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화상회의 플랫폼 '줌'... 스트레스도 줌?

2020-06-11 00:05
  • 글자크기 설정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과 같은 비대면(언택트) 업무 방식을 채택하는 회사와 학교가 많아지고 있지만, 이에 따른 정신적 고통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PC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라도 참가할 수 있는 화상회의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긴장감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서 따온 ‘줌 피로(Zoom Fatigue)’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심리적 부담으로 느껴지는 화상회의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는 근무방식을 채택한 IT기업에 다니는 A씨는 화상회의에선 명확한 소통이 어렵다고 단언했다. 그는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면 표정뿐만 아니라 복합적으로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데, 영상에선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집에서도 옷을 차려입고 격식을 갖춰 노트북으로 화상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불편하고, 개인 공간이 영상을 통해 팀원들에게 공개되는 상황,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것 모두가 스트레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경기도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기업에 다니는 B씨는 매일 팀원과 함께 영상회의로 업무를 시작하는데, 소리와 영상이 끊기거나 대면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잡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회의 내용이 가족들에게 들리지 않을까 신경쓰게 되는 것도 모두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요가를 가르치고 있는 C씨는 영상 연결이 매끄러운 줌을 도입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정확한 자세로 지도를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몸무게가 2㎏가량 줄었다고 했다. 강의 중에 반려동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는 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NHN이 실시한 재택근무에 대한 임직원 설문조사에선 ‘재택근무가 회사근무와 차이가 없다’는 답변이 36%로 가장 많았지만, 아쉬운 점으로 ‘메신저에 즉각 응답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1위로 꼽기도 했다. 메신저로 말을 걸어오면 제때 응답해야 한다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생겨난 것이다. 

 

화상회의 플랫폼 '줌'을 활용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제공=줌) 


◆그래도 재택근무는 계속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된 뒤에도 재택근무에 대한 수요는 증가세를 보이며 화상회의 이용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4명 중 3명이 '코로나 이후에도 더 많은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페이스북의 경우 5∼10년 내 전 직원의 50%가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열린 임직원들과의 화상회의에서 "앞으로 10년에 걸쳐 코로나19로 촉발된 재택근무를 중심으로 회사의 운영 방식을 영구적으로 재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재택근무가 증가함에 따라 화상회의 플랫폼 줌의 사용자는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4개월 만에 줌 이용자는 30배나 증가했다. 전 세계 3억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비대면 수단으로 줌을 선택했다. 줌은 이메일 주소만 등록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폭발적인 사용량 증가로 이어졌다. 지금은 줌을 활용한 온라인 회식과 온라인 파티 등 다양한 이벤트의 장으로도 인기다.

잡코리아가 지난달 발표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현황’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62.3%가 재택근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직장인 중에선 73.2%, 중견기업은 68.6%, 중소기업은 57.6%가 재택근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화면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스트레스

제러미 베일린슨(Jeremy Bailenson) 미국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줌을 이용한 화상회의가 참가자의 얼굴을 계속해서 응시해야 한다는 점, 그들을 응시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도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베일린슨 교수는 “인간의 뇌는 사람의 얼굴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어졌다”면서 “일상생활 속에서는 사람들의 확대된 얼굴을 보는 경우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로 한정되지만, 이를 화면으로 옮기면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사회적 인간관계를 모방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에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신적 불안과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 가정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초래한 업무 방식의 변화에 적응하기도 전에 익숙지 않은 화상회의와 같은 디지털 비즈니스 도구들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다.

원래 디지털 비즈니스 도구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화상회의는 직장뿐만 아니라, 학교 등 사회활동이 일어나는 모든 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뉴노멀이 정착되는 가운데 ‘줌피로’와 같은 폐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올바른 디지털 도구의 사용과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