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시장을 둘러싼 논란... 사자명예훼손죄가 뭐길래

2020-07-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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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박 전 시장의 전직 비서 A씨는 “박 전 시장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며 서울지방경찰청에 박 전 시장을 고소했다. 검찰은 박 전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관련 규정에 근거해 이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는 수사 받던 피의자가 사망해 더 이상 처벌할 수 없는 경우 검사로 하여금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의자를 처벌하려면 수사, 기소, 재판, 판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이 같은 비용이 낭비되는 것을 막고자 ‘공소권 없음’ 처분 제도를 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도 형사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형사상 절차가 그대로 종결된다.

그리고 지난 13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박 전 시장과 관련한 논란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강용석 변호사, 김용호 전 연예기자, 김세의 전 MBC 기자는 지난 10일 그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현장출동, 박원순 사망 장소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박 전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와룡공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생방송을 진행했다.

이들은 “실제로 시신이 발견된 숙정문, 거기까지 무려 40분 넘는 길”이라며 “산을 오르며 (박 시장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서 걸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숙정문은 숙청문이라고도 한다”, "숙정문을 거꾸로 읽으면 문정숙이다. '문재인+김정숙', 상징적 의미 같다", “박원순의 오늘이 문재인의 내일이 될 것이다”, "넥타이로 목을 맸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넥타이라면 에르메스 넥타이를 매셨겠다"라며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강 변호사는 성곽 길을 걸으며 “박원순 역점 사업 중 하나가 서울 성곽 복원사업”이라고, 김용호 기자는 “좌파들은 항상 남이 하던 걸 자기 것으로 한다”며 “처음 추진한 사람은 유인촌 장관이었다”고 지적한 후, “노무현 그랬지, 노회찬 그랬지, 뻑하면 자살하고 이런 방식으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배현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시장의 아들 주신씨가 귀국한 것을 두고 “장례 뒤 미뤄 둔 숙제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당당하게 재검 받고 2심 재판에 출석해 오랫동안 부친을 괴롭혔던 의혹을 깨끗하게 결론내 달라”며 병역비리 논란을 다시 꺼내들었다.

배 의원이 언급한 사안은 지난 2013년 검찰이 이미 무혐의 처분을 내려 사실상 종결됐다. 당시 주신씨는 기자들이 증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다시 받았다. 검찰과 병무청은 해당 결과를 토대로 박씨의 공익근무 판정이 정당하다고 결론을 낸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승목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 대표는 강용석 변호사, 김용호 전 연예기자, 김세의 전 기자를 박 시장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14일 수사당국에 고발했다. 신 대표는 고발장을 통해 "김용호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건과 관련한)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다. 다른 피해자들의 고소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며 “이는 피해자가 다수라는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신 대표는 배현진 미래통합당 원내대변인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고발할 방침이다. 신 대표는 “2012년 2월 박주신씨의 공개 신체검사에 언론사 기자들도 참여했고, 다음해 서울중앙지검에서 박주신씨의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면서 “이는 고인에 대해 악의적으로 비방하려는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며 정쟁화를 하려는 의도로도 보여진다”고 고발 취지를 설명했다.

경찰은 오는 21일 고발인 조사를 시작으로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경찰청은 해당 사건을 서울지방경찰청에 배당했고, 서울지방경찰청은 다른 사건과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 직접 수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사자명예훼손죄란 무엇이고 어떤 경우에 인정될까?

◆ 고인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해야 사자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죄는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해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말한다. 형법 제308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될 수 있다. 진실한 사실을 이야기했을 경우 그 내용이 매우 비판적이라 하더라도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때에도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정한 평가도 처벌받게 되어 역사의 정확성과 진실이 은폐될 우려가 있어서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및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에 대해 지난 2019년 6월 8일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씨는 지난 2016년 11월과 2017년 2월 보수단체 집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께 삼성으로부터 8000억원을 걷었고, 이해찬 전 총리가 이를 주도했다”고 연설했다. 이를 두고 대법원은 “김씨의 연설은 사실 관계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줬다. 단순히 연설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언론에 보도돼 명예훼손이 심해졌다”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사자명예훼손죄의 경우 피의자가 적시한 사실이 진실이냐, 허위냐를 두고 법원에서 피고인 측과 검사 간에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전두환씨 역시 지난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현재 광주지방법원 형사8단독(재판장 김정훈 부장판사)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조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전씨는 재판에서 “조 신부가 목격했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계엄군 헬기 사격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씨의 주장대로 헬기 사격이 없었다면 조 신부를 비난한 전씨의 명예훼손 행위는 '사실 적시'였기 때문에 '사자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 반면 실제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조 신부의 목격담은 진실이 된다. 그렇다면 전씨가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이 없었다며 조 신부를 비난한 것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사자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어 전씨를 처벌할 수 있게 된다.

◆ 사자에 대한 모욕은 처벌할 수 없어

만약 법원에서 전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전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면 조 신부에 대해 ‘사탄 등’의 표현을 한 점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을까?

전씨가 회고록에서 한 표현은 경멸의 의사표시, 즉 모욕으로 볼 수 있다. 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 없어서다. 형법 제311조는 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하는 사람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 대한 모욕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지난 2019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병기 의원이 ‘사자 모욕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적이 있었으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사자에 대한 모욕까지 처벌하는 것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비판적 표현행위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현행법상 전씨의 위와 같은 표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검사가 사자명예훼손에 대한 고의성을 입증 못하면 처벌할 수 없어

그렇다면 피의자가 허위 사실을 진실한 사실로 오해하고 유포한 경우도 사자명예훼손으로 처벌 될까?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다는 고의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허위사실이지만 피의자가 진실한 사실인 줄 알았다면 고의성이 부정되며, 피의자가 고의를 가지고 사자명예훼손죄를 저질렀다는 점은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

지난 201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독일에 갔지만, 당시 독일 대통령은 만나지도 못했다”는 내용의 발언으로 기소된 주진우 시사IN 기자는 이듬해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당시 배심원들은 “주 기자가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허위사실을 적시하려는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배심원 9명 중 8명이 무죄, 1명이 유죄 의견을 내자 재판부는 배심원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이라고 유포해도 사자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어

현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 “박 전 시장이 전직 비서를 성추행해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같이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박 시장의 혐의를 기정사실화한 뒤 박 전 시장을 가해자라고 유포하는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사자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을까?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이러한 언론 출판의 자유는 의사표현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 의사표현의 자유를 가진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헌법은 제10조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있고, 제21조 제4항에서 개인의 명예를 특별히 언론에 대하여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개인의 명예권 역시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직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박 전 시장이 가해자라고 단정하는 것은 관련 헌법 규정과 형법에 따라 사자명예훼손이 인정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박 전 시장이 받고 있는 혐의가 허위의 사실에 해당하는지 따져 봐야 한다.

◆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면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면 형사상 처벌 외에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지난 2015년 6월 초 부산대 최우원 전 교수는 과학철학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노무현은 전자개표기 사기극으로 당선된 가짜대통령이다. 자네들이 노무현 전자개표기 사기극 사건을 맡은 대법관이라면 어떻게 판결문을 쓸 것인지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강의실에서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노 전 대통령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노건호씨는 최 교수를 사자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하고 1억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도 함께 냈다.

최씨는 민사소송에서 자신의 행위는 표현의 자유 내지 언론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그 누구의 명예도 훼손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부산지방법원 민사합의 6부(이균철 부장판사)는 "원고가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당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으므로 피고는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최씨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후 재판부는 "사건 행위 표현 내용, 망인에 대한 경멸적 표현의 악의성, 사건 행위가 이뤄진 장소와 대상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피고가 원고에게 배상해야 할 위자료를 2500만원으로 정한다"고 지난 2016년 11월 27일 판결한 바 있다.

◆ 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

한편 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에 속한다. 친고죄란 피해자 등 고소권자의 고소가 반드시 있어야만 공소제기를 할 수 있는 범죄를 뜻한다. 형사소송법 제227조는 사자명예훼손의 경우 사자의 친족 또는 자손을 고소권자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강용석 변호사 등을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신 대표 역시 “유족의 처벌 의사를 확인해 제출하겠다”는 내용을 고발장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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