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국보 사찰 ‘도다이지’ 난간에 폭이 40cm에 달하는 크기의 낙서가 발견됐다. 예리한 도구로 긁어 새긴듯한 글씨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한글'이었다. 현지 경찰은 폐쇄회로(CCTV) 화면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낙서를 한 사람을 찾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별안간 한글이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두오모 성당 낙서 제거 작업을 맡았던 건축가 베아트리스 아고스티니는 당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낙서가 눈에 거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기념물에 진정으로 해가 된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인들의 ‘인증’과 ‘흔적 남기기’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특히 이름난 관광지나 유적에 가면 벽면이나 기둥 등에 “ OO 다녀감” “ㅁㅁ아 사랑해~” 와 같은 한글 낙서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이런 탓에 아예 ‘낙서 금지’ 경고 문구를 한글로 쓴 곳이 있는가 하면, 경고판의 낙서 사진에 ‘한글’이 담겨 있는 경우도 많다.
‘어글리 코리안’은 그 역사만 해도 벌써 30년 가까이 된 유구한 멸칭이다. 1989년 여행 자유화가 전면 시행되면서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비행기에서 양말바람으로 돌아다니고 큰소리로 떠들며 아무데서나 김치를 꺼내 먹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 세련된 세계인으로 거듭나자는 의미에서 탄생한 말이다.
그러나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어글리 코리안’의 위상은 건재하다. 우리의 인식이 나아졌다 한들 이미 세계 각처에 새겨진 우리말 낙서는 좀처럼 지워질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인 관광객 유입이 대폭 줄어든 것을 다행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해외만 거론할 일도 아니다. 밖에서 새는 바가지는 집에서도 샌다. 이미 우리나라 관광지, 유적지에도 낙서는 곳곳에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다.
자기 이름 석자를 자랑스러워 하는만큼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도 생각해야 할 때다. 세종대왕의 고백처럼, 이는 우리를 어여삐 여겨 만든 글자다. 적어도 이렇게 쓰라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9일)은 한글이 574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