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한땀 한땀 꿰맨, 3.5m 넘는 대형작품들

2020-09-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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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14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서 '누그르호 개인전'

전시 ‘Lost in Parody’의 지하 1층 전경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예술가의 상상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에서 ‘국민 작가’로 불리는 에코 누그로호(43)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치열하게 찾고 있는 아티스트다. 그가 2013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개막한 누그로호 개인전 ‘Lost in Parody’(패러디에 빠져)에는 자수와 회화 작품 총 20여점이 전시됐다.
인도네시아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누그로호는 조각·자수·벽화·걸게 그림 등을 통해 정치·사회적인 문제들을 풍자하는 작업을 해왔다.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파리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하며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2013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인도네시아관을 통해 그의 작품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이번 아라리오갤러리 전시는 그의 자수와 회화 작품을 집중해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세로 길이 3.5m가 넘는 대형 자수 작품들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까이 살펴보면 회화가 아닌 수작업을 통해 실로 한 땀 한 땀 꿴 자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 속 인물의 머리와 어깨·팔 주변을 감싸는 달빛 등을 매우 세밀하게 자수로 표현했다. 누가 봐도 장인의 솜씨다.

이 작품들은 혼자가 아닌 함께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의복 등을 자수로 만들어왔다. 기계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서 자수 작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전통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누그로호는 2007년 한 지역사회에 협업을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은 13년째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국내에 오지 못한 누그로호는 화상 연결을 통해 “현재 6명이 같이 ‘자수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중 2명은 처음부터 함께 하고 있다. 가족 같다”고 설명했다.

예술가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준 사례다. 주연화 아라리오 총괄 디렉터는 “예술가 누그로호의 사회적인 역할은 조금 더 실질적”이라며 “지역에서 전통 자수를 해온 사람들에게 현대 예술 작품을 함께 만드는 참여 기회를 제공했다. 그들도 아티스트다. 전문가인 자수 장인들은 최고의 작품을 만든다. 상생이다”라고 짚었다.


자수 회화 'A Pot Full of Peace Spells'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제공]


누그로호가 미술대학을 다닐 당시 인도네시아는 정치·사회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30여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집권한 하지 모하마드 수하르토 군사 정권을 몰아내는 개혁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누그로호는 자연스럽게 현대 사회 문제를 작품에 담게 됐다.

그의 작품을 보면 눈을 뺀 나머지를 전부 가린 사람들이 주로 등장한다. 얼굴 나아가 입을 가린 그들은 사회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체성이 가려진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내는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한 손으로 악수를 하고 있지만 반대편 손은 무기로 변해있는 인물도 자주 볼 수 있다. 작가는 민주주의와 평등 그리고 평화의 이면에 숨어 있는 폭력과 차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쓰레기 더비인 배경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나타낸다. 누그로호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문제들을 환기한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이 변화의 중요한 첫걸음이다.

심각한 주제들이지만 평소 긍정적인 작가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환한 달은 희망을 상징한다.

누그로호는 “이번 전시는 사회에서 소란스럽게 발생하는 일에 대해 탐구한 작업의 일부다”며 “민주주의·공동체·사랑·평화의 의미에 대해 함께 웃으며 바라봤으면 좋겠다. 나는 이 패러디가 재미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1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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