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으로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가장 먼저 미국을 찾아 바이든 캠프 측 인사들과 접촉할 국내 인사가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내년 1월 20일까지 이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인사가 바이든 당선인 측 인사와 이른 시일 내 접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대통령 중 28년 만에 재임에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이 아름다운 용퇴를 선택하기보다 연일 불복 선언을 이어가고 있어 이 같은 비관에 한층 더 힘이 실린다.
바이든 차기 행정부 인사들과의 소통 채널이 약한 문재인 정부는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하지만, 역설적으로 미국 내부 상황마저 도와주지 않는 셈이다.
9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미국 출장길에 오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1일까지 워싱턴 DC에 머무를 계획이다. 하지만 강 장관이 바이든 측 인사와 접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각수 전 주일한국대사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국 정부가 전환기에 접어들었고 바이든 행정부가 구체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할 텐데 이 와중에 외국 장관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강 장관이) 아마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강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 인사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초청으로 방미한 와중에 차기 행정부 인사와 접촉한다면 외교 결례를 범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교수는 "(강 장관이) 폼페이오 장관과 회동한 후 바이든 캠프 인사를 만나면 트럼프 행정부가 불쾌해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가운데 여야 정치인도 곧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어서 주목을 받는다. 더불어민주당 '한반도TF(태스크포스)'는 단장인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을 필두로 오는 16일 미국을 향한다. 김병기·김한정·윤건영 의원 등이 동행한다.
국민의힘도 초당적 방미단 파견을 타진 중이다. 당 외교안보특별위원장을 맡은 박진 의원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여야가 함께 의회 차원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초당적인 의원 외교의 복원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며 "정부·여당에 필요한 조언과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았던 2008년, 바이든 당선인도 당시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아 서로 독대하는 등 소통해 박 의원이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캠프 간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모은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또한 바이든 당선인이 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지냈다.
다만 외교가에서는 국내 여야 정치인이 섣불리 움직이면 자칫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데다, 소송 등 과정이 남아 있는 탓이다. 인수위원회도 출범하지 않은 바이든 캠프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미국 상원 의원들도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만큼 시기가 애매하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공개적으로 나서기보다 외교 경험이 많은 사람이 물밑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차기 행정부 임기가 내년 1월 21일 시작되므로 1월 초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 관료나 의원들이 가기보다 현 정부에서 포지션을 맡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가야 한다. 로키(Lowkey·저자세)로 움직여야 하는 셈"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도 8일 일본을 방문, 미 대선 이후 펼쳐질 한반도 외교전에 가세했다.
박 원장은 이번 방일을 통해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을.비롯한 일본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문재인·스가 선언' 구상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 선언 내용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양국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화해 등 내용이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박 원장은 또 10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를 예방할 예정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