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의 우려와는 반대로 교통의 발달은 지역 간 소득격차를 줄이고 지역균형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게 정설이에요. '빨대현상'은 전국을 하나의 도시로 묶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조그마한 언덕에 불과하죠."
현재 하나 둘 예비타당성 조사 문턱을 넘고 노선 중 하나는 공사에 한창인 GTX 역시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교통정책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직접 대통령 앞에 찾아가 GTX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한 확신으로 대통령을 설득하는 패기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교통혁명이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과학기술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해가 뒤받쳤기에 가능했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인회계사, 행정고시 등을 패스하며 전공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였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도 교통공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하며 또 한 허들을 넘었다. 당시 유학을 지원한 정부는 '교통경제'라는 비교적 '쉬운 길'을 제안했지만, 교통에 관한 전문적 공부를 원했던 그가 교통공학을 고집했다.
홍 전 사장은 "건설교통부 생활교통본부장으로 재직 중일 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꾸려진 인수위원회에 직접 찾아가 광역급행철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며 "그러나 인수위 현안에 밀려 더 이상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또 "대통령 취임 2년 뒤 교통정책실장 자리로 왔다. 그때는 두 차례 정도 대통령께 직접 GTX 건설 필요성을 설명했다"며 "당시 대통령은 4대강 사업비 때문에 야당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대통령은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되는 GTX사업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삼갔다"고도 했다.
홍 전 사장이 GTX의 필요성을 이처럼 주창했던 건, 점차 광역화되는 수도권 주민들의 교통문제를 해결하기에 기존 지하철은 역부족이란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수도권 인구 2000만명 중 1000만명이 서울시에, 다른 1000만명이 경기도·인천 일대에 살고 있다"며 "수도권 외곽지역 주민들의 교통문제를 광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 '한방'이 GTX라고 일컬어지는 광역급행철도라는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어렵게 첫 노선(GTX-A노선) 전 구간이 첫삽을 떴지만,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표현한다. 홍 전 사장은 "인천 송도나 경기도 광교 신도시는 녹지비율이 높아 강남보다도 주거환경이 뛰어난데, 그럼에도 교통불편이 커 신도시 주민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형국"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광역급행철도 등 교통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계속 늦어지고 있다. 3개 노선 총 건설비는 코로나19에 대한 올해 재정지원 규모에 불과하다. 사업 지연으로 인한 교통시간 증가 등 현재 치르고 있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GTX 등 철도사업뿐 아니라 '부유식 활주로'나 '통근형 2층 고속열차' 등 독특하고 효율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한 일도 그로서는 잊을 수 없는 발자취다.
우선 부유식 활주로는 그가 철도기술연구원장으로 있을 때 도입한 아이디어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동안만 활주로가 고정되도록 부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홍 전 사장은 "처음 아이디어를 냈을 때,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며 "현실화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조선공학 박사 등 전문가와 협업, 철저한 계산과 시뮬레이션을 거쳤다"고 했다.
이어 "남들이 하는 걸 따라가기만 해도 괜찮은 시절은 2010년쯤 진작 끝났다.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전례 없던 걸 해내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며 "전례 없는 아이디어이면서, 절대적으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통근형 2층 고속열차 역시도 철도기술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할 때 개발한 신개념 녹색교통기술이다. 홍 전 사장은 "어차피 선로 사용료는 같은데, 이왕이면 많은 이들이 열차를 탈 수 있어야 수익성이 좋아지지 않겠나"며 "프랑스는 1998년부터 2층 고속열차를 들였고, 2004년부턴 2층이 아니면 아예 발주를 안 했다"고 했다.
이어 "통근형 2층 고속열차 등은 비교적 간단한 녹색교통기술이어서 바로 도입이 가능한 분야"라며 "이처럼 간단한 녹색교통기술마저 이런저런 이유로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안 되는 이유를 찾지 말고 되는 이유를 찾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지난 30여년의 공직생활을 회고하며 덧붙였다.
"미래에 필요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도전하고 혁신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얻어진 성취감과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일을 추진하다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에 빠질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성사시키려면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