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올라설 경우, 재정·통화정책 측면에서 다양한 효과가 발생한다.
먼저 재정 측면에서는 세뇨리지(화폐 액면가격에서 제조비용을 뺀 화폐주조 차익) 효과를 통한 이익 창출이 가능하다. 통화 정책에서는 환율 변동에 대한 위험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외환위기 상황에도 손쉽게 대처할 수 있다. 앞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단행했던 양적완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제사회에서 ‘기축통화’ 보유 국가가 갖는 영향력은 역사를 통해서도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기축통화의 상징성은 크게 달러화를 기점으로 한 ‘전과 후’로 나뉜다.
16세기 말 스페인 무적함대가 침몰한 뒤에는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네덜란드의 길더화가 국제통화로 떠올랐다. 이후 프랑스의 프랑화가 잠시 기축통화의 역할을 담당했다.
다음은 영국 파운드화의 시대였다. 파운드화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기축통화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은 파운드화를 금에 연계하는 금본위제를 도입했고, 세계 각국은 파운드화를 교역 시 결제 용도로 사용했다. 19세기 후반에 파운드화가 세계 교역 결제통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했다. 그러나 파운드화의 시대 역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막을 내렸다.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떠오른 건 세계 2차대전이 완전히 막을 내린 1945년이다. 1944년 44개국은 미국 뉴헴프셔주(州) 브레턴 우즈에 모여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삼는 금환본위제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금 1온스는 미국 35달러에 고정됐다. 이듬해 국제적으로 달러화의 사용량이 파운드화를 앞섰다. 1940년까지 세계 각국이 보유한 파운드 양이 달러의 두 배에 달했던 점을 고려했을 때 빠른 성장세다.
이후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금태환(화폐를 금으로 교환하는 것) 정지를 선언한다. 당시 발생했던 베트남전 군비조달 등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했던 게 주된 이유다. 그러나 이후에도 달러화는 기축통화로서의 가치를 지속한다. 그에 앞서 약 30년간 기축통화로 통용되면서, 각국의 외환 보유가 대부분 달러로 이뤄진 덕분이다. 이 때문에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존재하지 않고 가치가 하락할 경우 대부분의 국가들이 큰 손해를 입게 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물론 그 사이 일본 ‘엔화’와 유럽연합(EU) '유로화‘ 등의 도전이 있었지만 매번 달러화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