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전 한은 총재 "위기 막으려면 증세 불가피···근로과세는 줄이고 자산과세는 늘려야"

2020-05-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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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공개념 적극도입해 부동산 거품 없애야

수출주도서 내수위주로 전환···저성장 불가피

실용정책 절실···진보정부는 적절한 '우클릭' 필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3차례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정 정책을 매우 확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84)는 27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경기 부양 효과를 내기 위해 조만간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봤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이 같은 위기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증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동산 보유자에게 상당한 수준의 보유세를 물릴 필요가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정부와 한은이 공급한 현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 자산 버블이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도 무거운 세금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울러 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는 경제 활성화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진단했다. 과거 기업이 돈을 벌어 국내에 투자하던 시기에는 법인세를 인하할 필요가 있으나, 지금처럼 해외에 투자하거나 대규모 유보금만 쌓고 있는 상황이라면 법인세를 인하하더라도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설명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인터뷰[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코로나 이후 수출 성장 어려워···내수 중심 1~2% 성장이 바람직

-올해 우리나라 경제의 본격적인 회복 시점은 언제로 생각하시는지?

"코로나19 충격은 모든 인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로 인해 경제가 수직하강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까지 적어도 1~2년은 코로나19 영향이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국내외에서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마이너스 2~3%의 역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글로벌 선진국은 7% 역성장이 예상된다. 결국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선방하는 국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향후 백신이 나오면 경기가 수직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에 구조적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감염증 때문에 생긴 충격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없으면 곧바로 회복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위축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안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 대책은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방법 밖에 없다고 본다. 돈을 푸는 창구는 재정과 금융이다. 재정은 앞으로도 확대돼야겠지만, 재정건전성 때문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 금융이 좀 더 중요하다. 때문에 앞으로 1~2년 동안 한국은행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짊어져야 할 책임이 대단히 크다. 한국은행이 돈을 푸는 방법은 기준금리 인하가 있고, 돈을 찍어내는 방법이 있다. 기준금리는 앞으로 좀 더 내릴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이미 제로 수준까지 많이 내려간 상황이다. 기준금리 인하에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는 없고, 결국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 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보는지?

"첫 번째로 정부 역할이 크게 바뀔 것이다. 앞으로 국가 위기 요인으로 질병이나 기후·지질변화 문제에 대한 중요성이 훨씬 커지게 될 것이다. 특히 질병 문제는 최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이어 이번에 코로나19까지 자주 발생하는 추세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확장적 재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변화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해서 국민 생활의 디지털·언택트화가 촉진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국가간 거래와 교류가 줄고 수출이 위축돼 내수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네 번째는 경제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다. 고용 감소에 따른 대량 실업 문제가 저소득층에 집중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정부 대처가 필요하다.

이 같은 환경 변화에서 우리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그동안 제조업·수출 중심의 경제 성장을 서비스업과 4차 산업혁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정부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는데 잘 한 일이다. 앞으로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전환해야 한다. 수출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감소 추세에 들어섰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대를 접어야 한다.

내수 주도로 간다면 소득주도성장과 포용적 성장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 가계소득을 늘려야 내수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수 성장은 우리나라가 고도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는 없다. 때문에 앞으로 1~2% 경제 성장률을 국민이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고용 확대가 필요한데. 그를 위해서는 기업 투자 증대가 필요하다. 정부가 이에 적극 나서야 한다."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있다.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보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많다. 우리나라의 최대 강점이 재정건전성인데 이를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우리나라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40% 수준인데, 앞으로 45~50% 수준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경기가 정상화 됐을 때 흑자재정을 통해 이 문제를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정을 확대하면 증세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따라 온다. 이에 대한 생각은?

"증세는 해야 된다고 본다. 앞으로 정부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이 늘어나더라도 재정건전성이 지나치게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문제는 증세를 언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증세 1순위는 부동산 보유세를 늘리는 방향으로 돼야 한다. 노동과세에서 자산과세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다."

-진영간 갈등을 겪고 있는 법인세에 대한 의견은?

"법인세는 기업·법인이 돈을 벌어서 국내에 투자하는 시대에는 내리는 것이 맞다. 수출주도성장 시기가 그렇다. 기업이 수출을 해서 돈을 벌고 국내 공장을 짓고 고용을 늘리던 그런 시기에는 법인세를 내려야 한다. 법인세율이 높으면 국내 투자가 줄어드니 지금까지 법인세를 내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기업이 돈을 쌓아놓고 투자를 안 하는 시대다.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이 좁은 국내 시장을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돈을 벌면 해외에 공장 짓고 투자하거나 아니면 그냥 쌓아놓고 있다. 대기업이 어떤 좋지 않은 의도로 그런 것이 아니라 수지가 맞지 않아서 국내에 투자를 안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법인세를 인하해줄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법인세는 실효세율이 낮은 편이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해 버블 막아야···토지 공개념 도입하고 자산과세 늘리자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이 아니라서 무제한 양적완화 시 환율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을 무한정 풀 때 부작용이 없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무제한 양적완화가 이뤄질 때 우려되는 문제는 3가지다. 인플레이션과 자산시장 버블, 환율 문제다. 단기적으로 지금 상태에서 인플레이션 문제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물가가 오르지 않아서 문제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버블인데, 풀려난 돈이 부동산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가급적 풀려난 돈이 소비와 투자로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이 아니라서 환율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돈을 찍어내면 원화 값이 떨어지니까 환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물가가 오르지 않고 있어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넉넉한 편이다."

-건설부 장관도 역임하셨던 부동산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 버블을 막기 위해 취해야 할 정책이 있다면?

"부동산 문제는 지금 당장 큰 문제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리가 해결해야할 핵심적인 과제다. 지난 50년 동안 물가가 30배 올랐으나 집값은 3000배가 올랐다. 그 결과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앉아서 돈을 벌었지만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경제는 성장하는데 서민은 쪼들리는, 이른바 빈곤화 성장을 겪었다. 지금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부모가 부자면 집을 갖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생 저축해도 부동산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부동산은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인데 우리나라는 이걸 투자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차단하느냐가 현재와 미래 정부의 과제다. 토지공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토지에 대한 세금을 증액하고 주택을 사회 공공재 성격으로 되돌리려 노력해야 한다. 부동산에 대한 보유 과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서 부동산으로 축재하려는 국민의 의식을 고쳐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래세는 내리고 보유세는 계속 강화해야 한다.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도 보유세는 강화해야 한다.

그 대신 근로소득세를 내려서, 노동과세는 줄이고 자산과세를 늘리는 것이 사회정의 구현에 맞는 길이다. 지금 지방세로 돼 있는 재산세와 취득세를 국세로 전환해서 중앙정부가 재산세·취득세·종부세를 총괄토록해 부동산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정부에 대해서는 담배세나 주세 같은 다른 세금을 주는 것이 좋다."

-논란이 많았던 긴급재난지원금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은 잘한 일이다. 시의적절하고 불가피했다고 본다. 그런데 긴급재난지원금은 저소득층에 대한 선별지원이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민생지원 차원과 국민 소비 증대로 경기 활성화 측면에서도 선별 지원이 나았을 것 같다."

-항공·해운산업 등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받는 기업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은?

"1998년 외환위기 때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마련해서 흑자도산 기업을 되살린 일이 있다. 그때 공적자금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번에도 50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해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다. 구조적 문제가 없는 흑자도산의 위기가 있는 기업이라면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을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면 당장 정부와 한은에 부담이 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와 아주경제 이용웅 편집인이 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규제 개혁해야 4차 산업혁명 가능···소득주도성장 방향 맞지만 강도 약해야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먼저 정부가 국민통합적 정책을 펴주기를 바란다. 모든 정책을 국민통합적 시선에서 바라봐야 한다. 포용적 정치·협치를 중요시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두 번째는 탈이념적 실용정책을 해줬으면 한다.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적 잣대는 접어두고, 국민이 뭘 필요로 하는지를 파악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제 같은 것도 방향은 옳았는데, 시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 정책을 밀어붙였다. 주52시간제도 마찬가지다. 실용성이 부족해서 문제가 나왔다.

다음으로는 경제가 성공하려면 보수정권은 집권 후에 다소 '좌클릭'하고, 진보정권은 집권 후에 다소 '우클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용주의 정책을 써달라는 것과 일맥상통한 이야기다. 진보정권일수록 친시장 정책, 가계와 기업을 함께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대기업에 대해서도 그렇다. 재벌 개혁은 적극 시행하되 대기업의 장점을 살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쌍끌이 성장하도록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면서도, 이에 필요한 규제·노동 개혁은 답보 상태에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큰 장애가 규제·노동 문제다. 현 정부 들어서서 가장 부진한 부분이 이 두 부분이다. 일단 규제라는 것은 기득권을 보호하는 장치다. 의사, 약사, 변호사와 심지어 택시 기사도 규제를 통해 기득권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는 제조업 시대에서 필요한 장치였지만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전면 검토해서 다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질 수 없다.

노동 문제는 투쟁의 문제를 협동의 문제로 바꿔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노사정 타협을 통해서 이 같은 해결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고임금 정규직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규제 장치다. 그래서 사회 전체에 대한 배려와 협력이 부족하다. 다만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노조 활동이 강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사회안전망 마련에 힘쓰고, 노동계는 노동유연화 등으로 화답하는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도입 등으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득주도성장을 최저임금은 올리고 주52시간을 강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가계 소득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자는 정책이다. 과거에는 가계 소득을 기업이 책임졌다. 기업이 수출을 통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국내에 투자하고 고용이 늘어나서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기업 투자가 그대로 가계소득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라 정부가 이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출이 정체·감소하면서 선순환에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기업이 국내 투자를 기피하기 때문에 가계 빈곤이 발생한다. 때문에 정부가 빈곤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빈곤층과 노인을 지원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정책을 통해 양극화도 해소하고 소비도 늘릴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52시간 도입이 그렇다.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데, 시장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강도가 강했다. 예를 들면 약을 잘못 쓴 것이 아니라, 약은 잘 썼는데 한 알을 먹어야 할 것을 다섯 알을 먹은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주52시간제를 좀 조절할 필요가 있다. 60시간까지는 허용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내년에는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낮게 올리자고 제안을 하겠다."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은 얼마로 보시는지?

"0.5%까지는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 같다. 기준금리 인하 시 항상 부동산 문제가 걸린다. 기준금리를 또 내리면 부동산 버블이 발생할 수 있다. 그냥 동결하거나 아니면 마지막으로 한 번 정도 더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대담 : 이용웅 편집인, 전운 금융부장
정리 : 윤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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