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실물경기 위험이 금융사로 전이될 조짐을 보이자 금융당국이 금융사 건전성 관리에 나선다. 이에 따라 오는 9월까지 적용되는 중소기업,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코로나19 긴급 금융 지원'을 위해 한시적으로 완화했던 금융 규제 정상화 논의를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은 애초 필요할 경우 규제 완화를 연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금융사의 건전성 지표 하락이 이어지면서 '선제 대응'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3월 31일 이전에 받은 대출에 대해 상환기한이 도래하는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의 만기를 9월 30일까지 연장해주고 이자납입을 유예해 주기로 했다. 이는 면제가 아니라 유예이기 때문에 6개월간 밀린 이자를 차주가 부담해야 하고, 은행 입장에서도 부담만 가중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는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은행 연체율과 부도율이 아직은 안정적이지만 모든 대출과 보증을 9월까지 연기했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 사태는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완화했던 규제 유연화 방안에 대해 고민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9월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한 △유동성커버리지비율 규제 △보험업권의 유동성 평가 기준 △종합금융투자사업자 기업대출금 위험 값 △증권사 대출채권 위험 값 등에 대해서도 금융위 내부에서 논의가 한창이다.
금융감독원도 고삐를 죈다. 올 초 윤석헌 금감원장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인수·합병(M&A) 등 금융회사의 외형 확대를 자제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금융회사가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건전성을 양호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하반기 감독 목표로 '건전성'에 방점을 찍었다. 사실상 종합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지급여력(RBC)비율 등 건전성 지표를 수시로 보고 받고 관리 감독을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위한 금융지원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기업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위기'를 맞은 우량기업을 선별해 지원해야 할 것"이라며 "하반기에는 금융사의 건전성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건전성 관리에 나서는 이유는 실물경기 위험이 금융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올해 4월 기준 국내 은행의 연체율은 0.40%로 전월 말 대비 0.01% 포인트 상승했다.
그중 코로나19 타격이 큰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04% 포인트 상승한 0.57%로 집계됐다. 중소법인 연체율(0.74%)은 전월 말 대비 0.05% 포인트 올랐고,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0.36%)은 0.03% 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의 '급전 대출'이라고 볼 수 있는 신용대출 등 연체율은 0.48%로 0.05% 포인트 상승했다. 은행들의 자본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BIS비율도 지난 3월 말 기준 14.72%로 작년 말보다 0.54% 포인트나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은행이나 금융사의 대출 연체율은 후행 지표이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발생 이후 은행 대출자산이 급격히 증가한 만큼 이르면 하반기부터 연체율 증가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업 대출이 늘고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의 어려움이 커지고 실업도 많이 증가하면서 기업 대출과 가계대출 건전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며 "코로나19 위기가 조기에 종료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장기화하면 많이 늘어난 기업과 가계 대출이 부실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