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서 삼성의 혁신과 글로벌화를 선도했던 분이 얼마 전 돌아가셨다. 2등이 없으면 1등도 없다. 2등을 하다가 1등으로 올라서기도 한다. 삼성도, 황영조도, 김연아도 그랬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는 10여 명의 선두그룹에서 한참을 달리다가, 33㎞ 부근에서는 세 명이 함께 달렸고, 조금 지나서는 일본의 모리시타 선수와 각축을 벌였고, 40㎞ 부근의 몬주익 언덕에서 치고 나가 우승했다. 같이 뛰는 경쟁자들이 있어야 기록이 향상된다. 아사다 마오가 있었기에 김연아도 더 분발했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적절한 경쟁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1984년에 시작된 이동통신 서비스는 1995년까지 10년 이상 SK텔레콤, 신세기통신 두 회사가 양분하고 있었다. 1996년에 세 회사가 추가로 진입하여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결과 이동통신 가입자는 1984년 3천여 명에서 1995년 100만 명, 1998년 1000만 명, 2010년 5000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20년 10월 현재 인구(약 5,200만 명)보다 이동통신 가입자(약 7,000만 명)가 훨씬 많다. 이동통신 서비스의 경쟁 정책은 휴대폰 및 통신장비 제조업은 물론 관련 설비와 인프라 분야까지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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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조직, 기업, 경제 전반에 걸쳐 선의의 경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강력한 경쟁자는 서로를 자극하는 메기와 같다. 메기 효과(catfish effect)는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 수족관에 천적인 메기 한 마리를 풀어놨더니 전에 비해 많은 수의 정어리들이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는 북유럽 어부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아놀드 토인비가 간파했듯이, ‘도전과 응전’이 인류 역사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민간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정부의 개입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태생적으로 경쟁이 쉽지 않은 공공부문이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 스스로 혁신과 구조조정을 촉진해 전문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것을 주문”했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2005년 봄 중소기업인 대회의 고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정책의 효과를 주문했고, 정책 자체를 혁신하라고 했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무조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으로 노력하는 기업을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15년 전의 채찍은 지금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에 시가총액이 크게 증가한 기업들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씨젠, 엘지화학, 네이버, 카카오, 쿠팡, 엔씨소프트 등이다. 대부분 바이오(B), 배터리(B), 인터넷(I), 게임(G) 등 신성장동력 분야의 기업들이다. BBIG 분야의 선도기업들이 뛰어가면 전통산업 분야의 기존 대기업들은 더 바빠져야 한다. 대기업들이 청년정신과 도전정신을 되살리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메기'가 필요하다.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삼성조차도 시간이 없다며 서두르는 비상 상황이다. 기업형 벤처투자(CVC)를 활성화하고 신성장동력의 발굴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재벌 대기업이 기존 벤처생태계를 잠식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상생하고 윈윈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평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창업(start-up)과 성장(scale-up)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창업한 기업이 강소기업으로, 유니콘과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해가는 건강한 생태계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경쟁하면서 파이를 키우고, 경쟁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지속가능한 생태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