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우리나라 외교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현 정부는 출범이후 ‘한반도의 봄’ 즉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장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3년 전 취임사에서 선언했다. 그러나 봄은 멀어지고만 있다. 아니, 대외적 불신은 확대되고 외교적 고립은 심화되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한반도의 봄’을 유도할 수 있는 사고와 전략의 부재이다.
평화는 모든 인류가 기원한다. 올해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한 우리에게 평화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의 유산을 청산하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이는 주지하듯 종전선언,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남북한의 상호 불가침, 한반도의 비핵화와 한반도평화체제의 확립 등을 통해 구현된다. 여기에는 외교가 절대적으로 관건이다.
외교 능력의 기본은 판세를 명확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판세를 알아야 전략의 수순도 계산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 능력 향상은 한반도의 안보 판세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줬다. 따라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의 전제는 오로지 북한의 비핵화뿐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이젠 북·미관계의 개선, 또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더 이상 비핵화의 전제가 아니다. 비핵화만이 한반도 평화의 전제조건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정부 당국은 판세를 전혀 읽지 못한다. 대신 초지일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우 즉흥적이어서 임시방편적인 대응조치가 난무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종종 나타나는 외교 행위는 언행불일치다. 왜냐면 공표했던 입장과 원칙을 스스로 기만할 수밖에 없는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결과는 주변국의 불신만 증폭시키면서 우리 정부 당국이 자청하고 나선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재자나 운전자의 역할에 스스로 족쇄를 채울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과 미국이 북핵문제를 놓고 가려는 길은 엄연히 다르다. 북한의 최종목적은 비핵화가 아닌 미국의 적대정책 청산과 북·미관계 개선 및 제재 해제다. 국가생존을 위해 핵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권의 안전보장을 위한 미국과의 관계 개선만이 북한의 안보와 생존을 보증한다. 반면 미국에게 북한의 비핵화는 최우선적인 목표다. 북한의 비핵화만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을 주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이 가려는 종착지가 다른데 이를 무시한 채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지그재그로 운전했다. 즉, 각각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려는 결과였다. 북·미 간에 대화가 없을 때 운전자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어 한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승객이 운전자의 운전방식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들은 의기투합이라도 하듯이 운전기사에게 따져들기 시작한다.
북·미 간에 직접 대화가 없던 트럼프 정부 초기에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 측에 전했다. 그리고 우리를 믿어 달라 호소했다. 이의 담보로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것이다. 이 중 하나가 미국의 무기구매 요청이었다. 결과는 역대 정부에 견줄 수 없는 최대 규모의 무기구매였다. 가령, 2017년 첫 한·미정상회담에서만 1조 이상의 무기 구입에 합의했다. 이처럼 무기구매계약서를 남발한 결과 앞으로 3년 동안 최소한 12조원어치의 미국 무기를 사야한다. 미국의 방위비 증폭 인상 요구도 수용할 태세다. 사드의 역량증강도 묵인하는 기세다. 북한에게도 비핵화 의사를 확인해주면 미국에 제재해제 요구를 관철시켜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두 당사자가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서로가 전해들은 이야기를 확인해보니 중간과정에서 메시지가 잘못 전해진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중간책은 임무를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한다. 당사자들의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이 약속한 것을 관철시키려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2018년 여름부터 미국과 국제사회에 북한과 약속한 제재해제를 호소했다. 체코,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와 뉴질랜드 등이 모두 거절하면서 결과는 백전백패였다. 북한이 비핵화할 의지가 없음을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미국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중국 측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개최가 성공하자 중국은 이례적으로 자신의 중재노력을 공개했다. 북·미관계에서 우리의 역할이 사라졌음이 공표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중국과 북한 모두가 우리를 무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작년 6월 오사카 G-20정상회의에서 사드 문제의 해결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북한은 2019년 신년사에서 외부(미국)로부터 더 이상의 최신전략자산의 유입 금지를 촉구했다.
우리 정부는 시진핑의 방한과 북한과의 경협이 모두 실현가능하다는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시진핑의 방한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만약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면 이는 사드 해결의 공식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 5월 29일 사드의 노후장비 교체(요격미사일, 발전기 등)가 이뤄졌다. 미사일 발사대도 추가적으로 도입된 보도가 있었다. 미 국방부의 미사일 당국은 사드의 유지비용까지 우리에게 청구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 방한의 정치적 부담은 배가되었다. 북한의 작년 신년사도 한반도의 평화를 주장하는 우리 당국의 언행불일치에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남북경협제재의 발단이 천안함 피격도발 이후의 5·24조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연속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누적된 국제사회의 제재로 우리만의 단독해제는 불가능해졌다. 가령, 우리가 지불한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나 관광비용이 북한 정권에 유입되지 않음을 증명해야한다. 북한과 같이 불투명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북한은 우리의 제재해제 약속과 미국산 무기구매를 기만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최근 불거진 대북 전단이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이 배신감을 표출하면서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하라는 위협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이런 위협이 우리에게만 국한된 이유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미 대통령 재선의 해에서 북한은 도발의 대상을 남한에만 제한했다. 이유는 한가지다. 미국의 재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북한에 도발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기별을 넣기 때문이다. 2004년과 2012년에 북한이 대미 도발(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시험 등)을 자제한 사실에서 증명된다. 올해 초에도 미국 정부가 평양에 서한을 보낸 것으로 보도되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북한의 자제를 당부하는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대신 내부적 결속과 단결을 위한 대남 도발이 자행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서 역사문제로 가장 이웃국가인 일본을 협력대상에서 배제한다. 이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신뢰하는 국가를 제외한다는 의미다.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은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 채택된 일련의 UN 제재결의안을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견인한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따라서 대북제재의 해제 열쇠는 일본에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일본을 일관되게 반감으로 대하면 우리의 대미 설득력도 약해질 뿐이다. 한반도 평화에서 러시아 역할도 생각해 볼 때이다. 러시아는 미국도 부러워하는 협상의 달인이다. 그리고 미국이 수행하기 불가능한 궂은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처리담당반이다. 일례로, 2005년 방코 델타 은행의 북한 자금에 대한 제재 해제를 위해 돈을 세탁해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였다.
우리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주변 판세와 주변국의 역할과 요구를 정확히 간파해야한다. 그래야 우리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전략과 원칙을 세울 수 있다. 언행일치의 외교력이 우리의 통일과 평화의 염원을 실현시켜주는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