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30대 행장님 믿고 위기 넘는다" 中 은행권 파격 실험

2020-09-1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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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경영위기에 젊은피 수혈

중소 은행 '3040' 행장·부행장 발탁

증권맨·박사·창구직원 등 출신 다양

메이저도 기웃, 은행권 트렌드 되나

[그래픽=이재호 기자 ]


중국 은행이 위기다. 올 상반기 공상·농업·건설·중국은행 등 4대 은행의 순이익 감소폭은 두 자릿수에 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몸이 단 정부의 압박에 무리하게 대출을 늘리고 금리를 낮춘 탓에 수익성과 건전성이 동반 악화하고 있다.
공룡 은행들도 허덕일 정도니 지방 중소 은행들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구태의연한 경영 방식으로는 위기 탈출이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은행들이 젊은 피 수혈에 나섰다.

30대 후반의 행장, 30대 중반의 부행장이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경영난 극복을 위한 파격 실험이 성과를 거둬 중국 은행권의 새 트렌드가 될지 주목된다.

◆코로나19 직격탄에 수익성·건전성 '흔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상업은행의 순이익 총액은 1조 위안으로 전년보다 9.4% 감소했다.

중국 증시에 상장된 36개 은행 중 절반인 18곳의 순이익이 감소했고, 16곳은 8% 이상 급감했다.

금리 인하로 이익은 줄었는데 부실채권 증가로 비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인민은행은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수차례 인하했다. 경영 악화가 심각한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올 들어 1년 만기 LPR은 0.3%포인트 낮아졌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의 신규 대출 금리는 0.4%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상반기 말 기준 순이자마진(NIM·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 간 격차)은 2.09%로 지난해보다 0.11%포인트 하락했다.

무리한 대출 확대로 대손율도 높아졌다. 중국 정부는 기업들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 어떻게든 대출을 늘리라고 팔을 비튼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제대로 된 심사 없이 대출을 해주다 보니 부실채권이 불어나고 있다.

상반기 말 기준 중국 상업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은 2조7364억 위안으로 1분기 말보다 1243억 위안 증가했다. 부실채권 비율은 1.94%로 0.03%포인트 상승했다.

지방의 도시상업은행은 3%대, 농촌상업은행은 4%대에 달한다는 게 정설이다.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은행은 대손충당금을 더 쌓을 수밖에 없다. 중국 1위인 공상은행은 상반기에만 충당금 추가 적립으로 자산 규모가 1255억 위안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정부는 은행권을 향해 당분간 이익 낼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 6월 국무원 회의를 주재하며 "은행권은 올해 기업을 위해 1조5000억 위안의 이익을 양보하라"고 압박했다. 지난해 전체 순이익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글로벌 500대 은행 부행장 된 '증권맨'

장쑤성 난징에 본점을 둔 쯔진(紫金)농상은행(쯔진은행)은 지난달 26일 새 임원진을 소개했다.

지방 은행권에서 잔뼈가 굵은 48세 스원슝(史文雄) 행장을 영입하면서 1980년생 쉬궈위(許國玉) 부행장을 승진 임명했다.

금융학 박사인 쉬 부행장은 중국 4위 증권사인 화타이증권에서 연구소 연구원과 소매 담당 팀장 등으로 재직한 증권맨이다.

이후 중국 최대의 성급 농촌금융 국유기업에서도 근무하는 등 시장과 관료 조직을 섭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난해 9월 쯔진은행 행장조리로 영입된 후에는 온라인 마케팅 강화, 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한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 확대, 원스톱 대출 상품 개발 등을 진두지휘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1년 만에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코로나19 여파에도 신규 사업 발굴에 주력해 온 쯔진은행은 올 상반기 7억2900만 위안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5% 증가한 수치다. 투자 수익은 4억3200만 위안으로 146% 급증했다.

총자산은 2112억 위안으로 연초 대비 4.92% 늘었다. 수신과 여신 총액도 각각 9.02%와 13.54% 증가했다. 부실채권 비율은 1.68%로 지방 은행 중에서는 안정적인 편이다.

기업 가치가 높아지자 지난 7월 45억 위안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도 성공리에 마쳤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중국 100대 은행 중 96위에 올랐고, 영국 더 뱅커가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은행에도 처음(497위) 진입했다.

중국 금융시보는 "30대가 은행권의 새로운 신진 세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쉬 부행장도 본점 PB센터 오픈 등 서비스 개혁을 통해 실적 향상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장쑤성 장자강은행의 신임 행장으로 선임된 41세의 우카이 행장(왼쪽)과 쓰촨성 쑤이닝은행을 이끌게 된 39세의 저우미 행장. [사진=바이두 ]


◆구조조정 성행하지만…근본적 해법 아냐

지난 7월 산시(陝西)성은 위린위양(楡林楡陽)은행과 헝산(橫山)은행 등 2개 농촌상업은행을 합쳐 하나로 만들었다.

부실채권 급증에 따른 디폴트 사태를 막고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한 조치다.

하루 뒤에는 장쑤성에서 퉁산(銅山)은행 등 3개 농촌상업은행을 합병해 만든 쉬저우(徐州)은행이 문을 열었다.

산시(山西)성은 진중(晋中)은행 등 5개 도시상업은행을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제 둔화에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치면서 생사의 기로에 선 은행들이 급증하고 있다.

베이징과기대 경제관리학원의 류덩(劉澄) 교수는 "구조조정이나 합병이 중소 은행 개혁의 올바른 방향은 아닐 수 있다"며 시장화와 서비스 개선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지방은행, 30대 행장·부행장 발탁 붐

자력 갱생을 외친 은행 중 상당수는 젊은 피 수혈을 통해 해답을 찾고 있다.

장쑤성 소재 장자강(張家港)은행은 최근 고위급 임원을 30~40대로 전면 교체했다.

2017년 1월 중국 농촌상업은행 중 최초로 상장에 성공한 곳으로,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4.15% 늘어난 4억9300만 위안을 기록했다.

장자강은행은 같은 장쑤성 내 장인(江陰)은행에서 국제업무부와 자금운영부 등을 이끌던 41세의 우카이(吳開) 부행장을 신임 행장으로 스카우트했다.

장인은행은 상반기 중 전년보다 1.54% 증가한 4억800만 위안의 순이익을 달성하며 선방했는데, 우카이 전 부행장의 공이 컸다.

우 행장을 보좌할 인재로는 1985년생 동갑내기인 타오이(陶怡) 부행장과 우자창(武甲强) 행장조리가 낙점을 받았다.

35세 여성인 타오 부행장은 소액금융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우 행장조리는 현급 농업생산합작사의 창구 직원으로 시작해 꾸준히 입지를 끌어올린 사례다.

우카이를 떠나 보낸 장인은행은 1986년생 왕카이(王凱) 부행장을 승진 임명했다. 상장 은행 중 최연소 부행장이다.

저장성의 항저우은행은 지난 6월 1980년생 왕즈선(王志森) 증권사업 대표를 새로 영입했다.

2008년 설립된 쓰촨성 쑤이닝(遂寧)은행은 임직원 800여명의 작은 은행이다.

조직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시점이라고 판단한 류옌(劉彦) 회장은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 세대인 1981년생 저우미(周密) 부행장을 행장으로 발탁했다.

명문 시난재경대 금융학과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저우 행장은 쑤이닝 지역사회가 자랑하는 인재다.

2017년과 2018년 각각 온라인 금융상품 최고상과 본위화폐 시장 최고상을 수상한 그는 올해 '쑤이닝 영재 천인계획(千人計劃)' 대상자 35명에 포함됐다.

저우 행장은 지난달 31일 진행된 업무보고에서 "코로나19 여파로 경영 여건이 악화하고 부실 자산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전 간부와 직원이 힘을 모아 신사업을 발굴하는 한편 임금 개혁 등 당면 과제도 해결해 나가자"고 독려했다.

중소 은행들만 젊은 인재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아니다. 중국 최초의 전국구 상업은행인 광다(光大)은행은 한국의 웬만한 시중은행과 규모가 비슷한 1급 분행의 분행장 상당수를 바링허우 세대로 채웠다. 최연소는 33세였다.

중국증권망은 "대부분의 30대가 '996 근무제(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어떤 이는 한 은행의 행장이 되기도 한다"며 "이렇게 발탁된 신예들이 시대의 물결을 용감히 헤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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