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연체율이 수직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위축이 장기화하면서 그동안 규제·감독 사각지대에서 활동했던 P2P 업체들의 부실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P2P 거래 특성상 돈을 빌려 간 사람이 제때 갚지 않으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이어질 수밖에 없어 신규 투자자들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라임 이은 또 하나의 금융사기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였던 P2P 대출업체는 최근 대규모 펀드 환매 중단 사태에 휘말려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P2P 대출업체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으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서울남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팝펀딩은 홈쇼핑이나 오픈마켓 판매업체(벤더) 등 중소기업의 재고 자산 등을 담보로 잡고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빌려주는 동산담보 대출을 주로 취급해 왔다.
한국투자증권은 2018년부터 분당 PB센터를 중심으로 자비스·헤이스팅스자산운용이 팝펀딩과 연계해 운용하는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자비스 팝펀딩 홈쇼핑 벤더)'과 '헤이스팅스더드림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헤이스팅스 더드림)'을 판매해왔다.
그러나 일부 업체의 대출 상환이 지연되면서 총 355억원 규모의 투자 원리금 상환이 연기됐다. 이에 금융감독원의 의뢰를 받아 팝펀딩의 사기 혐의를 수사해온 수원지방검찰청은 최근 신현욱 팝펀딩 대표를 구속하고 조만간 사기 혐의로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팝펀딩 피해 투자자들은 검찰 수사에서 팝펀딩의 사기 혐의가 드러난 만큼 투자금 전액을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우리은행·하나은행 등 5개 판매사에 투자금 전액을 돌려주라고 권고한 것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
팝펀딩 피해 투자자 대책위 관계자는 "안정적으로 담보를 확보한다는 설명과 달리 부실 대출, 담보물 횡령 등으로 인해 펀드 가입 당시 설명한 수준의 담보가 확보되지 않았다"며 "최근 벌어진 라임·옵티머스펀드 환매 중단과 유사한 또 하나의 금융사기"라고 주장했다.
◆평균 연체율 사상최초 17% 돌파··· 업계 1위도 리스크 관리 비상
더 큰 문제는 투자자 피해가 팝펀딩 한 곳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일 기준 P2P 대출업체 146개사의 총 누적 대출금액은 10조8409억원 규모다. 2017년 말 1조6820억원에 불과했으나 2년 반 만에 544.52%(9조1589억원) 급증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동시에 연체율도 연일 사상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7일 기준 P2P 대출업체의 평균 연체율은 17.06%로 사상 처음으로 17%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11.41% 수준에서 올해 들어 5.65% 포인트 급등했다.
연체율 100%인 업체도 9개사에 이르며, 20.01~99.99% 연체율을 기록한 업체도 12개사로 적지 않다. P2P 대출기업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테라펀딩도 연체율 20.18%로 여기에 포함됐다. 이들 21개사의 누적 대출금액은 총 2조4097억원으로 업계 전체의 22.23%에 해당한다.
이들은 오는 8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연체율을 낮추지 못한다면 금융당국의 관리·감시를 받아야 한다. 온투법에 따르면 연체율 20%가 넘는 업체는 금융당국에 신고 시 리스크 관리 방안을 마련해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온투법에 따르면 P2P 대출업체는 연체율이 10%를 넘으면 일부 영업방식을 제한하고, 15%를 넘으면 이를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도 신규 투자자를 계속 모집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연체율이 높은 P2P 업체가 오히려 소셜미디어(SNS)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투자자를 유인하면서 부실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P2P 대출업체 관계자는 "지금 수준의 연체율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신규 산업이라 고객 기반이 넓지 못한 탓에 평판과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업계의 신중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시점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규제에 코로나19 겹쳐 위기··· 규제·감독 없었던 영향이란 지적도
이같이 P2P 대출업체에서 경고음이 들리는 것은 대출 규제와 코로나19에 의한 경기 위축의 영향이 적지 않다. 우선 지난해 말부터 정부가 대규모 집값 안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위축됐다. P2P 대출 상당수가 부동산 시장 혹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보니 부동산 경기 위축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2월부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도 연체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전체적인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상당수 대출에서 연체가 발생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문제가 겹쳐 올해 업계를 대표하던 대형 P2P 업체가 부도를 내기도 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P2P 대출상품에 대한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P2P 대출상품이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 고위험·고수익 상품인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투자자 유의사항을 숙지한 후 자기 책임 아래 투자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사모펀드에 이어 P2P 대출업체에서도 잇따라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놓고 그동안 규제·감독에서 벗어나 있었던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였던 금융 영역은 리스크 관리가 부실했던 탓에 위기 상황에 취약하다.
실제 사모펀드나 P2P 대출업체와는 달리 금융당국의 규제·감독의 영향 하에 있던 제도권 금융사는 오히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실물경기를 지원해달라는 주문을 받을 정도로 리스크 관리가 철저한 것과 대비된다.
특히 P2P 대출업체는 금융업 인정과 온투법 제정 및 시행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수 P2P 대출업체는 2017년부터 영업을 개시했으나 금융당국이 P2P 대출업을 인정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2년 이상 규제·감독 공백 속에서 리스크 관리에 대한 검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모펀드나 P2P 대출업체는 규제·감독을 받지 않았던 만큼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안 된 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며 "은행을 판매처로 활용하거나 중위험·중수익 같은 슬로건을 앞세워 고객에게 제대로 위험을 알리지 않고 영업을 했던 관행 탓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