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67)] 노자와 다석은, 놀라운 '없음'을 발견했다

2020-09-1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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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1676~1759)의 노자 출관(老子出關). 그림 = 간송미술관 소장]


국경 검문소 함곡관서 써준 도덕경

노자는 주나라의 정치 문란을 슬퍼하며, 멀리 떠날 결심을 했다.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은 아랍지역(서역)이었다. 태어날 때  81세였던 걸 감안하면 150세쯤 됐을 때였을까. 왜 하필 아랍이었던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를 '접속'했던 우주인인 만큼, 노자는 다른 세계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서쪽의 진나라를 지나, 국경 검문소가 있는 함곡관을 지나간다. 두 골짜기 사이에 상자처럼 움푹 패인 고개에 세워진 관문이었는데, 이곳의 검문소장은 윤희였다. 어느 날 아침 나절 멀리 동쪽에서 푸른 소를 타고 오는 백발노인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윤희는 뭔가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 그에게 나아가 큰절을 한다. 그는 노인에게 대접을 한 뒤, 어지러운 세상을 밝힐 몇 말씀을 남겨달라고 간청을 한다.  윤희가 내미는 대나무 조각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다보니 오천 글자가 되었다. 도경과 덕경 81장이 다 씌어지고 노자가 다시 여장을 챙길 때, 윤희가 관직을 팽개치고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하겠다며 따른다. 노자는 푸른 소, 윤희는 흰 소를 타고, 서역의 사막을 향해 떠났다.

도덕경 마니아였던 톨스토이와 하이데거

두 사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역사상 둘의 자취는 사라진 것 같다. 1788년 영국의 천주교인이 중국에 왔다가 노자의 책을 들고 돌아갔다. 이후 유럽에는 도덕경 신드롬이 일었다. 로마의 보체 신부는 이 책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1828~1910)는 동양사상에 심취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출판업자가, 톨스토이에게 물었다. "당신의 생과 문학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이는 누구입니까?" 그때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와 맹자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노자에게 받은 영향은 그보다 훨씬 거대했다." 러시아에서 도덕경을 퍼뜨린 사람은 톨스토이였다.

노자에 열광한 또 하나의 사상가는 독일의 하이데거(1889~1976)였다. 그는 유럽에서는 튀는 철학자였지만, 동양에서 보자면 매우 상식적인 지식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서양의 존재론 사이에서 '없음'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하이데거는 도덕경 11장의 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이란 구절에 매료됐다. 이 말을 풀면 '있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없음이 어떤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란 의미다.

컵 둘레의 '있음'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안의 '없음'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문이 '열릴 수 있음'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열리지 않음(닫힘)'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방의 사방 벽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안의 빈 곳(없음)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마차의 바퀴테두리와 살이 가치가 있는 것은, 테두리 사이의 빈곳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근무가 가치가 있는 것은, 주말의 쉼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입 속이 꽉 차 있다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방을 넓히는 방법은 집을 큰 것으로 갈아치우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쉬운 것이 방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치워 비우는 일이다. 이런 사례들이 말하는 중요한 착안은 바로 '없음의 효용'이다. 소용없어 보이는 것에 큰 소용이 숨어있다. 무(無) 속에 유(有)가 들어있다는 통찰에 하이데거는 유레카를 외쳤다.

하이데거가 서재 벽에다 붙여놓은 것도 노자의 글귀였다. 15장에 나오는 두 구절이다.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숙능탁이정지서청 숙능안이구동지서생)


하이데거가 어떻게 저 구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가 더 놀랍다.

"누가 할 수 있겠는가, 탁한 것을 고요함으로 천천히 맑게 만드는 것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죽은 것을 오래 꼬물거리게 해서 서서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을"


노자는 이것은 누가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사실은 조물주가 시범으로 매년 보여주시는 사업이다. 가을이 되면 봄 여름의 무성한 생명이 일궈놓은 탁한 것들을 고요하게 만들면서 깨끗하게 정리를 한다. 봄이 되면 다 죽은 것 같은 것에 빛을 비추고 물기를 흘려 천천히 생명을 탄생시킨다. 세상의 생태계가 사계절을 사이클로 하여 돌아갈 수 있도록 해놓은 조물주는,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이다.
 

[다석 류영모]



'없이 계시는 하느님'을 발견한 다석

노자의 '없음'이, 기독교의 하느님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임을 알아챈 사람은 다석 류영모 이전엔 세상에 없었다. 노자의 생각이 마치 기독교의 원천 교리(敎理)를 풀어놓은 것처럼 생생하고 정밀하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도 류영모였다. 류영모의 노자(老子)는, 이전에 많은 이들이 읽었던 노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다석의 노자를 읽은 이들은 '노자의 충격'을 새롭게 받았고, 그 생각을 따라온 이에겐 '새로운 노자' '참노자'가 보였다. 그리고 류영모는 기독교의 하느님을 곧 '없이 계시는 하느님'으로 정의함으로써 2000년 신앙의 구구한 '신의 존재증명론'의 모순에서 오는 회의(懷疑)를 명쾌하게 걷어냈다. '없음'과 '있음'의 통합은, 바로 노자사상의 핵심이기도 했다.

그는 노자(老子)의 한자를 풀어 '늙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류영모에게 '늙은이'는 나이든 사람에 대한 조롱이나 경멸이 아니라, 탄생보다 죽음이 가까운 사람이며 하느님에 다가가는 인간에 대한 극존칭이기도 하다. 류영모는 20세 때인 1910년 오산학교 교사 시절에 '노자'를 처음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타계 11년 뒤인 1992년에 그의 강의록을 편집한 '에세이 노자'(류영모 우리말 옮김, 박영호 풀이, 무애출판사)가 나왔으니 82년 만의 결실이었다. 그 생이 노자를 품은 나날이었으며, 그 자신이 '늙은이'였다.

'노자의 절대세계'를 뼛속 깊이 들이마신 영혼에, 서구신앙인 기독교가 산들바람처럼 들어왔다. 그의 눈에는, 성령을 입은 예수가 전파한 기독교가 2000년의 '종교적 생존과 번성'의 역사 속에서 본질을 놓치고 껍질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가야할 길을 깨달았다. 인간을 현혹하는 인격신(人格神)과 기복신(祈福神)을 벗어나, 예수처럼 성령으로 와 있는 하느님 그리고 텅빈 하느님을 향한 천로역정(天路歷程)을 걷기 시작했다. 

제자 박영호는 이렇게 말했다. "류영모는 일생 동안 노자를 가까이 두고 읽었습니다. 그는 서울YMCA강좌에서도 '노자'를 강의했습니다. 정통 신앙인들만 모인 김교신의 성서집회에 초청되어 가서는 성경 얘기는 두고 노자를 말하여 듣는 이들이 당황하였지요. 류영모만큼 노자를 깊이 새기고 널리 알린 이는 없을 겁니다. 류영모의 노자 얘기를 들은 이는,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을 비롯하여, 함석헌 김흥호에 이르기까지 몇 만 명이 넘습니다. 노자가 이 나라에 처음 들어온 고구려 이래 노자사상을 중흥하는 데 으뜸가는 이가 류영모일 것입니다."(박영호 역저 '노자, 빛으로 쓴 얼의 노래'의 머릿말 중에서)

도올 김용옥은 그의 책 '노자와 21세기'를 내면서 이렇게 썼다. "다석 류영모 선생을 만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됩니다."

류영모가 노자를 우리말로 옮겨가며 YMCA에서 강의했던 때는 1959년(69세)이었다. 강의 내용을 등사해서 수강생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노자를 '학문'을 한 지식인이 아니라, '구도(求道)'를 한 도인으로 이해했다. 노자는 자아를 초극한 사람이었다. 자아를 초극한 사람은 자아를 초극한 사람만이 얻는 진실을 말하고 있기에, 문헌 연구자의 수준으로 노자를 읽을 수 없다고 보았다. "도(道)는 세상을 초월한 진리를 말합니다. 도는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이 언제나 주인을 섬기는 종의 마음을 가질 때 이루어집니다. 참으로 진리를 찾으려면 생명을 내걸고 실천해 보아야 합니다. 도는 참나입니다." 류영모는 노자가 말한 '도(道)'를 참나로 읽었다. 그러면서, 도덕경은 이전에 없던 '성서(聖書)'의 언어들을 품게 되었다. 

다석과 함께 노자1장 읽기

우선 다석이 우리말로 풀이한 '도덕경 1장'을 음미해보자.

길 옳단 길이 늘 길 아니고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이를 만한 이름이 늘 이름이 아니라 名可名 非常名(명가명 비상명)
이름 없어서 하늘 땅이 비롯고 無名天地之始(무명천지지시)
이름 있어서 잘몬의 어머니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
므로 늘 하고잡 없어서 그 야므짐이 뵈고 故常無欲以觀其妙(고상무욕이관기묘)
늘 하고잡 있어서 그 돌아감이 보인다 常有欲以觀其徼(상유욕이관기요)
이 둘은 한께 나와서 달리 이르니 此兩者 同出而異名(차양자 동출이이명)
한께 일러 감아-감아 또 감암이 同謂之玄 玄之又玄(동위지현 현지우현)
뭇-야므짐의 오래러라 衆妙之門(중묘지문)

류영모가 풀어놓은 우리말은 우선 아름답다. 그냥 읽어도 걸림이 별로 없다. 말은 쉬워보이지만, 뜻은 깊고 다양한 의미 갈래를 품어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노자는, 지식을 자랑하려고 한 게 아니라 세상사람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한 사람이다. 일종의 강의록이란 얘기다.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 노자는 왜 도(道, 길)라는 말을 먼저 꺼냈을까. 누군가, 도(道)가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도(道)를 뭐라고 말하든 그것은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도'가 아닐 수도 있다. 노자는 '진리는 불변할 것'이라는 세상의 믿음을 흔들어놓고 있다. 이 한 마디가 노자가 할 말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왜 도는 지금은 도일수 있지만 다른 때 다른 곳 다른 경우엔 아닐 수도 있는가. 인간이 불변의 진실을 '도'라고 설정해 놓았지만, 그것마저도 인간이 처한 상대세계의 가변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다.

名可名, 非常名(명가명 비상명) = 노자는 이 말을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도'라는 명칭은 지금은 도라는 명칭이지만, 다른 때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다. '명칭'을 거론한 이 말은, '도'가 '도' 아닐 수도 있는 경우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사례이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도'가 아니라 '참'이라는 말로만 쓰일 수도 있다. 그럴 땐 '도'는 도가 아니다.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 명칭의 사유로, 노자는 문제의 지평을 펼쳐 보인다. 명칭이 없는 상태, 태초엔 그랬다. 명칭이 붙으면서, 만물을 낳았다. 명칭은 왜 생겼는가. 만물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누가 구분하는가. 인간이 구분한다. 그러므로, 명칭이 없는 상태는 인간이 없는 상태이다.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 그 명칭이 없던 상태의 묘함(妙)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늘 욕망이 없어지고, 명칭이 생겨난 상태의 이것저것(徼, 만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늘 욕망이 일어난다. 묘한 곳과 이것저것은, 같은 데서 나왔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同謂之玄, 玄之又玄(동위지현 현지우현) = 명칭이 없는 곳은 절대세계이며, 명칭이 있는 곳은 상대세계이다. 상대세계는 현(玄)이라 표현했고, 절대세계는 현지우현(玄之又玄)이라 했다.  노자사상 전체를 현학(玄學)이라 부를 만큼 '玄(현)'은 중요한 말이다. 검다, 가물가물하다, 아스라하다, 어둠 속에 보일 듯 말 듯하다. 류영모는 이 '감음(검음)'은 바로 하느님이라고 했다. 상대세계에 있는 현(玄, 감아)은 바로 '얼나'로 와있는 하느님이고, 절대세계에 있는 현지우현(玄之又玄, 감아 또 감암이)은 빈탕의 하느님 그 본좌다. 현과 현지우현의 규명이야 말로, 류영모 신학(神學)의 정수다.

衆妙之門(중묘지문) = 그는 질문자를 오래(문의 옛말)에 세웠다. 중묘의 문이다. 중(衆)은 '뭇 만물이 있는 곳'이고, 묘(妙)는 '야므짐의 텅빈 곳'이다. 이쪽을 보면 만물이 있고 저쪽을 보면 빈탕이 있다. 노자는, 이 심오한 경계로 인간을 초대한 것이다. 왜, 그는 갑자기 인간 현재의 '도(道)'가 급한 사람의 손을 이끌어, 태초의 무(無)를 보여주는가.

노자는 절대세계에서 상대세계를 관찰하는 법을 일깨워주려고 작심하고 있다. 다석 류영모가, 이 사람에게서 성령의 예수를 느낀 까닭은 여기에 있다. 상대세계에서 절대세계를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세계의 문턱에서 상대세계를 들여다보면, 인간이 그토록 찾아헤매고 있는 진리의 진상이 짚인다. 관점과 시선의 이동을 활용한 '도'의 깨우침. 노자의 역발상이다.

류영모는 말한다. "마음이 더없이 크면 '없(無)'에 들어간다. 없는 것은 참나가 얼나가 되는 것이다. 없는 데 들어가면 없는 게 없다. 아무것도 않으면 일체를 가지는 것이다. 다시 없는 큰 '없'에 들어가는 것. 이것만은 우리가 할 일이다. 서양 사람들은 '없'을 모른다. '있(有)'만 가지고 제법 효과를 보지만 원대한 '없'을 모른다. 그래서 서양문명은 벽돌담 안에서 한 일이라 갑갑하기만 하다."

서양문명이 벽돌담 안에 있다는 것은 중묘지문의 경계로 나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자의 시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류영모는 노자의 중묘지문에 서서 육체의 세상과 영성의 빈탕을 읽었다. 그는 말했다. "이 몸은 참나가 아니다. 참나를 실은 수레일 뿐이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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