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6일 ‘합병비율 산정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을 주제로 세미나로 열고, 합병비율 관련 자본시장법 규정의 개정 필요성, 회계법인 감독 기능 개선 필요성 등을 논의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류영재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 김형균 디앤에이치투자자문 본부장, 송옥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 학계와 시장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김병욱 의원은 축사를 통해 “지난 20대 국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부풀려 제일모직에 유리한 근거를 제공한 삼정 회계법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은 적이 있다”며 “그런데도 지금까지 자본시장법상 합병비율 산정 조항에 대한 입법론적 논의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병비율 산정방법의 개선 필요성을 설명했다.
발제를 맡은 김형균 본부장은 현행 자본시장법상 합병가액 산정방법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현형 자본시장법에서는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합병비율 산정기준을 달리하고 있어 과연 이 방법이 합리적인지 또 그 둘의 기준을 달리함으로써 발생하는 모순은 없는지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상장법인 합병가액은 주식시장에서 형성된 시장가격(기준시가)를 기준으로, 비상장법인의 합병가액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의 가중산술평균(1대 1.5)로 산정된다. 사장법인에는 가격 기준을 적용하고 비상장법인에는 가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입법 취지는 합병조건의 적정성 확보와 대주주 견제를 통한 소수주주의 보호지만 현실에서는 불법 승계 등에 활용되는 등 모순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주가 대 순자산비율(Price-to-Book)이 0.2배인 기업을 자진상장폐지할 경우, 수익가치를 0으로 보더라도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대 1.5로 평균하면 합병가액은 자산가치의 0.4배에 결정된다. 이 경우 상장 폐지가 되면서 하루 사이에 기업가치가 2배 증가하는 것인지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상장사였는데 오늘 비상장사가 됐다고 해서 기업의 본질 가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합병 비율에 따라 기업의 가치가 크게 변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김형균 본부장은 “동일한 지배주주가 지배하는 회사 간 합병에서는 대주주 이익을 위해 합병 구조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등 견제장치가 없다”며 “특히 회계법인의 가치평가에 대한 실질적 감독기능이 부재하면서 합병과정에서 소수주주들에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송옥렬 교수는 “상장법인의 시가평가는 유지하되 다른 방식도 허용해야 하며, 비상장법인의 평가는 삭제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상장법인의 시가평가 경우 회계법인의 조력, 감독당국과 법원에 의한 합병비율 검사, 이사 책임 가능성 확보, 합병비율 문제와 합병무효화 분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창완 교수도 “자본시장법시행령은 입법에 정해야 하는 것을 시행령에 담았다”면서 “주식은 중대한 재산으로 합병은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게이트키퍼로서 회계법인의 책임강화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합병가액 산정기준 확립이 전제돼야 한다”며 “회계법인 재무자문 업무의 실질적 감독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한상 교수는 사후구제 방식이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한상 교수는 “국내 회계법인의 기업가치평가보고서 역시 회사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쓰는 등 합병비율 산정에 공정하게 활용되기 어려운 현실”이라면서 “불합리한 합병의 경우 사후구제로 이사진 및 가치평가 기관에 대한 민사·집단소송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세미나가 열린 26일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본인에게 제기된 각종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5년 전인 2015년 5월 26일에는 삼성이 기습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발표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