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올 하반기에 우리 외교는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다음 달 초 미국과 중국의 외교 수뇌부 방한이 예정됐다. 이들은 한국의 ‘쿼드(Quad, 4개국 안보협의체)’ 참여를 두고 상반된 요구를 타진할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 외교장관회의에 참석 후 방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의 의제 중 하나가 역내 국가의 확대 참여 문제고 우리가 명단에 올라있다. 따라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공산이 크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일본을 먼저 방문해 동태를 살핀 후 우리에게 압박 메시지를 전하러 올 기세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쿼드 참여를 우회적으로 피하기 위한 발언을 일찌감치 내놓았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 목적을 암시하는 질문에 선을 그어버렸다. 25일 미국의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화상회의에서 그는 한국이 쿼드 플러스에 가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공개적으로 일축했다.
외교는 ‘상황적(situational)’ 대응을 요구하는 생물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고 유동적으로 반응해야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외교에는 절대적 이득(absolute gain)이 없고 상대적 이득(relative gain)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외교의 목적은 국익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절대적 이득을 신봉한다. 미중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신세를 면하고자한다. 따라서 미중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과제를 흑백논리의 관점에서만 보려한다. 그러나 진영논리가 사라진 오늘날의 외교세계에서는 흑백논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만이 유일한 길이다.
이제 ‘쿼드’ 문제는 참여와 불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외교적 사명이 세계자유질서의 수호라면 더 이상 흑백논리로 응대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이 ‘쿼드’에 민감하다 해서 중국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 대신 중국의 과민한 반응으로 야기될 수 있는 잠재적 손실과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역점을 둬야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 측의 최근 발언에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없다. 우리의 국익 관점에서 입장 설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익 계산은 ‘쿼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전제한다. 우선 ‘쿼드’의 기반인 ‘인도-태평양전략’구상의 발단배경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부족하다. 이를 단순히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일본의 모략으로 치부한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인도-태평양전략’구상의 의도와 목적, 전략과 목표를 알 리가 만무하다. 그럼 결과는 자명하다. 우리 주변지역의 판세를 읽지도 못한다.
둘째, 판세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국익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이 구상은 단순히 다른 국가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공세적이고 공격적이며 수정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처럼 기존의 국제질서에 편입하고 융합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이런 견제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작금의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나서고 있다. 자신의 영해권을 자신만의 잣대인 이른바 ‘9단선’과 ‘제1도련선’ 등으로 새로이 규획하려한다. 중국이 자신의 영해를 이런 식으로 확장하고 통제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는 우리나라다. 이 범위에 유일하게 포함되는 나라가 우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다른 주변 국가는 범위 밖에 위치한 섬나라와 반도 국가들이다.
셋째, 외교에서 도덕과 윤리는 설득력이 없다. 강경화 외교장관의 발언은 ‘쿼드’가 본질적으로 도덕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이런 신념이 확고하다면 중국의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발언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대 중국 외교에서 이런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다. 특히 우리의 주권이익과 보편적 가치를 중국 외교에 투영하지 못하고 있어 국민의 자존감을 격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이른바 ‘쿼드(Quad)’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다자안보협의체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협의체가 최근에 구상된 것으로 오인한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새로운 지리적 개념이 최근에 도입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집단안보체제 개념의 발상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동아시아의 집단안보체제 개념은 1955년에 태동됐다. 당시 미국은 이를 3개 지역에서 주도했다.유럽에서는 ‘나토(NATO)’, 중동에서는 이란을 핵심 축으로 이른바 ‘테헤란 액시스(Teheran Axis)’가 기획됐다. 6.25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NAT)을 1954년에 집단안보체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테헤란 액시스’도 1955년에 시작됐지만 결국 1967년 중동 정세 변화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동아시아에서는 1955년 동남아조약기구(SEATO)를 출범시켰지만 시대적 정치와 역사의 이유로 기대한 결과를 보지 못했다. 첫번째 이유로, 역외 국가로 참가한 영국과 프랑스의 반대가 있었다. 전후시기에 동아시아에까지 전력을 투입하기에 여력이 없었다. 둘째, 일본의 참여가 불가능했다. 이른바 ‘평화헌법’으로 미일동맹관계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역내 군사 활동이 불허되었다. 셋째, 1969년의 ‘닉슨 독트린’ 때문이다. 미국이 아시아의 문제를 아시아인이 해결해야하는 입장을 천명했다. 역내 문제에 미국의 간여를 축소하는 일환으로 미군의 감축 조치도 도한 선언됐다. 넷째, 1973년의 베트남전쟁 종결이다. 이로써 미국에는 ‘닉슨 독트린’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전략적 판단이 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1972년 중국과 일본 수교협상에서 중국 측(덩샤오핑)은 일본과 수교협상 때 센카쿠열도의 국경문제를 놓고 “쟁론은 뒤로하고 공동개발(搁置争议,共同开发)”의 원칙을 제시, 일본 측의 양해를 구한 것이 유효했다. 이 원칙은 훗날 남중국해 일대의 영해분쟁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의 눈에는 적어도 2015년까지는 말이다.
중국을 견제하고자하는 동아시아 집단안보체제 구상이 재개된 것은 기존의 지역질서에 대한 중국의 입장변화 때문이다. 가령, 2015년 4월 시진핑 국가 주석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남중국해의 인공섬의 요새화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귀국 직후 이런 약속을 번복하고 이들 섬의 군사화를 가속화했다. 미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에게 중국의 행위는 지역 내에 보장되어야하는 이른바 ‘자유항행’의 권리를 중국이 통제하려는 움직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런 중국의 행위에 대한 역내 국가의 의구심이 이듬해 사실로 입증됐다. 외교적인 해결노력을 중국이 무시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필리핀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AC)에 재소한 영해분쟁의 승소 판결을 중국은 수용할 수 없다고 즉각 선언하고 나섰다. 이런 중국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에 역내 국가의 선도가 요구된다. 지금은 협의체 수준에 불과하지만 ‘쿼드’의 전력화는 시간문제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되든 이의 적극적인 추진을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판세에 따라 미중에 대한 우리 국익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외교 레버리지를 증강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