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E1 채리티 오픈에서 만난 유해란(19·SK네트웍스)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시 선두권에 있던 그에게 기자가 던진 질문은 '완벽한 우승을 꿈꾸지 않았는지'였다. 유해란은 지난 시즌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태풍 '레끼마' 수혜로 2라운드(36홀) 우승을 차지했다.
'개의치 않는다'던 유해란이 또다시 제주에 섰다. 이번엔 '타이틀 방어'라는 미션도 주어졌다. 신분도 '추천 선수'에서 '신인'이 됐다. 얼떨떨했떤 표정은 사뭇 차분해졌다. 유해란은 31일 제주 세인트포 골프 앤 리조트(파72·6500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반기 첫 대회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8억원·우승상금 1억6000만원) 둘째 날 버디 6개, 보기 한 개를 엮어 5언더파 67타, 중간 합계 12언더파 132타로 선두에 올랐다.
둘째 날 아침. 대회장에서는 첫날 잔여 경기 소화로 분주했다. 유해란은 기상 악화가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안쪽(10번홀) 티박스에 올랐다. 파로 잘 마무리한 그는 11번홀(파4) 보기를 범했다. 벙커가 원망스러웠다. 15번홀(파5)까지는 파로 유지했다. 16번홀(파3)과 17번홀(파4) 두 홀 연속 버디가 터졌다. 흐름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유해란은 이날 티박스에서 평균 245.7야드를 날렸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85.71%(12/14), 그린 적중률은 88.89%(16/18)로 완벽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평균 퍼트 수는 29개로 안정적이었다.
이날 5타를 줄인 유해란은 첫날 줄인 7타를 더해 12언더파 132타로 2위 그룹(11언더파 133타)을 형성한 배선우(26·다이와랜드그룹), 조아연(20·볼빅), 신지원2(23)에 한 타 앞서 순위표 맨 윗줄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유해란은 “초반에 보기를 범했다. 아쉬웠지만, ‘천천히 치자’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좋은 성적이 났다”며 “실수를 해도 최대한 잊어버리려고 한다. 워낙 낙천적이다. 문제점을 체크하고 잊어버린다”고 했다.
유해란은 ‘신인왕’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우승은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유해란은 “신인이라 신인상에 욕심이 난다. 시즌 초반에 신인상을 의식하다 보니 오히려 성적이 좋지 않았다. 불편했다. 이제는 ‘하늘이 점지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려 한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말미에 유해란은 “지난 시즌에는 정말 얼떨떨하게 우승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차분해졌다. 체력 문제도 보완을 마쳤다”고 2연패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편 유해란을 비롯한 '국내파'의 강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해외파’는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성적이 좋은 것은 이정은6(24·대방건설)다. 그는 8언더파 136타로 공동 9위에 위치했다. 선두인 유해란과는 4타 차다.
김효주(25·롯데)는 7언더파 137타 공동 13위에 위치했고, ‘절친’ 박인비(32·KB금융그룹)와 유소연(30·메디힐)은 6언더파 138타로 19위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