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국경분쟁을 겪는 인도가 중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거대 인터넷 인구를 무기로 중국 모바일 공룡들을 정조준하면서 중국 앱을 잇따라 퇴출하고 있다. 틱톡, 위챗에서 바이두, 배틀그라운드까지 중국의 인기 앱 수백 개가 인도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됐다.
◆'중국 인기앱 모조리 쫓아낸다'...대중 경제 보복 속도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인도 주권과 국방, 공공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 118개 앱에 대한 사용 금지를 발표했다. 데이팅 앱 탄탄, 가상 메이크업 앱 메이투, 알리바바의 결제 앱 알리페이, 중국 최대 검색 앱 바이두, 한국이 개발하고 텐센트가 모바일 버전으로 내놓은 배틀그라운드 등이 포함됐다.
잇따른 유혈충돌로 인도에서는 반중여론이 들끓고 있다. 첫 충돌 직후부터 인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된 터였다. 소셜미디어에선 중국 보이콧 영상과 메시지를 올리는 게 유행이 됐고 수도 뉴델리 숙박·외식 연합체는 중국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나렌드라 모디 정부 역시 여론을 등에 업고 중국을 상대로 경제적 응징에 돌입했다. 5G망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와 ZTE 등 중국 기업을 배제하기로 했고, 차이나머니의 공습을 억제하기 위해 투자 규정도 다듬었다. 정부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서 중국 기업과의 계약을 파기했으며, 항구에서 중국산 제품의 통관을 지연시켰다.
중국 앱 퇴출도 잇따랐다. 6월 틱톡과 위챗을 포함해 중국 앱 59개를 퇴출 목록에 올렸고 7월에도 47개를 사용 금지 대상에 추가했다. 이번에 118개가 추가되면서 인도에서 사용이 금지된 중국 앱은 총 224개로 늘었다. 거대 인터넷 시장을 무기로 중국 기술 공룡들을 정조준한 모양새다. 방갈로르 소재 레드시어컨설팅의 아닐 쿠마르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에 "인도 정부는 중국의 기술 거인들을 쫓아냄으로써 중국에 벌을 주고 싶어한다"고 풀이했다.
새 퇴출 목록에 오른 배틀그라운드의 경우 인도 내 다운로드 수가 1억7500만건으로 전 세계 다운로드 건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매출 측면에서는 인도 시장의 비중이 아직 미미하지만 중국으로선 인도 모바일 시장이 가진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더 뼈아프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미·중 신냉전 맞물려...경제악화에 모디 점수따기 분석도
중국을 향한 인도의 경제 보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중 압박과 닮아 있다. 미국은 안보 우려를 이유로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화웨이의 반도체 공급 고리를 끊어냈으며 틱톡과 위챗 등 중국 앱 퇴출을 예고했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과 맞물려 인도가 국경분쟁을 계기로 미국의 반중전선에 동참하는 모습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안 그래도 인도는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파키스탄이나 네팔 등 인도 앞마당까지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던 터다. 남중국해와 인도양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에 대한 위기감이 컸다. 인도는 이번주 앞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4대 축을 형성한 '쿼드(4자)' 협력국인 일본, 호주와 함께 역내 공급망 복원력을 강화하기로 약속,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인도는 2대 무역파트너인 중국에 기계설비, 가전제품, 화학·의료용품 등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중국과 경제 분리를 통해 인도를 글로벌 제조업 허브로 키우겠다는 모디 총리의 '메이드 인 인디아' 구상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모디 총리가 중국을 맹폭하는 배경을 '정치적 점수따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인도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올해 2분기 -23.9%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경제난이 가중되는 상황. 인도의 7월 공식 실업률은 10%에 육박하는데 실상은 훨씬 더 높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7월 물가상승률 역시 6.93%까지 오르면서 인도 주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도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일 인도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8만명을 넘어섰다. 결국 모디 총리로선 높아진 반중 정서를 이용해 정치적 지지를 유지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CNBC는 최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