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는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인텔 낸드플래시 부문 인수합병(M&A)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텔은 데이터센터 eSSD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어 모바일 중심인 SK하이닉스와 서로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평가다. 현재 SK하이닉스가 낸드 부문에서 적자(영업이익률 –15%, 인텔은 20%)를 보고 있는 만큼 이번 거래로 향후 흑자전환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낸드 부문에서 모바일 단품 위주인 반면 인텔은 SSD 위주 고부가가치 제품에 주력하고 있어 양사의 수익성 격차는 큰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021년 말까지 70억달러를 지급하고 2025년 잔금(20억달러)을 치를 계획이다. 다만 10조원(90억달러)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비용발생에 따른 재무부담이 예상된다.
지난 6월 말 기준 SK하이닉스의 현금성자산은 5조3000억원 규모다. 지난해 말 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1조1266억원이며 올해는 전년 대비 업황이 소폭 개선되면서 1조4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소요되는 운전·투자자금 등을 감안(약 10조원)하면 현금성자산 활용 비중은 최대 50%를 넘어서기 어렵다. 결국 원활한 인수를 위해서는 외부 자금조달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 신용등급은 ‘AA0, 안정적’이다. 국내 신용평가사 3사가 제시한 하향검토 기준을 이미 충족하고 있어 자금조달 과정에서 차입 비중이 높아지면 등급 강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그룹으로부터 유상증자 혹은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이는 방안도 거론됐다.
그러나 이석희 대표는 “인수 자금 절반은 보유 현금성 자산과 향후 창출할 현금흐름을 활용하고 나머지는 차입을 중심으로 할 것”이라며 “필요시 자산유동화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키옥시아 투자금 회수는 검토할 수 있으나 가능성이 적다”고 언급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몇 년간 설비투자 감소와 배당 축소 등을 통해 재무악화를 최소화했다. 올해 역시 설비투자는 전년대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그만큼 M&A에 가용할 수 있는 재원에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사장이 자산유동화를 언급한 만큼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직접 자산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아닌 현재 보유하고 있는 매출채권이나 유형자산을 기초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매출채권은 5조6000억원, 유형자산은 4조500억원이다.
자산유동화는 기업 상환력보다는 유동화 대상 자산 현금흐름에 의존한다. 만기도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어 기업 상황에 맞게 자금 상환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자산유동화증권 발행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기업 신용도와 절연이다. 통상 유동화증권 신용등급이 기업 신용등급 대비 높아 조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즉, ABS 발행으로 기업 신용등급 하락 영향을 제한할 수 있으면서도 자금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이다.
자산유동화 시 무조건 기업신용등급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유동화 대상 규모가 기업 총자산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핵심 사업 여부가 중요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비핵심사업을 적정가치 이상으로 유동화하면 오히려 신용등급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구체적인 조달 방안을 내놓는 시기에 맞춰 신용등급을 평가할 예정”이라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은 다양하지만 단순 차입 비중이 높다면 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유동화를 통해 신용등급 하락을 방어하면서도 비핵심사업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등급 트리거 발생에 따른 ABS 조기상환 위험도 제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