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시간여행자 양준일의 암호 같은 이야기

2020-09-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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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시대를 앞서간 패션과 무대 스타일로 연예계와 국민의 배척을 당하며 가수 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했던 양준일은 쫓겨나다시피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30여년 만인 지난해 말, '온라인 탑골공원'(1990년대 음악방송 영상들을 스트리밍하는 유튜브 콘텐츠)에서 ‘탑골 지드래곤(GD)’으로 불리며 ‘시대를 앞서간 가수’로 재조명 받았다.

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에 등장하면서 20대에 접어버린 꿈을 50대에 다시 펼치고 있는 양준일.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아 온 시간여행자 양준일과 오랜 세월 속에 담겨진 암호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김호이 기자/ 시간여행자 양준일]

Q.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A. 콘서트 준비하고 글 쓰고 가사 쓰고 음악과 연결되어 있는 걸 하면서 너무나 혜택을 받은 느낌으로 지내고 있어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혜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음악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제게 정말 특별하거든요. 음악을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고 같이 나눈다는 건 정말 특별한 선물이에요.

Q. 슈가맨에서 오랜만에 노래를 하면서 어색함은 없었나요?
A. 오랜만에 무대에 서도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하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는 타고난 선물인 것 같아요. 만약 슈가맨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미국에서 서빙을 계속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를 고민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사진=김호이 기자/ 슈가맨 정면]
 

Q. 양준일에 대한 시선이 옛날보다 긍정적으로 바뀌었나요?
A. 너무 많이 바뀌었죠. 옛날에는 1명이 좋아하고 10명이 싫어했다면, 지금은 10명이 좋아하고 1명이 싫어하거든요.

Q. 시선이 달라진 상황을 봤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A. 팬이라면서 반갑다고 하고 사진 찍자고 하는 분들을 보면 맨날 놀라워요. 그리고 좋게 봐주시는 것들이 감사하죠.
 

[사진=김호이 기자]


Q. 이름 앞에 붙었으면 하는 수식어가 있나요?
A. 가수 양준일, 작가 양준일. 이런 것들이 부담스러워요. 그냥 양준일, 아빠 양준일이 더 자연스러워요, 아직까지 서빙하는 웨이터 양준일. 이런 게 익숙하기 때문에 앞에 뭔가를 붙이는 게 부담이 돼요. 그래서 ‘안녕하세요. 양준일입니다’라고 얘기를 하지, 앞에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요.

Q. 양준일은 어떤 사람인가요?
A.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게 좀 더 정확한 답이 나올 것 같아요. ‘내가 누구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거든요. 거울도 잘 안 보는 편이에요. 내 얼굴을 안 보는 것처럼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이지’라는 고민을 하면서 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감사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그리고 그게 내게 힘을 주고요.
 

[사진=엑스비 제공]
 

Q. 지금 감사한 건 뭔가요?
A. 하루하루를 걱정하지 않고 산다는 거죠. 서빙을 할 때는 오늘 팁을 얼마나 받았냐가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날 벌어서 그 다음날 써야 됐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여유가 좀 더 있거든요. 그리고 음악을 만들어서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해요.

Q. 지금 완전히 한국에 정착을 한 건가요?
A. 예전에도 돌아갈 마음이 없었는데 안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간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한국에 살고 싶고, 꼭 돌아가야 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저는 계속 한국에 살 거예요.

Q.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A. 미국에서는 전혀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다시는 음악을 할 것이라는 상상도 못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30년 전에 처음 미국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들도 많았지만 너무 행복했었어요. 한국생활도 너무 행복했고요. 그리고 미국에 다시 돌아갔을 때도 너무 행복했고, 지금 한국에 와서도 너무나 행복해요. 그래서 지금 모든 게 너무나 새롭고 꿈같아요.

Q. 양준일에게 유튜브란?
A.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채널이 되는 것 같아요. 뭔가를 전달하고 나눌 수 있는 길. 예전에는 방송으로만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방송국이 없어도 여러 가지 수단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그래서 멀리 있어도 유튜브를 통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있잖아요.
 

[사진=엑스비 제공]


Q. 30년 만에 팬들을 만났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A. 그건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나를 파도처럼 치고 감싸서 숨을 못 쉴 것 같고, 감정의 조절이 안돼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젊은 세대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얘기가 너무 놀라워요, 저는 대부분 팬들이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거나 조금 적은 분들이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젊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몰랐어요.

Q. 이 상황을 어떻게 즐기고 있나요?
A. 예전에는 하루하루가 재방송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새로운 게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뭔가를 나눌 수 있는 걸 즐기고 있죠.

Q.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나요?
A. 아니요. 저는 예전에 꿈을 묻어버렸어요.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고 슈가맨에 나오고 노래를 다시 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슈가맨에 나와 달라고 했을 때 춤을 연습할 수 있는 곳도 없었기 때문에 출퇴근하면서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다시 외우고 차 안에서 노래연습을 했거든요. 그리고 한국에 도착해서 방송국에서 연습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줬는데 저는 한 번 출연하고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서 두 번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어요. 그 다음날 미국으로 갔고요. 진짜 이런 반응이 있을 줄 아무도 몰랐어요.

Q. 가족들도 지금 다 한국에 있나요?
A. 네. 슈가맨에 나올 때도 아기와 아내를 미국에 혼자 둘 수 없어서 그때도 같이 왔었죠. 그 이후에도 완전히 돌아올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팬미팅 때문에 왔던 것이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CF를 찍게 되면서 CF 보증금을 가지고 아파트를 얻은 거예요.   

Q. 노래를 하고 춤을 출 때 어떤 감정을 느끼세요?
A. 나만의 세상에 들어가요. 음악을 들으면서 내 몸이 반응하고 가사를 생각하면서 나의 경험들을 떠올리면서 나만의 방에 들어가요. 그 방의 문을 열어 놓고 들어올 사람이 있으면 같이 들어오고 아니면 나 혼자서 즐기는 거예요.
 

[사진=엑스비 제공]


Q. 자유롭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생각을 하지 않고 반응할 수 있을 때 자유롭다고 느껴요. 내가 새로운 안무를 만들 때는 생각을 하면서 표현을 하는데 그게 반복이 되고 생각 없이 표현을 할 수 있을 때 자유를 느껴요.

Q. 양준일에게 자유란 무엇인가요?
A. 어느 틀 안에 잡혀 있는 게 자유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갈 때 중앙선을 넘어서 내 마음대로 가면 엉망진창이 되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될 걸 지킬 때 자유가 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춤을 배울 때도 정해진 걸 하는 게 너무 불편했었어요. 그걸 연습할 때는 힘들었지만 그게 익숙해지고 생각을 안 하고 할 수 있을 때 자유롭다고 느껴요. 그래서 자유는 틀 안에 잡혀 있는 것이 내 것이 됐을 때 생각 없이 하는 게 자유라고 생각해요.

Q. 처음 춤과 노래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 중학교 1학년 때 홀딱 반했어요. 선배를 보고 팝핀이라는 댄스를 처음 접했는데 춤추는 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걸 학교 친구들 모두가 배우려고 했었고 그 중에 한 명이 나였어요. 

Q. 양준일의 10대, 20대, 30대, 40대는 어땠나요?
A. 10대는 그때 내가 뭘 원했는지 기억이 없어요. 20대 때는 원하는 게 있었을 뿐이지 내가 갖는 게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30대도, 40대도 마찬가지였어요. 50대에 원치 않은 상황에서 그걸 갖게 돼서 감사하게 보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Q. 원치 않았다는 건 무슨 말이죠?
A. 내 꿈을 다 묻었고 버렸고 돌아보지 않을 만큼 원치 않았을 때. 첫 번째 앨범을 냈을 때는 앨범을 내는 것 자체가 내게는 탈출이었어요. 공부를 못했기에 그걸로 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안했거든요. 근데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내가 잘하는 게 춤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춤을 추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학교와 공부에서 떠날 수 있었던 게 춤과 음악이었거든요. 그리고 2집은 복수였어요. 1집에 대한 실망을 복수하겠다는 다짐. 1집이 망했는데 2집을 또 낸다는 것 자체는 나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한 거예요. 3집도 2집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만족도가 너무 떨어져서 3집을 꼭 내고 싶었어요. 3집을 낸 후에 내 자신이 만족을 해서 털고 돌아설 수 있었어요.
 

[사진=엑스비 제공]


Q. 가장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나요?
A. 저는 많은 걸 기억하는데 대부분 좋은 것들을 기억하고 나쁜 것들은 될 수 있으면 기억은 하지만 돌이켜 보지는 않아요, 꼭 기억하고 싶은 건 감사했던 것들이에요.

Q. 한국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A. 한국에서 알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내가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은 써니누나예요. 내가 서빙했을 때,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줬거든요. 그런 분들이 기억에 남고 놓치고 싶지 않죠. 써니 누나는 아직 미국에 있어요. 전화를 몇 번 했는데 시차 때문에 빗나갔거든요. 누나가 문자로 “왜 그래? 일자리 필요해?”라고 와서 ‘누나 보고싶어서요’라고 보냈어요. 누나는 지금 제 모습을 너무나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세요.
 

[사진=김호이 기자]

 

[사진=김호이 기자/ 팬들이 그려준 팬아트]
 

Q. 거듭되는 좌절과 실패 속에서 깨달은 것들이 있나요?
A. 깨달은 게 너무 많죠. 특히 배워야 된다는 걸요. 영원한 게 뭔지 배워야겠다는 걸 느꼈거든요. 이건 제 철학이기도 해요. 사실 10대에 원하는 것이 뭔지도 기억이 안나요. 20대도 기억이 안 나고요. 그때 내가 원했었던 것을 이뤘으면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0대에 내가 이런 인기를 얻어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으면 감사함 없이 길을 잃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음악과 내가 가진 재능을 철학과 같이 투자하고 있거든요. 그게 같이 따르지 않으면 길을 잃을 수 있는 것 같아요.

Q. 살면서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길을 다시 찾았나요?
A. 뭔가가 나를 찾은 거지, 내가 찾지는 않았어요. 양준일을 찾은 건 영원함인 것 같아요. 그게 누군가에게는 부처님의 철학일 수도 있고, 예수님의 철학일 수도 있어요.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거기에서 오는 철학들이 나한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런 철학들이 나한테 온 거지, 내가 그 철학을 만든 게 아니잖아요.
 

[사진=엑스비 제공]
 

Q. 어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나요?
A. 좋은 습관은 아침마다 일어나서 집을 치워요.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집을 엉망으로 해놓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내 아들이 어제도 재밌게 놀았네’ 하고 집을 깨끗이 해놔요. 언제나 똑같은 곳에. 그래서 내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가지고 놀 수 있게. 정리를 시키지 않고 정리가 되어 있는 게 뭔지를 가르쳐주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나쁜 습관은 일주일 동안 스케줄이 바빠서 금요일 저녁에 집에 늦게 들어왔으면 일찍 자야 되는데 자기가 아까워요. 그래서 새벽 2~3시까지 글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그 다음날 너무 힘들어해요. 매번 ‘내가 어제 일찍 잤으면 오늘 훨씬 더 아이와 놀 수 있는 에너지도 있었을 텐데 어제 그 시간에 왜 이렇게 늦게까지 또 그랬나’라는 걸 고쳐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아요.
 

[사진=김호이 기자]


Q. 아이에게 항상 해주는 말이 있나요?
A. 사랑한다고 많이 해요. 사랑이라는 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 자체인 것 같아요. 내 아이와 아내를 생각하면서 일을 열심히 하지, 내 자신을 위해서는 일을 안 할 것 같아요. 그 외에도 감사한 사람은 많죠. 감사한 부분은 언제나 있어요. 인터뷰를 요청해서 좋은 인터뷰를 해주시는 것도 감사하고요. 내가 누구를 만나서 그 사람한테 좋은 점만 줄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만 좋은 점을 기억하려고 하고 나쁜 점은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거든요.

Q. 30년 전 활동했을 당시 패션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스타일링을 어떻게 하셨나요?
A. 자라면서 내 자신한테 뭐가 제일 어울리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때그때 유행하는 것들도 잘 알고요.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좀 더 빨리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 패션이 훨씬 앞서가기 때문에 차를 타고 가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패셔너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만의 색을 찾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을 안 쓴 것 같으면서도 신경 쓴 느낌을 받거든요. 미국에서는 편안하기만 하면 돼요. 옷을 꾸며서 입으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입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사진=엑스비 제공]


Q. 어떤 색깔을 가졌을 때 제일 양준일 답다고 생각하세요?
A. 누구를 대하는지에 따라서 색깔이 바뀌어요. 내 아들을 볼 때는 밝은 하늘색이지만 혼자 있으면 바다 같이 깊은 파란색이 돼요. 양준일 답다는 게 뭔지 내가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사람들이 양준일 답다고 할 때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말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록킹 롤 어게인‘(Rocking Roll Again) 가사에 ’내가 9살 때 똥배는 없었고’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누가 가사에 똥배라는 단어를 넣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양준일답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가사 소재는 어디서 찾나요?
A. 작곡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작곡가가 굉장히 중요하고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암호화해서 음악으로 주는데 그걸 풀 수 없으면 가사를 쓸 수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순간 나를 어딘가로 데리고 가지 않으면 내가 그 음악에 젖을 수 없어요. 그래서 그 음악이 나를 어딘가로 데리고 가면 그곳에서 그 상황을 쓰는 것 같아요.

Q. 양준일의 풀리지 않은 암호가 있나요?
A. 나는 암호를 언제나 옳게 풀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암호를 모르니까요. 나는 무대에 섰을 때 표현을 잘한 것 같은데 누군가는 “그게 뭐냐”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 것들이 경험이 쌓이면서 좀 더 암호를 풀어갈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암호를 풀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지지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우리 모두가 내 자신의 암호를 풀려고 해요. 짜증이 나고 화가 나면 ‘내가 왜 이렇게 짜증을 내지? 뭐가 문제일까?‘라고 생각하면서 그 뒤에 있는 문제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잖아요.

Q. 새 앨범의 작곡가가 V2 앨범의 작곡가인 발 가이너(Val Gaina)라고 들었습니다. 20년 만에 연락했을 때 그 분의 반응이 어땠나요?
A. V2 앨범을 굉장히 힘들게 만들었어요. 돈도 없었고, 발은 파트너도 있고 투자를 받아서 녹음실을 유지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음반을 하길 원했고. 발은 내 음반을 하고 싶어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돈을 훨씬 더 많이 주겠다고 하고 나는 돈을 빌리는 상황이었는데 발은 나를 선택하겠다고 해서 파트너들이랑 깨졌어요.

그래서 발이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 빠지게 되거든요. 근데 V2 앨범이 노래는 있는데 누가 부른지는 몰라서 돈을 못 버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일을 똑바로 못해”라는 말 한마디도 안 했어요. 내가 자기에게 친동생처럼 느껴졌나봐요. 그래서 내가 발을 꼭 찾아서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은 끝났어도 그 사람의 나에 대한 사랑은 계속 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진=김호이 기자/ 신곡 '락킹 롤 어깨인'/ 양준일 팬아트 전시회]


Q. 지키고 싶은 삶의 태도가 있나요?
A. 매일매일 배우고 싶어요. 배워가는 과정이 있지 않으면 인생에 양념이 빠져서 맛이 없어질 것 같아요. 깨달음이 있을 때 배움을 느껴요. 인생에서 뻔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들어왔을 때 충격 받고 기억 속에 남아요.

Q. 젊은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세계적으로 다 힘들잖아요. 근데 보는 관점이 바뀌면 인생도 바뀌는 것 같아요. 올바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잘살 수가 없어요. 인생의 목적 중 하나가 돈을 버는 건데 부자가 됐을 때 내 안에 분노로만 차 있으면 돈이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한테 그 분노가 퍼져나가는 게 돈의 힘이에요. 돈은 모든 것을 크게 만들어요. 내 안에 행복이 있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돈이 들어왔을 때 더 많은 걸 나눌 수 있는 거고 내가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고 누르고 싶고 때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돈이 많이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을 공격할 수 있고 때릴 수 있고 누를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면 ‘그 회사에서 얼마를 벌까’도 중요하지만 ‘내가 거기 들어가면 어떤 사람이 될까’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개를 아무리 오래 데리고 살아도 개가 인간다워지지는 않아요. 근데 인간이 침팬지들과 살면 침팬지처럼 변해가잖아요.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영향을 주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디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무슨 철학이 머리에 들어오는지 잘 지켜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Q. 뭘 할 때 가장 시간을 많이 투자하세요?
A. 내 가족을 보호하고 키우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내가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게 음악이 됐던, 글이 됐던, 책이 됐던 뭘 나눌 수 있는 기회와 콘텐츠가 있을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눴으면 좋겠어요.
 

[사진=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양준일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나요?
A. 매일 지켜보고 있어요. 내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돼요. 그래서 내가 배우는 걸 좋아하는 거예요. 인간다운 게 뭔지를 자꾸 떠올리면서 ‘그게 영원한 거겠지’ 라는 걸 배워가고 거기에 시간을 많이 들이면서 그걸 닮아가는 모습을 보는거죠.

Q.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A. 나누는 사람. 주고받는 것과는 달라요. 주고받는 것은 내가 손해를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나누는 것은 책을 읽은 느낌을 전하면 나도 잊어버릴 게 없잖아요. 오히려 10명한테 얘기하면 나는 그걸 10번을 복습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누면 나눌수록 더 좋아지고 커지는 게 나눔이에요. 저는 외로움도 나누고 싶고 즐거움도 나누고 싶고 아픔도 나누고 싶고 행복도 나누고 싶어요.

아픔을 10명이랑 나누면 그 아픔이 굉장히 작아지잖아요. 내가 노래를 만들었는데 나 혼자 들으면 즐거움이 거기서 멈추거든요. 근데 그걸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면 그 노래를 같이 들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고 여러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기쁨이 높아지는 거예요. 문화생활을 하면서 이런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축복이에요.

Q. ‘하루가 나를 만지게 허락하자’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를 만지며 살 수 있을까요?
A.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못 만지게 해요. 그렇지만 하루가 나를 만지면서 거기에서 나도 얻어가는 게 크거든요. 하루를 지내면서 내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갈 수 있어요. 힘든 건 힘이 들어간다는 뜻이고 피곤하다는 건 바닥이 나서 하기 싫은 것이거든요. 힘이 들어가지만 얻어가는 게 크다고 하면 힘이 나서 갈 수 있어요. 하루가 나를 만진다는 것이 힘만 뺐기는 게 아니라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게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면 그게 허락이 돼요. 하루가 나를 만지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받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게 소중한 거예요. 꼼짝하기 싫은데 억지로 움직이게 하면 아픔밖에 생각이 안나요. 어떻게 하면 잠을 더 오래 자고 오래 쉴까가 목적이 되면 그냥 쉬는 게 이루어지는 거고 어떻게 하면 최소한으로 짧게 쉬고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그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걸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만족 없이.
 

[사진=김호이 기자/ 양준일이 전하는 메시지]


Q.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너무나도 고마워요. 그분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감사하고 내가 내 가족들에게 할 수 없는 것을 그분들이 해주니까.

Q. 어떤 이야기를 가진 플레이어가 되고 싶으신가요?
A. 진실한 아티스트가 돼서 내가 무엇을 통과하고 있든, 그것을 내가 솔직하게 나누고 싶어요.
 

[사진=김호이 기자/ 양준일의 사인]
 

Q. 마지막으로 무언가 잘 되지 않아 고민에 빠진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해요. 팔굽혀 펴기를 최선을 다해서 10개밖에 못하면 그게 나의 최선인 거잖아요. 그렇지만 최선과 그것이 끝이라는 건 다른 거예요. 내가 팔굽혀 펴기를 10개밖에 못하면 5분 쉰 다음에 5개를 또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또 5분 쉰 다음에 3개를 더 할 수 있고, 또 5분 쉰 다음에 5개를 또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나의 최선이 절대 10개가 아니에요. 그 이상으로 더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너무 힘들고 지금 나의 최선을 가지고 안 된다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어도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하루가 나를 만질 수는 있지만 죽일 수는 없는 거예요. 나는 자고 나면 또 다시 깨어나는 존재거든요. 다시 깨어났을 때 10개를 더 할 수 있고 조금 쉬었다가 10개를 더 할 수 있고, 그러면서 천천히 이루어져 가는 것이거든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 자체도 없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최소한 5개의 팔굽혀 펴기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뭐가 됐든 실패를 해도 괜찮아요.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3개 이기고 7개를 져도 그런 기록이 남는 게 낫지, 나는 시도한 것도 0, 이긴 것도 0, 진 것도 0, 0으로 끝나는 건 너무나도 허전한 것 같아요. 그래서 3개 이기고 7개 실패해도 괜찮고, 1개 성공하고 9개를 실패해도 되고 10개를 해서 10개를 다 실패해도 돼요. 10개를 시도한 것과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건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사진=김호이 기자/ 시간여행자 가수 양준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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