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근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그 후임으로 내각 2인자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유력시된다.
강경 우파로 알려진 아베 총리가 공식적으로 물러나지만, 그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스가 장관이 후임 총리가 된다면 아베 정부의 대한(對韓) 외교 기조를 그대로 계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관심을 모은다.
한국과 일본은 현재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를 두고 경색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가 장관은 현재 여당인 자민당 의원 60%의 지지를 받아 사실상 차기 총리로 여겨진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집권당의 총재가 총리직을 맡는데 당 규정에는 총재 선출 시 국회의원과 당원에게 각각 394표를 똑같이 부여하기로 돼 있다.
그런데 자민당은 전날 코로나19 사태 대응 등을 이유로 차기 총재 선거 방식을 당원을 제외한 국회의원 중심의 약식 선거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자민당 의원 투표만으로 차기 총리인 총재가 결정되는 가운데 의원 10명 중 6명이 스가 장관을 지지하고 있어 사실상 스가 장관이 후임 총리에 내정됐다는 얘기다.
다만 스가 장관이 후임 총리에 오르더라도 경색된 한·일 관계가 풀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가 장관 역시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책에 있어서는 강경 기조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각수 전 주일 한국대사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스가 장관이 총리에 부임하면 아베 노선을 그대로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아베 총리처럼 한국에 강경하게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 전 대사는 "한·일 관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강제징용" "일본 내에서 컨센서스(만장일치)를 이루는 게 바로 강제징용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 입장에서 컨센서스를 이루는 문제를 뛰어넘는 해법을 내놓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베 총리 사임과 후임 총리 부임이 한·일 관계에 변화의 계기를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관계 개선을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 전 대사는 또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현금화 이슈도 점점 더 시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스가 내각이 들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 역시 상황 타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소식통 역시 "한국 내에서 아베 총리가 물러난 이후 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아 다행"이라면서 "상황을 냉정하게 보는 듯하다"고 귀띔했다.
한편 스가 장관은 지역구 세습과 파벌 정치가 일반적인 일본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그는 고교 졸업 이후 경비원, 주방보조 등 일을 하며 호세이대 정치학과 야간학부에서 공부하던 중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키웠다. 이어 중의원 의원 비서관으로 발탁돼 정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이후 지난 7년 8개월간 아베 내각의 관방장관을 맡으며 2인자로서 아베 총리를 보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