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다수의 힘' 앞에 맥 못 추는 '법치'

2020-08-13 14:55
  • 글자크기 설정

민주당은 '입법 독재', 법무·통일부는 '해석 독재'

‘합법’ 가면 썼지만 실제로는 무법ㆍ비법이 판쳐

'반대자 인정'· '힘 사용 자제' 기대는 불가능한가

[사진=이범종 기자]



현 정권에서처럼 법치주의가 논란거리가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법치주의 또는 법의 지배는 누구나 법을 지켜야 하지만 무엇보다 정부 권력이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정부 권력이 제멋대로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게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정부 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막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장치다. 그래서 법치주의를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고까지 한다. 그런데 그 원리가 민주화 운동세력의 정권이라는 현 정권에서 전례 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입법 독재’라는 새로운 용어를 유행시켰다.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라는 말은 있었어도 입법 독재라는 말은 없었다. 민주당은 임대차 관련 법안과 부동산 관련 법안들을 야당의 반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법 절차도 무시한 채 통과시켰다.

소위원회 심사, 찬반토론 모두 건너뛰고 속전속결
 
지난 7월 28일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관련 법안 11건을 상임위원회에서 처리하면서 소위원회 구성, 소위원회 심사, 축조 심사(법안 조문을 한 개씩 읽어가며 심사하는 것), 상임위 전체회의 찬반 토론을 모두 생략했다. 다음날에는 세입자의 임대차 계약 갱신 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등을 도입한 주택임대차보호법안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미래통합당은 민주당의 일방 강행 처리에 반발해 상임위원회에서 퇴장했다. 민주당은 상임위에서 처리한 법안들을 7월 30일과 8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모두 통과시켰다. 상임위 심사에서 본회의 통과까지 모든 절차를 며칠 새에 끝내버린 것이다.

국회법 제58조에는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대체토론, 축조심사,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하도록 돼 있다. 또한 대체토론 뒤에 소위원회에 회부하여 이를 심사·보고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대체토론이란 안건 전체의 문제점과 타당성 여부에 관한 일반적 토론 및 제안자와의 질의·답변을 말한다. 법안 심사에 충분한 토론과 심사숙고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졸속 처리를 하지 말라는 규정도 있다. 법안이 위원회에 회부된 날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으면 위원회에 상정할 수 없다는 국회법 제59조 규정이다. 이른바 ‘숙려 기간’을 정한 것이다. 그 기간은 해당 위원회 15일, 법사위 5일을 합쳐 20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기간 제한도 무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독단적 법 해석에 의한 이른바 ‘해석 독재’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검사 인사를 할 때 검찰총장 의견을 들어서 하라는 검찰청법 제34조 규정을 검찰총장과 협의해서 하라는 게 아니고 ‘그냥 들으라는 것’이라고 해석한 게 그 예다. 추 장관은 지난 3월 인사 때 검찰 인사위원회를 불과 30분 앞두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할 말 있으면 하라고 했다. 지난 7일 두번째 인사 때는 법무부 담당 과장을 대검에 보내 검찰총장에게 의견 있으면 내라고 했다.
 
검사 인사에서 검찰총장 배제, 수사권 박탈까지
 
검찰총장은 검사들을 지휘하며 검찰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책임자다. 그래서 검사 인사는 검찰총장과 협의해서 검찰총장 의견을 반영해 하라는 것이 법 규정의 취지다. 이 규정은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이전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협의해서 인사를 했다. 법 규정은 없었지만 검찰총장의 지위와 역할 상 그렇게 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이 정권의 초대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이 관행과 법 취지를 존중해 문무일 검찰총장과 협의해서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추 장관이 관행도, 법 취지도 깨고 ‘그냥 들으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나온 것이다.

추 장관은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지휘권에 관해서도 해석 독재를 했다. 검찰청법 제8조에는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 수사에 관해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게 돼 있다. 동시에 이 법 제12조에는 검찰총장은 전국 검사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갖는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합쳐서 해석하면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지휘권은 총장의 검사 지휘권 자체는 인정하면서 구속이나 기소 여부 같은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한 지휘권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추 장관은 채널A기자의 소위 ‘검·언 유착’ 사건 수사 지휘에서 검찰총장은 아예 손을 떼라고 했다. 총장의 검사 지휘권 자체를 박탈한 것이다. 그러면서 “구체적 수사 지휘권에는 지휘권 박탈도 명백히 포함된다”는 해석을 내놨다. 검사장 회의에서도 지휘권 박탈은 위법·부당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법조계에서도 이런 의견이 많았다. 그럼에도 추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해석 독재’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해석 독재의 예는 또 있다.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교류협력법의 반출에 해당하고 따라서 사전에 통일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통일부 해석이 그것이다. 남북교류협력법 제2조는 반입·반출을 ‘매매, 교환, 임대차, 사용대차, 증여, 사용 등을 목적으로 하는 남한과 북한 간의 물품 등의 이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가 매매, 교환, 임대차 등 어디에 해당하기에 반출이라는 건가. 더구나 이 법 제1조는 남북교류협력법의 목적을 남한과 북한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의 규정으로 정하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일이라는 말인가.

대북 전단 살포를 북한에 대한 물자 '반출'이라 주장

민주주의는 결정의 ‘내용’에 관한 원리라기보다 ‘절차’에 관한 원리다. ‘무엇을’ 결정하느냐보다는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국회법에 법안의 전반적 문제점과 타당성 여부에 관한 대체토론, 소위원회 구성과 심사, 축조 심사, 찬반 토론, 숙려 기간 같은 자세한 입법 절차를 규정한 것은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내용보다 절차를 강조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적 절차를 거친 결정이라야 그 결정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저항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또 하나 이유는 법안의 전반적 문제점과 타당성 여부에 대한 심사숙고의 절차를 거친 결정이라야 결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임대차법, 부동산법 처리 과정에서 국회법 규정을 대놓고 무시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야당 등은 ‘입법 독재’라는 말로 결정 과정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법안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전세 물건이 사라지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곳곳에서 갈등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 사례를 소개하며 해결책을 묻는 글들이 넘쳐난다. 부동산 취득세, 종부세, 양도세가 한꺼번에 올라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없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는 하소연도 이어진다. 임대료(전·월세) 상한제는 이미 선진 국가에서 도입했다가 부작용이 커 폐지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여론 역시 입법 독재는 안 된다는 쪽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이 공동으로 실시한 8월 1주차 전국지표조사 리포트(8월 6~8일, 전국 1005명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법안 처리 방식에 대한 질문에서 ‘다수 의석 집권 여당의 독단적 행동’이라는 응답이 53.0%, ‘총선 민심이 반영된 의석 구조에 따라 일하는 것’이라는 응답이 38.0%였다. 향후 입법 처리 방향에 대해서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야당과 협의’가 66%, ‘야당이 계속 반대 시 여당 단독으로라도 처리’는 30.0%였다. 압도적 다수가 민주당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한 국회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당리당략적 시간 끌기와 발목 잡기에 더 이상 부동산 입법을 지체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와 만나서는 “부동산 입법은 시간이 촉박하고 급해서 그렇게 (강행) 처리했는데”라고 말했다고 주 원내대표가 기자들에게 전했다. 유신 독재의 명분이 ‘효율적 민주주의’였다. 민주적 절차를 거치려면 야당과 싸우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이는 국가 행정에 비효율적이라고 했다. 김태년 대표의 말은 ‘민주적 절차=비효율’이라는 유신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법의 지배’는 말장난이라고 했다. 인간이 지배하지 어떻게 법이 지배하느냐고 했다. 그는 “법에는 입이 없다”면서 “법은 사람을 통해서만 말을 할 뿐”이라고 했다. 홉스가 한 말의 본래 뜻은 법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다. 법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것이라 그것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집행하는 사람에 따라 흉기가 될 수도 있고 이기(利器.이로운 물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법을 말하는 입’인 법 집행자의 상식과 양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반대자 존재 인정' '힘 사용 자제' 는 강자의 덕목이건만

민주당은 부동산과 임대차 관련 법안 처리 과정에서 소위원회 구성과 법안 심사를 생략한 것을 통합당이 비난하자 이렇게 말했다. “국회법(제57조)은 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했지 ‘반드시 둬야 한다’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이 법 제58조에 “상임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소위원회에 회부하여 이를 심사·보고하도록 한다”고 돼 있는 규정은 외면한다. 합리적 법 해석은 법 규정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법의 취지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다. 자기한테 유리한 부분만 뚝 떼다가 근거로 삼는 것은 독단적 해석이다.

독단적 법 해석은 법의 취지를 왜곡해 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아무리 법대로 하는 것이라고 우겨도 실제로는 집행자 멋대로 하는 것이다. 합법의 가면을 썼지만 사실은 무법이고 비법이다. 이런 곳에서 ‘법의 지배’는 진짜 말장난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법의 지배’는 말장난이 돼 가고 있다.

현 집권세력이 야당이나 반대자를 합법의 가면을 앞세워 몰아칠 수 있는 것은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당이 됐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힘의 원천은 숫자다. 다수가 힘으로 누르려 할 때 소수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통합당이 민주당의 다수결 강행 정치에 속수무책인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얘기가 좀 다르지만, 지난 15일 일 광복절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정부 규탄 시위를 벌였다. 서울시는 그 이틀 전인 13일 코로나 집단 감염을 우려해 집회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단체들은 집회를 강행했다. 전광훈 목사는 연설까지 했다. 결국 집회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 이 역시 다수가 힘으로 밀고 나가면 법이 얼마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강자인 다수 세력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 2명이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다수 세력의 덕목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다.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집단의 존재와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의지를 말한다. 제도적 자제란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선거로 압도적 힘을 갖게 된 현 집권 세력에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덕목을 기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기대는 불가능할 것이다.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곧 정의'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픈 우리 현실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