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가 16일 제99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지난 7년 8개월간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시대가 막을 내리고 스가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외교가에서는 스가 내각이 아베 정권의 온전한 계승을 표방한 만큼 '제2의 아베 내각'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베 정권 기간 냉담했던 한·일 관계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내달 예정된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더불어 지일(知日)파로 알려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역할론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출범 초부터 '아베 내각의 아류'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는 스가 정권이 예상과 달리 한·일 관계 회복의 물꼬를 틀지 관심이 쏠린다.
스가 신임 총리는 이날 오후 열린 임시국회 중의원(하원) 본회의에서 총 투표수(462표) 중 314표를 득표해 과반 지지를 얻었다.
이어 실시되는 참의원(상원) 지명선거에서도 자민·공명 두 연립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해 스가 총리 지명은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이날 공식 출범하는 스가 내각에서는 아베 내각의 주요 각료 11명이 유임(8명) 또는 보직 변경(3명) 형태로 그대로 자리를 이어간다.
스가 총리가 지난 7년 8개월간 수행했던 관방장관에는 관방부 부(副)장관 출신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이 발탁됐다. 그는 제2차 아베 내각에서 2년 10개월간 스가 총리와 발을 맞춘 바 있다.
동시에 행정개혁·규제개혁 담당상으로 자리를 옮긴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 후임에 아베 전 총리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자민당 중의원 의원이 뽑혀 눈길을 끈다. 기시 의원 역시 극우파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스가 총리가 지난 아베 전 총리 집권 동안 '아베의 입' 역할을 수행했던 데 이어 스가 정권의 인적 구성조차 아베 내각을 빼다 박으며 한·일 관계 역시 아베 집권기와 별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다수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정부가 오는 11월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인 제9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계기에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차례 정상회담만으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를 두고 맞붙은 양국 관계가 개선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는 관리 차원에서 정상회담 개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일본도 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한국 정부의 정상회담 개최 제안을 뿌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스가 총리의 집권으로 양국 관계의 틈새가 조금 열린 셈"이라며 "물밑협상 등으로 현금화를 유보시키는 등 정부가 지혜를 발휘하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나아가 국무총리에 이어 여당 수장 자리에 오른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역할론도 주목을 받는다.
이 대표는 국내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지일파로 꼽힌다. 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하던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특서를 들고 일본을 방문, 스가 총리와 면담하기도 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자민당의 카운터파트(대화상대방)인 한국 민주당 대표가 한·일 관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전날 "이 대표가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지 않다"고 보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