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가 핵심 증거물들을 확보한 절차에 위법이 있다(위법수집증거)고 보면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다. 법조계에서는 압수수색의 절차적 정당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판결이라면서도 대체로 부정적 시각을 숨기지 않고 있다.
위법수집증거에 대한 판단기준이 일정하지 않고 들쑥날쑥해 또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지난 10일 서울고법 형사3부(배준현 부장판사)는 부당노동행위(노조와해)와 불법파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장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의심은 되지만 직접 개입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검찰이 제출한 주요 증거들이 '위법수집증거'들이어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위법수집증거?... 사전의 전말
지난 2018년 2월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삼성전자 사이에서 벌어진 이른바 '다스 관련 소송비 대납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삼성전자를 압수수색하게 됐다.이 과정에서 일부 자료가 인사팀으로 옮겨진 것을 확인한 검찰은 인사팀에 수사관을 보내게 되는데 이곳에서 엉뚱하게 삼성전자 노조와해 사건 자료를 확보하게 된다.
인사팀 직원이 자신의 차량에 옮겨 놓은 회사 하드디스크를 발견해 압수했더니 뜻밖에도 노조와해 관련 자료가 들어 있었던 것.
당시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에는 '인사팀'이 포함되지 않았고, 노조와해 사건도 압수수색 대상 사건이 아니었다. 이에 검찰은 추가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자료를 확보했다.
재판과정에서 삼성 측은 이것이 위법한 증거수집이라고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영장범위 밖의 장소에서 압수수색이 벌어졌으며, 원래 압수수색 영장도 최초에 제시되긴 했지만 인사팀에서는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1심은 삼성의 주장을 배척하고, 확보된 증거를 바탕으로 이 전 의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압수물이 있던 삼성전자 본사 인사팀 사무실이나 압수물이 옮겨진 장소는 1차 압수·수색영장에 적힌 수색·검증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핵심물증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압수를 당한 직원에게는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위법하다고 봤다.
'맞긴 맞는데...' 눈길 곱지 않은 법조계
이를 두고 법조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틀린 판단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위법수집증거 판단기준이 기존 관행을 훌쩍 뛰어 넘어선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이나 가혹행위 등을 방지하려고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절차적으로 다소 위법하다고 해도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려왔다. 절차적 하자가 실체적 권리를 심각할 정도로 침해하는 수준이어야 '위법수집증거'를 마지못해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으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정원은 이 전 의원의 집 압수수색을 1시간20분 동안 참여인 없이 진행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절차위반의 정도가 크지 않아 (당시 압수 물품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왕재산 사건' 등 진보진영을 대상으로 다른 시국사건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계속됐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이 동양대 강사휴게실에서 컴퓨터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소유권자인 정 교수가 아니라 현장에 임석한 조교를 압박해 받아낸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포렌식을 하면서 변호인이나 피고인의 참관도 허용하지 않았다 .
이 컴퓨터는 표창장 위조와 관련한 주요 증거가 나온 것이어서 위법수집증거가 인정될 경우 검찰의 주장이 통째로 흔들리게 된다. 하지만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와 정반대로 '검언유착' 사건에서는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휴대전화를 돌려주라는 판단이 나왔다. 압수수색 영장에 따라 채널A 측으로부터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휴대전화를 넘겨 받았지만 이 기자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한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들쑥날쑥',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대법원 판례는 다소 모순된다. 인권 보장을 위한 절차를 어겨 수집한 증거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판단과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게 실체적 진실 규명에 반한다면 예외적으로 증거로 쓸 수 있다는 판례가 모두 존재한다. 앞서 이 전 의장의 경우에도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체적 진실 발견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노트북을 소지했던 직원에 대해 영장제시를 하지 않는 등의 '절차적 하자'는 2차 영장으로 치유가 됐다고 본 것. 이에 반해 2심 재판부가 전혀 상반되는 판단을 한 근거이다.
실제로 절차적 하자가 있다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게 최근 법원 판단의 추세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다만 신장식 변호사(법무법인 민본)는 "삼성이라서 엄격하게 해석되는 것인지,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절차적 정의와 절차적 규범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지는 지켜봐야 될 문제"라고 말했다.
이 의장과 같은 거대기업의 임원이 아닌 평범한 사람에게도 같은 법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 것인데, 법조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갖는 의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