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고, 공정위는 숨통을 틔워줬다

2020-06-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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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애플코리아가 신청한 동의의결 절차 개시

애플코리아, 소비자·중소사업자를 위한 상생방안 제시

입장문에서는 "그 어떤 법 위반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

공정거래위원회가 애플에 면죄부를 줄 포석을 마련했다. 최종적으로 애플의 자정 시정안이 인용되면 막대한 과징금과 법 위반 판단에서 벗어난다.

애플의 이중적인 태도도 문제다. 공정위에 과거 잘못을 자진 시정하겠다고 했지만, '그 어떤 법 위반도 하지 않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국내 이동통신사에 대한 '갑질'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지난 17일 전원 회의에서 애플코리아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건과 관련해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공정위는 2016년 6월 애플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사실에 관한 조사에 착수했다. 2018년 4월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상정하고 애플에 발송했다.
 

[사진=아주경제 DB]

애플은 세 차례의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난해 6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동의의결은 불공정 거래 행위가 있다고 판단될 때 해당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피해 구제 등 시정방안을 마련하면 공정위가 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애플은 법적으로 유·무죄 판단을 다투기보다 이통사와의 거래 관계를 개선하는 쪽을 택했다. 공정위도 이에 동의했다.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의 특성상 사업자에 대한 법적 제재보다 자발적인 시정조치가 피해자를 더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동의의결은 사안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이해관계자들의 보상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반면 법적 다툼을 벌이지 않아 기업 봐주기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동의의결이 확정되면 애플 갑질에 대한 위법 여부를 가리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동의의결은 사업자가 제안한 시정방안이 타당하고 인정되면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라며 "만약 인용되면 법 위반이 있었다거나 없었다는 판단은 결국 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플은 지금까지 수천억 원의 광고비와 사후 수리(AS) 비용을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사에 떠넘겨왔다. 특허권·계약해지와 관련해 일방적으로 이통사에 불리한 거래 조건을 설정했으며, 이통사의 보조금 지급과 광고 활동에 간섭하기도 했다.

애플은 앞으로 이통사에 전가했던 광고·수리 비용 부담을 줄이고, 이를 분담하겠다고 공정위에 약속했다. 이통사에 불리한 거래 조건과 경영 간섭 내용을 담은 계약서도 고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중소사업자와 프로그램 개발자, 소비자와의 상생을 위해 사용할 상생 지원기금 조성 계획도 밝혔다.

과거의 잘못을 자진 시정하겠다며 애플 스스로 내놓은 방안들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애플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혐의 자체를 부인했다. 애플은 "그동안 어떠한 법률 위반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며 "이제 고객과 지역 사회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공정위가 애플의 시정안을 받아들여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했지만 최종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애플은 한 달 안에 구체적인 자진 시정방안 잠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해관계자 등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를 다시 심의한다.

애플이 동의의결 최종 인용을 받기 위해서는 자진 시정방안이 예상되는 과징금에 걸맞아야 한다. 또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거래 질서를 회복시키거나 소비자와 다른 사업자를 보호하기에 적절하다고 인정돼야 한다.

​만약 공정위 심의에서 애플의 안이 최종적으로 인용되면 애플은 수백억 원대의 과징금을 피하게 된다. 반대로 애플의 자진 시정안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 동의의결 절차를 중단하고 다시 제재 심의가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안팎에서 애플이 다시 심의를 받을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중론이다. 동의의결을 수용하지 않고 과징금 처분 등 행정제재를 고수했던 공정위 기조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올해 초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업무 보고를 통해 동의의결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남양유업이다. 공정위는 남양유업이 대리점을 상대로 한 갑질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자진 시정안을 수용했다.

최종적으로 애플의 자정 시정안이 인용되면 우리나라에서만 자진 시정으로 법망을 빠져나가게 된다. 2013년 대만 경쟁 당국은 애플이 아이폰 판매 가격을 통제했다며 2000만 대만 달러 벌금을 부과했다. 프랑스와 호주, 이탈리아에서는 과징금 또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통사 관계자는 "동의의결은 과거 애플이 이통사를 대상으로 한 악행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라며 "국내 이통시장 특성상 애플의 갑질은 어떤 식으로든 지속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정위는 애플의 면죄부 논란에 선을 그었다. 송 국장은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서 확정할 때 법정 요건이 상당히 엄격한데 이를 다 충족해야 최종적으로 확정된다"면서 "동의의결은 결국 애플과 이통사 간의 협의와 조율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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