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적지 않은 이들이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크게 점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전략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또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은 핵심 이익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양국간 갈등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은 '관세 폭탄'을 시작으로 기술·외교·군사· 교육·금융 등 전방위적로 확산하고 있다. 기술이전 금지, 서방기업 인수합병(M&A) 제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 장비 수입 금지,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 중단,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 매각 강요, 위챗(WeChat) 퇴출령,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에 반도체 장비 수출 차단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막상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공격 성과는 초라한 것으로 평가된다. 관세 폭탄을 투하하고 수입제한 조치를 발표했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
관련기사
미국이 얻은 것은 별로 없고, 오히려 중국만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 이는 미국 경제나 기업에게 오히려 더 많은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 美 경계심 촉발한 '중국 굴기'
미국은 그동안 글로벌 밸류체인(GVC-Global Value Chain, 가치사슬) 최상단에 위치해 왔다.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그 지위에 도전한 게 미·중 무역전쟁의 화근이라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동의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의 기축통화 추진, 21세기 실크로드 일대일로(一帶一路) 추진,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 등 일련의 '중국 굴기' 전략들이 미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 정면충돌 자제하는 美·中
미국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 미국이 구축해놓은 질서 안에 중국이 안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중국이 국제 질서를 지키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며 급성장하자, 미국은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고민은 당장 중국의 제조업 밸류체인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미국은 제조 밸류체인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중국과 국지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도 당장 미국과 정면 대결 양상으로 갈 필요가 없다. 중국 또한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조업 생태계가 동남아 국가로 이전을 완료하면 중국의 위상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중국은 자체 시장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력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G2(주요2개국)'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 美 제재에···'자력갱생'으로 맞서는 中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과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인 AMD가 제재 대상인 화웨이에 일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 상무부는 허가했다. 불허할 경우 오히려 미국 기업에 미치는 타격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에 대해서도 수출 규제를 통보했으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세계의 자본들이 중국 투자로 몰려 들어 최근 중국 위안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보다 중국 경제를 유망하게 보고,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력갱생(自力更生) 의지가 강한 중국은 미국 기술 탈피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 바 '난니완 계획(南泥灣計劃)'이다. 1941년 3월 항일전쟁 시절, 식량이 부족해진 중국은 산시성 시안 지역의 난니완 황무지를 개간하는 대생산운동을 펼쳐 식량을 자급자족해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술자립을 통한 국산화 전략, '타산계획(塔山計劃)'을 통해 중국은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 중국의 반격 "블랙리스트 작성"
최근 중국 상무부는 자국 기업에게 해로움을 주는 외국기업에게 불이익을 주는 명단(블랙리스트)을 작성할 수 있는 규정을 발표했다.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외국기업은 중국 수출·입 활동이나 중국 투자가 금지 또는 제한된다. 중국은 미국에게 충격을 가할 수 있는 블랙리스트를 이미 작성해 놓고 보복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은 '옛 것은 오늘을 위해 쓰고 서양의 것은 중국을 위해 쓴다(古爲今用 洋爲中用)’고 말했다.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보복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 편에 서서 코로나19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화웨이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는 호주가 먼저 타깃이 됐다. 중국은 이미 호주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호주산 소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호주산 포도주에 대해선 반덤핑 조사, 반 보조금 조사를 실시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고, 외국인 입국 완화 정책을 펼치고, 대규모 국제행사를 개최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마오쩌둥이 일찍이 항일 전쟁에서 보여준 ‘적이 전진하면 물러나고, 적이 주둔하면 교란하고, 적이 피로하면 공격하고, 적이 물러나면 추격한다(敵進我退 敵駐我擾敵疲我打敵退我追)’ 전술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미·중 갈등 속 한국의 처신은···
미·중 패권전쟁은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촉발해 우리에게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분위기다. 한·미 동맹을 내세워 미국 편에 서야한다고 주장하거나, 반대로 중국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 자유무역주의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대국주의는 힘의 균형을 흔들고 자유무역을 해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념들이다. 한·미동맹으로 맺어진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무역을 제한하는데 적극 참여 할 수도 없고, 미국과 일본을 합친 액수보다 더 많은 교역을 하는 중국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우리는 반드시 한쪽 편만 들어야 하는 선택지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 사이의 전쟁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한쪽 편을 든다는 것은 국익에 맞지 않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들간의 국제 정치적인 전략에 휘둘릴 게 아니라,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주체적인 역량을 확보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수십년 간 지속되고 있는, 중국경제 위기론이나 정권 패망론 같은 근거 없고 무책임한 주장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상황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어 자제가 필요하다.
대국간 분쟁이 우리에게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과 중국이 갈등을 벌이는 게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극 나서서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다. 다만, 중립을 취해 미국으로 하여금 우리가 중국에 기운 것으로 인식하게끔 하거나, 한·미·일 군사동맹에 가입해 중국을 완전히 적을 만드는 상황도 피해야 한다.
우리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이 국가의 운명을 가름할 정도로 중요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중국의 정·계에 정통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인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강대국을 대적할 만한 주체적인 전략이 있는지 분명하지도 않다. 친미(親美)니 친중(親中)이니 하면서 근거 없는 공론으로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