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 구타 당하고 금메달 받은들 행복할까요"

2020-08-3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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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이 만난 사람 : "대한 체육회, 새출발 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어"

 장영달 전 의원

 “인간 중심의 체육이 실현돼야 합니다. 그래야 금메달 은메달이 나왔을 때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성폭행과 구타, 폭언 속에서 메달을 받은 들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장영달 전 의원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나서 만나는 사람마다 메달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체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유튜브 동영상 촬영이 동시에 진행된 ‘황호택이 만난 사람’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잇따른 미투와 자살이 불러온 사태를 거론하며 "한국체육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했다.

                  


장영달 전 의원(4선)은 우석대 총장으로 있다 임기를 못 마치고 작년 7월 물러났다. 문재인 대통령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하다 사전 선거운동으로 고발된 사건에서 벌금형 선고를 받고 총장직을 내려놓았다. 7순에 접어든 나이에도 양평의 집 근처에 있는 용문산(1150m)과 백운봉(941m)을 오르내린다.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는 몽양 기념관이 있다. 그는 몽양 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을 15년 했고 지금은 몽양기념관 명예 관장이다. 독립운동가로 해방후 건국준비위원장을 지낸 몽양 여운형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하면서 조선체육회 이사, 조선축구협회, 조선농구협회, 서울육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아 체육발전에 힘을 쏟았다. 해방 후에는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 초대 회장과 조선올림픽위원회(대한올림픽위원회 전신) 위원장을 맡았다.
조선조의 양반 계급이나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들은 운동을 멀리 했다. 그러나 몽양은 서상천(역도)이 1935년 펴낸 <현대철봉운동법>에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사진이 나올 만큼 각종 운동을 좋아했다. 장 전 의원은 몽양기념사업회에 관여하면서 몽양이 초대 회장을 지낸 체육회 일을 물려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출마 배경을 묻자 경주시청 팀 소속이던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을 먼저 거론했다.
“최숙현양 자살 사건 전에는 대한체육회 회장 출마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의원 시절에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대한배구협회 회장을 했습니다. 10여년 전에도 체육계에서 회장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최숙현양 사건이 터지면서 강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잘못된 시스템을 개혁해 선수들의 인권 유린과 억울한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위에서 권유도 있었습니다. 단단한 철벽에 부딪히는 심정으로 출사표를 낸 것입니다.”

 선수들 미투 자살로 얼룩진 체육계
 심각한 위기에도 책임지는 사람 없어
 강력한 개혁의지 가진 조타수 필요성


ㅡ체육계에서 선수의 인권유린이 그렇게 고질적인 것입니까.
"지난 3~4년 동안 성폭행 사건이 27건 있었습니다. 단순 폭행 사건은 113건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건들이 제대로 조사도 되지 않고 묻혔습니다. 그 대한체육회의 지도자들과 연관돼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음습한 구석을 드러내 햇볕을 쪼여야 합니다. 국민이 질타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대한민국 체육이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을 시점이 됐습니다. 강한 개혁의지를 가진 사람이 조타수를 맡지 않고서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체육으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경기단체장 60여명이 투표를 해서 체육회장을 선출했다. 그래서 정부가 지목한 인사가 아니면 체육회장이 되기 힘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 김정길 전 의원이 낙점을 받았지만 이연택 회장이 연임을 시도하다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된 일도 있었다. ‘캐비닛 수사’라는 말이 나왔다. 검찰 캐비닛에 묵혀둔 서류를 들춰내 먼지털이 수사를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41대 체육회장 선거부터는 경기단체, 시도체육회 및 시군구 체육회에서 선정한 사람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회장을 선출하는 제도로 바뀌었다. 이기흥 회장은 선거인단(1405명) 투표에서 33%를 얻어 당선됐다. 그는 이번에 연임에 도전한다.
장 전 의원은 “정부의 낙점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권위주의 시절에는 정부의 지명을 받은 후보가 있었다. 현재 체육인들은 자존의식이 강해 누구의 조정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선거를 많이 치러봤습니다. 체육계를 걱정하는 인사들을 계속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결코 불리한 싸움이 아닙니다. 배구 김연경 선수와도 만나 한국 스포츠의 선진화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특히 이번 최숙현 선수 사건 등 잇따른 인권유린이 불거져 체육회를 일대 쇄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체육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기흥 현 체육회장은 작년에 IOC 위원이 됐다. 체육회 정관에 따르면 현 회장이 다시 선거에 출마하려면 90일 전에 사퇴를 해야 한다. 체육회장 사퇴를 하면 자동으로 IOC 위원 자격을 잃게 된다. 그래서 체육회는 회장의 ‘사퇴’ 대신 ‘직무정지’로 IOC 위원 자격을 유지시키는 정관 개정안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문체부는 곧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위법은 아니지만, 모순으로 가득찬 편법입니다. 이씨가 회장을 계속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정관 개정입니다. 정부가 이러한 편법을 묵인할 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선진국에서는 올림픽위원회(IOC)와 국가의 체육을 담당하는 체육회를 분리 운영합니다. IOC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체육회는 국가의 지원이 없이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두 단체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기 힘듭니다.”
ㅡ선거인단이 2200명이나 되는데 금권선거의 우려는 없습니까.
“42대 체육회장 선거의 선거인단 수가 약 2200명으로 41대 때보다 800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현 집행부에서 늘린 숫자입니다. 이 대목도 의구심이 생깁니다. 선거를 치르기 전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철저한 감사가 필요합니다.“
42대 체육회장 출마예상자는 장 전 의원과 이 회장 외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교수, 조재기 체육공단 이사장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ㅡ누가 가장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합니까.
“아무래도 현 회장이 여러 면에서 힘든 상대이겠지요. 그러나 체육계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저변에 폭넓게 깔려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회장이 명예롭게 4년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도 당선되면 4년 동안 체육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물러나겠습니다. 연임할 뜻이 없습니다. 땅에 떨어진 스포츠의 명예와 윤리를 바로일으켜 세워야죠. ”아 다시 좋아지는구나“라는 느낌이 확 들게 체육계의 위상을 높여놓겠습니다. 열매가 영글기까지는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선수들을 희생시키는 악습과 폐습을 끊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사람들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권위주의적 중앙집중식 시스템 개혁
60여개 종목단체에 권한 예산 분권
땅에 떨어진 스포츠 윤리 바로 세워야


ㅡ체육회를 어떻게 쇄신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까.
“권위주의적인 대한체육회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중앙에 몰려 있는 권한도 17개 지역으로 분산하려고 합니다. 대한체육회 회장은 각 지역의 체육회가 위임된 권한들을 잘 집행하고 있는가, 혹은 예산은 부족하지 않은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60여개 종목 단체에 모든 권한과 예산을 분권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운영 방식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지요. 내가 회장이 되면 지방분권적인, 종목분권적인 체육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이 됐을 때 코로나19가 와도 이길 수 있는 저력이 길러질 수 있습니다."
그는 한국 체육이 몽양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몽양은 ”독립운동의 성공을 위해서 조선 민중이 체육을 열심히 해야 한다. 새로운 해방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체육으로 강한 신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건강 없이 행복할 수 없다’는 말도 되풀이 했다. 
”몽양의 철학이 체육계에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 이후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들이 선수들을 스파르타식으로 훈련 시켜 올림픽 메달을 따서 국민의 인기를 끌려고 했습니다. ‘인간’보다 ‘메달’이 먼저였습니다. 스포츠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돌려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폐습이 시작됐습니다. ‘결과 중시’의 체육이 되면서 ‘과정’은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한체육회장에 출마한 장 전 의원(왼쪽)과 대담 중인 황호택 교수

그는 체육회장 선거 공약으로 ‘국민체육청’ 추진을 내세웠다.
”문체부 외청으로 국민체육청을 따로 둬야 합니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을 과학적으로 연구, 실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대한체육회는 중앙 집중식이 아니라, 지방 분권과 종목 권한을 이양해 체육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 체육회가 예산, 권한 중복 등을 살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뒤를 봐주고 보살펴주는 체육회장이 필요합니다. 인간 중심의 체육 속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과 선수들 모두 행복감을 느끼는 스포츠가 될 수 있습니다. 성폭행과 구타 속에서 무슨 행복한 스포츠가 되겠습니까.“
42대 대한체육회장은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에도 대비해야 한다. 도쿄 올림픽이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지 않으면 1년 더 연기될 수도 있다.
”일본은 우리와 의료체계가 다릅니다. 일본과 미국은 자비로 검사를 받지요. 일본이 올림픽을 제대로 치르려면 의료체계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한국으로부터 검사 시스템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코로나의 악령을 막을 자신이 없으면 도쿄올림픽을 못하겠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일본은 세계인의 의구심을 덜어줘야 합니다.“
장 전 의원은 전국체전에 축구선수로 나가 준우승한 경험이 있다. 전주고교 축구선수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한일 (사)국회의원 축구연맹 제4대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과 일본 국회의원들의 교류전도 치렀다.
유신치하에서 민청학련 사건으로 7년, 전두환 치하에서 1년, 모두 8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때 고문을 심하게 당했다. 양평 집에서 이웃의 개가 크게 짖어도 잠에서 깨어나 고문받으러 끌려가던 밤이 떠오른다. 유신 때는 중정이 요구하는 반성문을 썼더라면 조금 일찍 석방될 수 있었는데 안 쓰고 버티며 감옥살이를 했다. 반성문을 써야 할 자들은 그들이었다. 그에겐 이런 뚝심이 있다.<고문 ·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정리=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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