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리모트 퍼스트 세계가 시작됐다. 한국은 준비 됐는가

2020-05-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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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 페이스북 본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중인 A씨. A씨는 최근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던 세컨드카인 도요타 프리우스를 팔았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가 올해 연말까지 전 직원의 재택근무를 연장한 데 이어 희망자는 ‘영원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프리우스를 시세보다 2000달러를 더 받고 팔 수 있었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동차 공장이 다 문을 닫고 신차가 나오지 않아 중고차 수요가 높아졌다. 프리우스와 같은 가성비 높은 차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A씨는 “그동안 아끼던 출·퇴근용 프리우스를 팔게 될지는 불과 1~2주 전만 해도 몰랐다. 2000달러나 더 받고 팔게 될 줄도 몰랐다. 재택근무가 3개월째 계속되면서 팬데믹이 일상을 바꾸고 있으며 앞으로 영원히 바뀔 것이란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의 사례는 실리콘밸리의 현재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혁신의 본고장이며 세계적 인재들이 몰리는 실리콘밸리는 실시간으로 삶과 일하는 방식이 바뀐다. 재택근무가 기본으로, 회사 출·퇴근이 ‘옵션’이 됐다. 사람들은 차를 내다 팔기 시작했고, 집도 옮길 기세다. 더 이상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에 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페이스북이 앞으로 5~10년간 현재 4만8000명에 달하는 직원 절반이 ‘영원히’ 원격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페이스북은 앞으로 신규 직원, 경력 직원들도 원격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에 앞서 트위터, 쇼피파이, 코인베이스, 스퀘어 등도 직원들에게 가능하다면 회사에 나오지 말고 원격근무를 하라고 권고했다. 구글도 연말까지 연장한 재택근무를 내년에도 계속 시행할지 검토 중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진=페이스북 제공) ]


본격적인 원격근무(리모트) 퍼스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페이스북은 벌써 매입하기로 했던 부동산을 재검토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실리콘밸리 전체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은 스타트업에 투자 받기 위해 시장이 큰 미국 실리콘밸리로 본사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기업의 ‘리모트 퍼스트(원격 우선)’ 선언은 미국 기업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주게 될 사건으로 평가된다. 실제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기업 직원들의 3분의2는 ‘영원한’ 재택근무가 정착된다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겠다고 응답했다.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도 “앞으로 재택근무가 기본인 회사가 점차 많아질 것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전체 근무 형태의 5%만이 재택근무를 했지만 앞으로 20~30%는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같은 선언에는 배경이 있다. 페이스북, 스퀘어, 쇼피파이, 코인베이스 등이 먼저 ‘영원한’ 재택근무에 나선 것은 사업 목적에 부합한다. 페이스북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이후 내놓은 서비스인 화상대화 서비스 ‘룸스’, 그리고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 등은 모두 원격근무에 최적화된 서비스다. 또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을 미래 컴퓨팅, 즉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플랫폼으로 여기고 있어 미래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된다. 원격근무가 많아지면 VR·AR 기술의 이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사내 회의를 오큘러스를 활용한 VR 서비스로 진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핀테크 회사 스퀘어는 터치리스 비즈니스가 커질수록 사업 기회가 늘어난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서비스 자체가 ‘탈집중화’를 철학으로 삼고 있어, 재택근무에 따른 일하는 방식의 탈집중화는 기업의 본질과도 어울린다.

‘리모트 퍼스트’ 선언은 지나가는 이벤트가 아니라 2010년대 초반 ‘모바일 퍼스트’, 2010년대 중반 ‘클라우드 퍼스트’, 2000년대 초반 ‘디지털(인터넷) 퍼스트’를 연상케 하는 시대적 변화라는 평가다.

모바일 퍼스트는 애플과 구글이 주도했고, 페이스북과 넷플릭스가 수혜를 봤다. 클라우드 퍼스트는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도했으며, 많은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SaaS) 회사들이 수혜를 보고 있다. 디지털 퍼스트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가 주도했으며, 구글이 혜택을 봤다.

한국과 한국 기업들은 시대가 바뀔 때 특히 모바일 퍼스트, 디지털 퍼스트를 주도하게 되면서 승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모트 퍼스트 시대를 주도하고 승자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읽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미국 실리콘밸리> 

 

[손재권 더밀크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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