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문학에 산업 노동자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이 없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빠져있었다. 그것을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장 황석영이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쓴 이유는 분명했다. 한국 근현대문학을 돌아봤을 때 산업 노동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철도원 삼대’는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실감나게 다룬 작품이다. 초판 1만부가 출고된 지 1주일도 안 돼 모두 판매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이 소설은 이백만·이일철·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아파트 16층 높이 정도 되는 45m의 발전소 굴뚝 위에 올라가야만 했던 이진오의 현재를 시작으로 장편소설이 펼쳐진다.
황 작가는 “굴뚝은 지상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중간 지점이다. 일상이 멈춰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상상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며 “삼대의 이야기를 4대 후손인 이진오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리얼리즘의 세계를 확장해서 쓸려는 노력을 하면서 형식적인 실험도 했다. 예로부터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인 민담의 형식을 빌렸다.
‘철도원 삼대’가 근현대문학에서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철도원 삼대’라는 제목은 자연스럽게 염상섭의 ‘삼대’를 연상시킨다.
한기욱 문학평론가는 “염상섭의 ‘삼대’가 구한말에서 자본주의의 등장까지를 펼쳐 보였다면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역사, 현재의 노동운동까지를 다뤘다. 이 두 작품을 함께 읽는 데서 한국문학의 근현대가 완성된다”고 평했다.
황 작가는 “염상섭이 ‘삼대’를 통해 식민지 부르주아를 나는 ‘철도원 삼대’를 통해 산업 노동자를 다뤘다. 한국 문학사에서 연결되는 두 작품이다”고 말했다.
‘철도원 삼대’는 구상부터 집필까지 30년이 걸린 작가 필생의 역작이다. 1989년 방북 때 평양백화점에서 만난 ‘아버지뻘’ 부지배인과의 대화가 구상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서울 영등포가 고향이라는 공통점, 그리고 같은 추억을 갖고 있었다. 그와 술잔을 나누며 5~6시간동안 나눈 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황 작가는 이를 소설로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620쪽의 장편 소설을 막 펴낸 황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바로 다음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른과 어린아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철학동화’다. 어린 성자가 사물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하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다. 그는 “코로나19가 ‘너희 잘 살았냐?’ ‘여태까지 잘 해온거야?’라는 질문을 하는 것 같다”며 “중요한 화두가 말년에 생겼다. 운명적으로 시대 변화와 같이 가고 있다. 탈 인간 중심주의와 생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작품 활동을 하려고 한다. ‘장길산‘을 쓸 때처럼 새로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설명했다.
1943년생인 거장의 심장은 젊은이들처럼 다시 빠르게 뛰고 있다. 그는 “2017년 자전적인 ‘수인’을 쓴 후 간이나 쓸개 같은 내장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이제 할 만큼 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작가는 은퇴 기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작가가 세상에 가진 책무이기도 하다. 기운이 남아 있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 계속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