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할 틈이 없네... 현금 쌓이는 삼성전자

2020-11-09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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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및 현금성 자산 최근 1년새 31.2% 증가

이재용 재판에 발목... '뉴삼성' 안갯속

'31.2%.'

최근 1년간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2020년 6월 연결재무제표 기준) 증가 폭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14년 와병으로 경영에서 손을 뗀 후 두 번째로 큰 상승치다. 삼성전자가 미래를 향한 행보에 주저하며, 불확실성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4일 하만 인수 후 4년 맞지만... 미완의 M&A로 남아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오는 14일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이사회에서 의결한 지 만 4년을 맞는다. 하지만 인수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삼성’이 본격화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답보하며, 업계가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증가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란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나 현금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는 수표, 당좌예금, 만기일이 1년 이내인 금융상품 등을 의미한다. 당장 단기자금 지출이 필요할 때 바로 동원 가능한 것이 장점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 때 비축량이 커진다. 돌발상황에 대응해 생존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부재 이후 미래경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크게 늘렸다. 2014년 16조575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올해 36조1096억원으로 6년 새 124.9%나 증가했다.

특히 이 회장의 회복이 불가할 것으로 기정사실화된 2015년(17조8652억원)에서 2016년(25조8407억원)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이를 포함한 삼성전자의 보유 현금자산(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 장기 정기예금 등)은 지난 2분기 기준 113조4000억원으로 1969년 회사 설립 이후 최대다.

재계 관계자는 “이자수익조차 발생하지 않는 현금을 과도하게 보유하는 것은 적절한 곳에 자금 투입이 안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최대한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적절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의 뒤를 잇는 이 부회장의 역할론이 커지는 배경이다. 사실 이 부회장이 2016년 삼성전자의 등기이사에 선임되며 첫 작품인 하만 인수를 성사시켰을 때만 해도 이 지경까지 올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이 부회장이 국내 사상 최대 인수합병(M&A)을 이뤄내며,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업계는 전망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뇌물혐의’로 2017년 2월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고 구속되며,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도 물 건너갔다.

다행히 2018년 2월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최근 6년 새 유일하게 줄어들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굵직한 M&A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는 여전히 재판을 비롯한 불확실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M&A 시급하지만... “이 부회장, 당분간 사업보단 재판 집중할 듯”
이 부회장의 재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뇌물혐의에 대한 2심 결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8월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재판도 새롭게 시작되면서 투자시계가 언제 다시 돌아갈지 미지수다.

실제 지난달 이 회장의 별세로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 중심 체제에서 새로운 걸음을 시작할 것이라는 일부 예상과 달리 회사는 다시 과거에 붙잡혔다. 이 회장의 별세 후 이 부회장의 첫 공식행보가 재판장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의 창립 51주년 행사에도 얼굴을 비치지 못했던 이 부회장은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뇌물혐의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삼성전자의 국내외 경쟁업체들은 새로운 먹거리 확보를 위한 M&A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의 핵심인 반도체에서 메모리 부문 세계 2위였던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0조원을 넘게 들여 인텔 낸드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삼성전자의 하만을 넘는 국내 최대 사상 최대 ‘빅딜’이었다.

미국 엔비디아와 AMD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최근 역대급 M&A를 성사시키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삼성전자를 따돌리고 점유율 격차를 더 벌려가고 있는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과 5G를 비롯한 차세대 이동통신, 전장사업 등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로 꼽는 분야에서 퀀텀점프를 하기 위해 대규모 M&A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이 부회장은 당분간은 큰 사업상 결정보다는 파기환송심 등 재판 준비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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