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격화로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커촹반이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를 기술주 상장의 ‘메카’로 부흥시키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진단했다.
◇’주식등록제’가 이끈 빠른 성장세… 상장사 70%가 상장 후 주가 두배
지난해 7월 22일 정식 출범한 커촹반은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추가로 설치된 기술창업주 전문 시장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2018년 11월 설립 필요성을 역설한 지 단 220일 만에 출범했다.
상장사가 증가하고 돈이 몰리면서 시가총액도 빠르게 불었다. 21일 기준 커촹판 시총은 총 2조6000억 위안(약 445조2800억원)을 돌파했다. 펑파이신문에 따르면 커촹반 상장사의 67%는 상장 후 주가가 두배 이상 뛰었다.
이 같은 커촹반의 빠른 성장은 파격적인 규정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다. 커촹반은 출범 당시 상장 요건을 크게 낮췄다. IPO 제도를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실시한 것. 중국 정부의 상장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고, 적자 기업도 상장이 가능했다. 나스닥처럼 창업자가 차등 의결권도 가질 수 있으며, 상장 5거래일간 상·하한폭 제한도 두지 않았다. 개별종목 공매도도 허용됐다.
이 같은 주식등록제는 커촹반에 먼저 시범적으로 도입된 이후 창업판에도 도입되면서 중국 자본시장 개혁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둥덩신(董登新) 우한과기대 금융증권연구소장은 “커촹반의 성공은 ‘주식등록제’와 ‘상장폐지제’에서 비롯됐다”며 “과감한 제도 개혁으로 시장이 순탄하게 성장했다”고 진단했다. 커촹반은 상장 기준을 완화하는 대신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했다. 기존 중국 증시에서 상장폐지는 위험 경고, 잠정정지, 폐지 순으로 진행됐지만 커촹반의 경우 상장폐지 경고 후 바로 상장폐지된다.
◇SMIC이어 앤트그룹으로 ‘날개’… ‘커촹50지수’ 23일 탄생
블룸버그는 커촹반을 ‘미·중 기술전쟁의 새로운 방패’로 표현하면서 “방패가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 규제로 나스닥에 상장을 꺼려하는 중국 대기업이나 기술 기업이 ‘커촹반행’을 택하면서 상하이거래소가 활기를 띠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최근 커촹반 상장을 마친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 중신궈지(中芯國際·SMIC)다. SMIC는 커촹반 개장 이후 역대 최대 IPO 규모인 총 532억3000만 위안을 조달했다 중국 증시에서 약 10년 만의 최대 'IPO 대어'가 탄생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일에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인 앤트그룹이 홍콩 증시와 커촹반 동시 상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앤트 그룹이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할 구체적인 자금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시장에서는 시장가치가 2000억 달러(약 24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중국 국영은행인 중국건설은행 기업가치를 뛰어넘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앤트그룹은 올해 전세계에서 이뤄지는 IPO 중 가장 큰 규모를 달성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움직임은 미래 혁신기업들의 안정적 성장 토대를 마련해 주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커촹반의 갈 길이 여전히 멀다"며, "세심한 제도 개선으로 상장사의 질을 높이고,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 커촹반 시장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지수인 ‘커촹50지수’도 23일 탄생한다. 커촹반 상장 종목 중 시가총액 규모가 크고 유동성이 우수한 대표 종목 50개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중국 하이테크 기업 주가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