 트럼프나 바이든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베트남과 미국과의 관계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베트남이 아세안 내 주요신흥국으로 부상 중이지만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아직 무역·통상 분야를 제외하고서는 미국과 크게 마찰을 일으킬 부분이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남중국해, 미국의 對중국 압력 약화?
남중국해(베트남명: 동해)는 베트남에는 가장 첨예한 정치 이슈이자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는 문제다. 그간 베트남과 아세안 국가는 중국과 대만의 양안(兩岸) 문제와 더불어 목소리를 높여왔다. 미국 또한 대중국 봉쇄정책이라는 거대 전략 속에서 양안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왔다. 특히 트럼프 때에는 폼페이오 장관 등 이른바 중국이 임의적으로 명시한 남중국해 구단선(U자 형태의 9개의 선)에 대한 강력한 언사와 군사적 행동도 서슴지 않아 베트남에 힘을 실어 주는 면이 많았다.한 국가의 외교정책만큼 변화가 크지 않고 보수적인 정책이 없다. 바이든 시대에도 트럼프 정부의 정책대로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 그리고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입장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주당의 기본 외교노선의 정강정책은 유럽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대서양주의로 대표된다. 공화당의 확장적 정책인 태평양주의와는 기본적으로 배치되는 노선이다. 이런 궤적에서 트럼프가 철저한 고립주의와 자국 이기주의를 선택하면서도 태평양 지역에 대해서 적극적인 개입을 해온 것은 공화당의 전통적인 방향이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가 전통적인 민주당의 정강정책을 따른다면 유럽 또는 전통적인 관계를 중시하면서 남중국해 문제는 공화당과 같은 직접적인 발언이나 개입이 아닌 국제규범과 국제상설재판소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 때처럼 미해군 항모를 베트남에 파견하는 등 군사적 행동이나 정부 핵심 인사의 강한 언급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인 자세가 다소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美, 베트남 환율조작국 지정하나?···MMT 정책에 따른 신흥국 평가절상 압박도
미국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지난 10월 미국 상무부는 베트남에 대해 환율조작국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베트남 환율조작국 조사는 해당부서인 재무부가 아닌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주관한다. 이는 베트남 중앙은행(SBV) 통화정책 그 자체의 문제점보다는 미국 대미무역 관계를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USTR은 베트남의 환율조작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면서 베트남의 불공정 행위로 미국의 무역에 제약이 생긴다고 판단할 경우 광범위한 보복 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무역법 301조를 적용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미국 재무부도 베트남이 중앙은행 등을 통해 달러를 매입하면서 베트남의 실질 실효환율을 3.5∼4.8% 떨어뜨렸다는 주장을 했다.베트남은 지난 2016년 페그제(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연동형 통화정책으로 전환했지만 변동폭은 여전히 3%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 베트남 동화의 안정적인 유지는 베트남 경제의 동력인 무역흑자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자 중요한 버팀목이다.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미국의 환율조작 심의에 앞서 "동화 평가절하는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투자자의 신뢰를 약화해 경제에 엄청난 해를 끼친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USTR 등 관련 기관에 베트남의 실상을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미국이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미 무역흑자가 매년 200억 달러 이상이 되어야 한다. 둘째, 국내총생산(GDP)의 2%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다. 셋째, 정부가 외환을 순매수하는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GDP의 2% 초과 또는 12개월 중 6개월 이상 순매수를 나타내야 한다. 베트남 관세총국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베트남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443억 달러(약 49조원)로 역대최대치를 나타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기준으로는 거의 두배에 해당한다. 또한 경상수지 흑자 비율과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 여부도 미국에게는 의심의 대상이다.
주목할 건 바이든 정부의 경제팀에 현대통화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의 지지자들이 포진하면서 이를 기반한 확장적 양적완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MMT는 정부 지출이 세수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원칙을 깨고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정부가 화폐를 계속 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MMT 방향에 따라 바이든 정부가 사실상 무제한적 재정확장을 시도한다면 이 피해는 고스란히 주변국을 넘어 신흥국까지 이전된다는 예측이 나온다. 이렇게 될 경우 베트남 동화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달러 대비 평가절하 압력을 크게 받게 된다. 또 수출 거래 기준이 기축통화인 달러라는 점에서 베트남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생산활동을 벌이는 현지 투자기업도 영향을 받게 된다.
◆'무역덤핑' 베트남산 철강제품 등 이슈
베트남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가격차별) 압력은 지난 수년간 계속돼왔다. 특히 철강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가 주를 이뤘는데 이는 베트남에 생산 공장을 둔 한국기업과도 연결되는 문제다.바이든 정부에서는 전통적인 다자주의 무역을 강조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무역기구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이 부활하고 다자주의 질서가 회복되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미 주요국들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은 상태로 새로운 다자주의 무역 블록이 베트남에게 얼마나 더 큰 부가가치를 안겨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다자주의를 통해 더욱 교묘해지고 날카로워질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 4년간 트럼프 정부에서 대 베트남 무역적자폭이 두배 이상 늘어난 점에 비춰보면 미국은 기존의 대 베트남 무역정책을 전환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대 베트남 통상압력은 지금보다 오히려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이 베트남과의 FTA 재수정을 요구하고 나선다면 중국 등 일부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우회수출을 하는 원산지 수출 악용문제와 연계해 베트남산 제품의 미국 수출은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수 있다.
◆탄소세, 신기후체제에 대한 베트남의 도전과제
탄소세는 베트남의 새로운 압박 요인이다. 트럼프 정부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고 상대적으로 이 문제에 소홀해 왔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자는 취임 후 바로 파리기후협약을 복원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기후협약은 바이든 후보가 부통령으로 재임한 오바마 정부의 주요 공적 가운데 하나다.베트남은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이어 동남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개도국의 특성상 제조업이 중심이 된 베트남은 기후 변화와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 중 하나다. 베트남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연간 8% 이상 줄인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나 관련 법안은 없다.
바이든 정부가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들고 나오면 베트남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빈그룹, 화팟그룹 등 베트남 주요기업들이 자동차, 철강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탄소세가 적용될 경우 관련 제품가격 상승 압박 요인으로 직결된다. 또 베트남 정부는 이미 원자력발전소의 계획은 무기한 연기하고 사실상 화력발전소 중심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도 고려 중이지만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이 또한 쉽지 않다는 평가다. 결국 기술력이 수반되지 않은 개도국에게 저탄소 경제성장은 가장 큰 도전과제 중 하나다.
◆인권과 민주주의, '초국가적 가치'
민주주의와 인권은 베트남에는 언제나 지적되는 주요 아킬레스건 중 하나다. 국제사회에서 베트남을 바라보는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소수민족 권리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당은 규범과 국제관례를 중시하면서 초국가적 가치를 지향해왔다. 특히 미국식 이념을 무기로 전세계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설파해왔다.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는 이러한 소프트파워를 중시할 공산이 크다.아직까지는 미·중 갈등 관계를 고려해 잠재적 우군인 베트남에게 미국이 이 문제를 쉽게 거론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유엔인권이사회 등을 통해 이 문제가 언제든지 수면 위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미국과 호주 등지에는 반베트남체제 인사들과 단체들이 이 같은 문제를 각국 의회에 상정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오바마 정부 시절에는 미국 하원의원들, 특히 아시아계 인구가 밀집된 캘리포니아 지역 선거구의 하원의원들이 미국 정부에 베트남의 인권 관행과 반체제인사에 대한 부당한 판결에 대해 비판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