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국감을 앞두고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서울시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을 것으로 예측됐지만, 실제로는 여야 할 것 없이 대다수의 의원들이 해당 이슈에 대해선 질의를 아꼈다.
이날 이은주 의원은 "서울시가 모범적으로 공들여 성희롱·성폭력 방지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현장에선 먹통이었다"며 "매뉴얼이 최고 권력자 앞에서 작동을 멈춘 데 어떤 이유가 있느냐"고 서정협 권한대행에 질의했다.
이에 서 권한대행은 "내부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내부 시스템을 돌아보고 있다"며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작동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조직문화 차원도 있다"고 진단했다.
서 권한대행은 "비서실에서 비서요원을 뽑을 때 따로 공문을 올리거나 지원을 받지는 않는다"며 "인사과가 판단에 따라 적절한 사람을 추천하고 비서실에서 뽑는다"고 말했다. 또 적절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따로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따로 없다"고 짧게 답했다.
"공적업무와 사적업무는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이 의원에 질의에 서 권한대행이 "상식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답하자 이 의원이 "2017년 1월 설을 앞두고, 2018년 9월 추석을 앞두고 비서가 공관에서 먹을 명절음식을 구입했다"며 "이것이 비서실 공무원인 비서가 할 공적업무냐"고 재차 묻기도 했다. 부당한 업무지시로는 앞서 알려진 혈압체크, 대리처방 등도 언급됐다.
이 의원은 "사적 업무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근로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향후 비서 채용에 관한 것, 비서실 업무에 대한 상세한 매뉴얼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서 권한대행도 "동의한다"며 "대책위에서 해당 내용까지 포함해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질의 말미에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 2차 가해도 지적됐다. "아직도 피해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악의적 편집영상과 정보가 떠돈다. 명백한 성폭력 특례법 위반"이라는 이 의원의 지적에 서 권한대행은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동료로서, 조직이 하루 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시청 밖 서울도서관 앞에서는 시민사회 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감에서 박 전 시장의 비위를 꼬집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물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는 평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이 출범을 알렸다. 내년 보궐선거 때는 성평등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활동을 펼치겠다고 예고했다.
전국 288개 여성, 노동, 환경, 인권, 청년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동행동은 향후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2차 가해 대응 △지방자치단체 권력 견제 및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문화 근절 등 3가지 목표를 실현할 계획이라 밝혔다.
피해자는 이날 기자회견에 메시지를 보내 그간의 심경을 밝혔다. 이날은 피해자 측이 검찰에 성희롱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한 지 딱 100일째 되는 날이다.
피해자의 메시지를 대독한 도경은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법적 절차들의 상실과 그로 인한 진상규명의 어려움, 갈수록 잔인해지는 2차 피해의 환경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을 느끼며 절망하다가도 저를 위해 모아주시는 마음 덕분에 힘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메시지는 2차 가해를 호소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도 활동가는 "저의 신상에 관한 불안과 위협 속에서 거주지를 옮겨 지내고 있다"며 "2차 가해 속에서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며, 특히 그 진원지가 가까웠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뼈저리게 몸서리치며 열병을 앓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100일, 저에게는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다"며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서 진실을 규명하고 우리 사회가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반드시 지켜보고 싶다"고도 했다.
익명의 서울시 공무원, 2014년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의 피해생존자, 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지은 씨 등이 메시지를 통해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