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업 회생과제]① "여행의 목숨줄, 정부가 풀어달라"

202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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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몇달째 매출 제로...직원 모두 내보내

자가격리 기간 축소. 안전한 국가간 상호 여행 허용…

해외여행 살리기 방안, 정부 결단만이 업계 유일한 희망

코로나19가 장기화하자, 국내 여행사들이 '자가격리 일수 단계적 완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사진=게티이미지 제공]

올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확산 불씨가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 전례 없는 바이러스 확산세에 사상 처음 '매출 제로'를 경험한 여행업계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고용유지 지원금과 관광 융자 등 정부 지원을 통해 겨우 버텨왔지만, 사태 장기화는 업계 붕괴를 부추겼다. 최근 몇 년 새 디지털 보편화에 따른 글로벌 OTA(온라인 여행사)와의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던 업계는 점점 버틸 힘을 잃어갔다. 업계는 "자가격리 일수 완화, 트래블버블 추진 등 업계 회복을 위해선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업계 회복을 위해선 정부 지원과 규제 완화가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본지는 고사 직전에 처한 업계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여행업계 회복을 위한 과제와 업계 전문가 제언 등을 3회에 걸쳐 싣기로 한다. <편집자 주>


"코로나19 상황에 50여명에 달하던 직원을 5명으로 줄였지만, 이 마저도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직원들에게 11월 부로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담담하게 소식을 전하는 박영식(가명·55) A여행사 대표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혔다. 

박 대표가 십수 년 동고동락해오던 직원을 내보내기로 한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사세를 확장하며 승승장구하던 여행사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에 손 쓸 새도 없이 주저앉아버렸다. 이제는 정말 더는 버틸 힘이 없어졌다. 가족같은 직원들을 본인의 손으로 내보내는게 어디 쉬운 일이었으랴. 직원들한테 퇴직금이라도 줄 수 있을 때 내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쓰디쓴 눈물을 삼키며.

◆행복한 비명 지르던 그때가 그립다 

1989년 1월 1일은 우리나라 여행업계에 가장 의미 있는 날이다. 전 국민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에 진입하게 된  이날 이후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됐다.

박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여행업을 시작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진지 10년이 지난 시기였지만, 우리나라는 97년 IMF 사태에 휘청였던 터라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 수요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해외여행은 '사치'라고 여기는 국민의 인식도 팽배하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행사를 설립했기에 더 열심히 뛰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소비 계층을 공략하기 위해 상품도 차별화했다.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박 대표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대형 여행사는 아니었지만, 그의 여행사에서 출시하는 해외 패키지 여행상품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며 서서히 입소문이 났다. 그렇게 20여년을 보냈다. 

여행산업은 유독 외부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라고들 한다. 경제는 물론, 자연재해와 정치·외교적인 변수에도 끊임없이 휘둘린다. 그래도 박 대표의 회사 운영은 꽤 탄탄했다. 사스와 메르스, 사드 등 외부요인이 여행업계에 큰 타격을 안겨도 두터운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운영상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에 중국 여행 수요가 떨어지더니, 지난해에는 한·일 무역 분쟁이 '일본 여행 보이콧' 사태를 야기하며 해당 국가 상품 판매율이 급락했다.

물론 여행 트렌드가 과거 패키지 상품 중심에서 개별여행 중심으로 변화한 것도 운영 악화의 이유가 됐다. 모바일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온라인 여행 플랫폼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해외여행 수요는 지속 증가하고 있지만, 주말과 연차를 활용해 짧게 다녀올 수 있는 근교국 여행 수요가 크게 는 것이다.

일본과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은 우리나라와 가까우면서도 교통과 여행 인프라가 잘 마련돼 있어 패키지 여행사를 통하지 않아도 항공권과 숙박시설, 관광지 입장권 등을 여행자 본인이 설계할 수 있다.

유럽과 미주지역 패키지 상품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개별여행객을 위한 상품도 개발해 위기 극복 노력을 했고, 상황은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1월 하순, 전대미문의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기 전까지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었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월부터 지금까지 불면증에 시달린다.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조차 없다. 처음에는 '두세 달만 버티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감염 확산세는 좀처럼 주춤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여행사에 몰고 온 한파는 너무나도 혹독했다. 바이러스 확산이 시작된 2월부터 해외여행객 수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세계 180여개 국가가 한국발 입국을 금지 또는 제한하면서 하늘길까지 단절되자 그나마 있던 수요마저 사라졌고, 여행사는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박 대표가 운영하는 여행사 역시 말도 못 할 타격을 입었다. 사형이 언제 집행될지 몰라 불안에 떠는 사형수가 된 기분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코로나 감염 확산 초기, 정부는 여행업을 특별 고용지원업종으로 설정하고, '고용유지지원금'과 '관광 융자' 대책을 내놨다. 가뭄 속 단비였기에, 온몸으로 맞았다. 사업주 10% 부담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했다. 막힌 하늘길은 좀처럼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몇 달간 여행사 매출은 '0원'을 기록했다. 박 대표만 바라보는 직원들의 급여만큼은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각종 아르바이트를 찾아 거리로 나섰다. 낮에는 강의를 나가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했다. 쉼표 있는 삶?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하나로 버텨나갔지만,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이젠 사무실 월세를 내는 것도 힘든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직원들과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우리 꼭 다시 만납시다. 꼭······."

박 대표는 답답함을 금할 길 없다. 직원들을 향한 죄책감부터 좀처럼 꺼지지 않는 감염의 불씨, 언제 열릴지 모르는 해외여행길······. 어지럽게 뒤엉킨 마음은 24시간 그를 괴롭힌다. 폐업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다시 힘을 내서 여행사를 계속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20년을 여행사만 운영해온 사람이 이제 와서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모든 업종이 어려운 이 상황에서 말이지요. 여행사가 개점휴업 상태이지만, 다시 힘을 내야지요."

◆업계 살릴 구원자, 정부를 향해 외치다 

그는 정부를 향해 읍소했다. "여행업계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절규했다.

고용유지 지원금을 비롯해 관광 융자, 여행사 지원 등의 처방을 내놓은 정부이지만, 이런 대책은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는 되지 않기에,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그는 토로했다. 

"이제 정부가 나서줬으면 합니다. 외국에서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만 있으면 입국 후 자가격리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거나, 트래블 버블(코로나19 사태에서 방역 우수 지역 간에 안전막을 형성, 두 국가 이상이 서로 여행을 허용하는 협약)도 구축하는 등 조심스레 해외여행을 재개하고 있지 않습니까."

박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우리나라의 방역문화를 강조하며 "방역이 우수한 나라와 트래블 버블을 합의하고, 건강여권 등을 통해 자가격리 일수를 기존 14일에서 단계적으로 완화하면 여행수요는 폭발할 것입니다. 코로나 우울을 겪는 국민도 살고, 업계도 살고, 더 나아가 나라도 사는 길이 아닐까요"라고 호소했다. 

"정부의 결단만이 저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힘쓸 새 없이 쓰러져가는 1만여개 여행사를 부디 살려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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