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K공연 대실험…'미스터 트롯'의 정치경제학

2020-08-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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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송파구청, 정파 떠나 민심 헤아린 선택

  

     4번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개막한 '미스터 트롯' 콘서트 [사진제공=TV 조선]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미스터 트롯’ 7일 공연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연문화가 고사해가는 위기에서 벌어진 K방역의 모험적인 시도였다. 미스터 트롯의 공연금지 명령은 송파구청의 단독 결정이었지만 다시 공연을 허가하기까지 청와대는 물론 문화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깊숙한 논의가 있었다. 최근 잇따른 강성조치로 국정 지지율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시청률 37.5%의 미스터 트롯을 마냥 봉쇄하기에는 정부로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개막공연 사흘을 앞두고 송파구청은 미스터 트롯 공연 신청을 접수한 구청 공무원을 인사조치하고 공연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무대설치비 5억원을 날리게 된 콘서트 제작사 쇼플레이는 송파구청을 상대로 집합금지명령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으나 기각됐다. 대규모 콘서트의 경우 밀접 접촉으로 침방울과 비말 감염이 우려된다는 송파구청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검사 출신인 박성수 구청장은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냈다. 19, 20대 총선 출마 때는 문재인 변호사가 후원회장을 맡았을 만큼 핵심 친문으로 분류된다. 보수적인 신문의 자회사인 TV조선과 채널A를 바라보는 여권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천하공지의 사실이다. 채널A와 TV조선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올 4월 조건부로 재승인을 했다. 채널A 기자의 재판 결과와 공정성 부문 평가에 따라 재승인이 거부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공연 금지 행정명령이 내려졌으니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무산될 뻔했던 미스터 트롯 공연이 살아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막후교섭이 분주했다.

K방역과 공연의 시금석될 미스터 트롯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당분간 인류가 코로나와 공존할 수밖에 없고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공연금지는 가장 쉬운 결정입니다. 그러나 K방역으로 세계의 인정을 받은 한국에서 다시 세계의 모범이 되는 K공연을 한번 해봅시다.” 
TV조선 김민배 대표는 구청 실무자들을 만나 설득했고 그의 견해는 구청장에게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전달됐다. 마침내 김 대표와 박 구청장의 전화 담판이 이뤄졌다.
양극화가 첨예한 정치 언론 환경에서 극단으로 흐르지 않고 타협점을 찾은 것은 의미가 크다. 정치와 무관한 미스터 트롯 애청자들에게 박수를 받은 결정이었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은 1만5000석 규모의 공연장에 두 자리 띄우고 한 명씩 앉는 식으로 5000명 관객을 수용했다. 비우는 좌석에는 아예 테이프를 붙여 의자를 펴지 못하도록 했다. 함께 온 부부도 떨어져 앉아야 했다. 쇼플레이는 미스터 트롯 공연을 위해 10억원이 넘는 방역비용을 투입했고 이날 공연 중 곳곳에서 근무자들이 청중의 마스크 탈착과 거리두기를 감시했다.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15회 공연 동안 철저한 방역을 통해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5000명 공연을 이어간다면 세계에서 K자가 붙은 기록을 다시 수립하는 공연이 될 것이다.
나는 인생 2모작을 시작한 후 일주일에 한번씩 가요교실에 다녔다. 바쁘게 살았던 1모작 인생에서 가요교실은 나의 버킷 리스트였다. 그러나 가요교실이 코로나로 문 닫는 바람에 노래 배울 곳이 사라져 요즘은 인생의 낙이 하나 줄어들었다.
나의 18번 중에는 트롯이 들어 있지 않다. 트롯은 우선 가사가 구식이어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인생’ ‘돈’ ‘사랑’ ‘이별’ ‘세월’ ‘눈물’ ‘술잔’처럼 구태의연하다. 작사가들의 문장론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이런 노래 가사는 정말 70년대 계란 노른자가 들어간 쌍화탕이 나오는 다방에나 어울린다.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같은 노래는 현대풍을 가미했지만 노래교실 수강생이 부르기에는 좀 어려웠다.

개천에서 난 영웅 

개막공연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은 임영웅의 모습[사진제공=TV조선]


나는 ‘미스터 트롯’ 공연장 입구에서 카카오톡으로 QR코드를 생성해 인식시키고 입장해 세시간 반 공연 동안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이날 공연에서 임영웅의 트롯을 처음 들어봤다. 가슴을 저미는 목소리였다. 트롯으로 저렇게 감동을 줄 수 있단말인가. 그는 편모 슬하의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했던 어린 시절에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단의 리오넬 메시의 광팬이었다. 축구선수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한국 가요의 메시가 됐다는 것이 이날 공연을 지켜본 나의 소감이다.
임영웅은 군인이던 아버지가 다섯살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포천에서 미용실을 하며 아들을 키웠다. 임영웅은 왼쪽 볼에 흉터가 있다. 녹슨 쇠양동이에 광대뼈를 찧어 상처가 났으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무명가수 시절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 택배 상하차 알바를 했고 군고구마도 팔았다.
이날 공연이 끝나고 지하철 역 가는 길에서 임영웅 이름이 쓰인 파란 플라스틱 봉을 흔드는 60대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내가 “임영웅이 이름대로 영웅이 됐네요”라고 말을 붙였더니 “오늘은 임영웅 데이입니다”라는 화답이 돌아왔다.
임영웅은 유튜브에서 500만회를 기록하고 있는 데스파시토를 체조경기장에서 열창했다. 중남미 가수 루이스 폰시의 발라드로 2017년에 선을 보였다. 폰시의 데스파시토는 68억 뷰를 돌파해 유튜브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신이 나는 노래다. “네가 흥분해 소리 지르고 이성을 잊어버릴 때까지…” 가사가 다소 야하지만 스페인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문제될 일은 없다. 임영웅은 원래 발라드를 좋아하고 잘 부르는데 그의 공연을 본 나이든 아주머니들로부터 “트롯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주종목을 바꾸었다고 한다. 체조경기장은 목측으로 어림잡아 청중의 90%가 여성이었다. 사회자가 연령대별로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50대와 60대에서 가장 큰 함성이 나왔다.

이념중립적이고 실용적인 행정 확산돼야

13살 초등학생 정동원의 노래와 색소폰 연주도 들어줄 만했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적에는 유행가를 따라부르다 어른들한테 “공부나 하라”고 혼이 났다. 저 정도의 노래와 색소폰 솜씨면 대학 나와 취직도 못하는 공부는 해서 뭘 하겠나. 
공연계 관계자는 “공연은 제작비 때문에 미스터 트롯처럼 두 자리 비우기 같은 거리두기를 할 수 없다. 하지만 관객이 공연 내내 100%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안전하다. 공연이 6,7개월 거의 죽어 있다가 최근 서서히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 엔드는 공연이 완전히 중단돼 언제 막을 올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미국과 영국의 코로나 확산 실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미스터 트롯의 15일 공연을 지켜보는 세계인의 눈이 많다.
대규모 공연에서 코로나 방역의 어려움 때문에 한때 강경했던 박 구청장이 유연한 자세를 보인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 사회에선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극단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진보가 KBS와 MBC를 사실상 접수했으면서도 두 종편 채널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한 조치를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다. 미스터 트롯 공연에 대한 이념 중립적이고 실용적인 판단이 입법과 행정의 다른 분야에서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논설고문 ·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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