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지난 20일 미국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 바이든 대선 후보가 출정식을 마쳤다. 바이든 호의 출항으로 그의 외교 노선 향방에 이목이 집중된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가 과도하게 비정통적(unorthodox)인 방식에 의존한 탓이다. 국내외의 모든 규범과 절차를 무시하며 권모술수와 협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곤 했다. 그 결과 미국의 우방과의 갈등은 비일비재했고 급기야 등을 돌린 나라도 생겼다. 트럼프의 외교가 지극히 비정상적이라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미국 외교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부풀어 오르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이든이 구상하는, 트럼프보다 더 ‘정상적인 외교’는 무엇일까. 바이든은 어떻게 미국 외교를 ‘정상화’하려 할까. 그의 2019년 뉴욕시립대학 연설과 2020년 저명 학술지 '포린 어페어스' 3·4월호의 기고문 '미국이 왜 다시 주도해야 하나(Why America must lead again)'를 보면 답이 있다. 바이든은 미국의 리더십과 영향력을 트럼프 이전으로 복귀시키고자 한다. 그 최선의 방법으로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 회복을 꼽는다. 그가 ‘국내정치가 외교정책이고 외교정책이 국내정치’라는 논리를 외교 기조로 삼은 이유다. 트럼프가 짓밟은 미국의 민주주의 전통과 가치, 이에 기반한 제도와 질서를 미국인들이 먼저 다시 존중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정글같이 무질서한 세계를 평화롭고 안정적인 세상으로 만들려면 누군가가 앞에 나서 질서의 기반인 제도와 규범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이런 역할을 자처할 나라가 없다면 세계는 무질서의 혼란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미국우월주의가 기초하고 있다. 미국이 아니면 기존의 자유세계질서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바이든은 국제사회의 다자협력을 미국이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독자적 해결이 불가능한 각종 국제문제의 속성에서 찾는다. 가령, 기후변화, 환경, 인권, 전염병, 난민,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의 문제해결은 국제공조와 다자협력을 전제로 한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 시급한 해결이 필요한 만큼 통일된 가치와 인식을 공유하는 나라들과의 협력을 우선 도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왜냐면 국제 제도와 규범의 투명한 운영과 준수가 다자협력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유세계질서의 수호 의지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단결과 협력이 국제문제 해결의 최선 수단이다.
이를 종합하면 바이든의 외교는 트럼프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 역시 트럼프와 같이 중국을 미국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방법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트럼프는 양자협상을 선호했다. 바이든이 의미하는 다자적 대응방식은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민주국가의 통일전선이다. 그래서 바이든의 다자방식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다자주의는 개방과 포용을 원칙으로 하는 진정한 다자주의가 아니다. 다시 말해, 가치가 다른 이들에게는 배타적이고 비개방적인 반쪽짜리 다자주의다.
바이든의 가치 연대 논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동맹, 우방국과 통일전선을 구축하면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출발했다. 이들과의 세력연합은 미국의 영향력과 힘을 각각 두 배 이상씩 증강시킨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이 세계경제력에서 차지하는 25%의 비중이 다른 민주국가들과 합해지면 미국의 힘이 두 배 이상 증강한다는 게 그의 논지다. 따라서 중국도 이런 시장 규모를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증강된 힘과 수적 우위는 중국에 레버리지를 가지게 만든다. 그리하여 미국은 환경, 노동, 무역과 기술 등의 분야에서 민주국가의 이익과 가치를 반영하는 제도와 질서, 규범과 규칙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현안에서 바이든이 트럼프와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은 관세정책과 인권 및 환경 문제다. 그는 트럼프의 관세 인상정책으로 미국의 중산층과 취약산업계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약속했다. 중국의 인권문제에서 그는 트럼프보다 더 단호하게 나설 채비다. 트럼프는 중국의 인권사태를 중국 내정임을 시진핑에게 인정했다. 반면 바이든은 홍콩, 신장, 티베트 등지에서 보여준 중국의 인권탄압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또한 환경문제에서도 그는 중국의 석탄 수출과 화력발전소의 해외 건설 지원을 지적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의 명목 아래 이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환경오염의 아웃소싱 행위로 비판했다. 이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바이든은 동맹관계에서도 트럼프와 결을 달리한다. 트럼프는 경제관념으로 동맹의 전통적 가치를 폄하했다. 따라서 그에게 동맹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바이든에게 동맹과 우방국은 미국의 국가안보와 가치동맹의 의미에서 관건적 역활을 한다. 이들은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통일전선의 핵심이고 자신의 지역에서 미국의 가치 수호와 확립에 필수불가결한 협력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이의 플랫폼으로 그는 2018년부터 코페하겐에서 개최된 ‘민주주의 정상회의(The Summit for Democracy)’를 활용할 태세다. 그가 임기 첫해에 이 정상회의의 미국 개최를 공약한 의미를 우리는 헤아려야 한다. 선례를 따를 경우 홍콩과 대만의 참여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해외주둔 미군의 운영과 관련해서 바이든의 사고는 '미국은 강하고 명석(smart)하다'는 강대국 논리에서 출발한다. 그에게 수만명의 미군 해외 배치는 무의미하다. 대신 수백명의 특공대와 주둔지역의 정보자산으로 동맹국과 공동의 적에 대응하기에 충분하다는 신념이 확고하다. 소규모 작전이야말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한 이점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이든 또한 트럼프와 같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바이든의 당선은 따라서 미국이 21세기 초에 한때 추진한 미국의 해외병력재배치(GPR)의 새로운 버전 개시를 의미한다.
바이든의 당선이 우리에게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세계가 한시적으로나마 가치와 이념으로 양분화될 공산이 크다. 중국과 당분간 척질 그의 민주주의 통일전선전략 참여를 두고 남남갈등이 명약관화하다. 또한 주한미군 감축을 대체할 미 군력의 자산 절충문제로 우리 외교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그의 당선에 대비한 우리의 지혜로운 대응방안 마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