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주식시장이 현실 경제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치고 있는 영향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현상 중의 하나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전까지 만해도 이러한 패턴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이후 주가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주가와 실물경기 사이에 단층이 생기며 그 간격이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공항같은 경기침체인데 왜 주가상승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경제전문가들과 정책담당자들의 분석이 한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확대로 폭락한 미국, 일본, 한국의 주가는 그 후 강한 회복세를 타고 있다. 이는 대출규제 완화와 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경기부양을 위한 미증유의 자금 투입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한·미·일의 경제구조가 사뭇 다른데도 미국의 주가가 오른다는 이유만으로 한국과 일본의 주가도 오름세를 타고 있는 형국이다.
주가가 급락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확대 방지를 위해 사람들의 이동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을 인위적으로 정지시켰기 떄문에 기업의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경제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은 통계 수치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4월 실업률은 14.7%로 전후 최악의 수준으로 치솟았다. 4~6월의 실질 GDP는 연율기준으로 전기대비 39.6% 감소할 것으로 미국 예산국은 전망한다. 일본에서도 외출제한에 의해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가계조사에 따르면 3월의 실질소비지출은 전년비 6.0% 줄었지만 여행과 레저관련 소비는 70~80% 급감했다.이같은 상황 하에서 주가가 폭락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실물경제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주가는 강한 회복세를 탔다. 5월 22일 다우평균주가는 2만4465까지, 나스닥 종합지수는 5월 22일 9324까지 각각 회복했다. 미국의 주가 상승에 편승해 닛케이 평균도 4월 30일 2만193엔으로 3월 6일 이후 처음으로 2만엔대를 회복했다. 5월 25일에는 2만741엔을 기록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 이유로서는 먼저 코로나감염이 피크를 지났다는 판단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재개로 경제가 장래 가까운 시점이서 회복하리라는 기대다. 백신과 치료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대출규제와 영업정지를 완화하는 분위기다. IMF(국제통화기금)가 2020년 중에 코로나감염이 억제되면 2021년에는 GDP가 V자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한 대목도 주가상승 요인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백신개발도 안된 단계에서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제2차 감염에 공격당할 위험이 있다. 각 나라에서 제2차 파동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의 정책대응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상승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3월 23일 경제지원대책의 제2탄으로 국채를 무제한 매입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미국금리는 하락하고 있다. 금리가 상승하면 국채발행에 지장이 생기지만 그런 우려는 사라진 셈이다. 일본은행도 3월 14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적극적인 국채매입을 결정했디. 4월27일에는 국채매입액의 한도를 철폐했다.
이같은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대응이 주가를 회복시키고 있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좀더 들여다 볼 것이 있다. 중앙은행들이 매입한 것은 국채이지 주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채는 나라가 디폴트(파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상환되는 안전자산이다. 반면 주식은 리스크가 있는 자산이다. 그 가치를 정부와 중앙은행이 보증하지 않는다.
물론 중앙은행들은 기업지원대책도 실시하고 있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정크본드 같이 신용도가 낮은 채권도 매입해 주는 유동성대책을 실행하고 있지만 기업의 리스크를 떠안아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가상승과 실물경제의 괴리를 분석하고 있는 노구치 유키오(野口 悠紀雄) 와세다대 파이낸스연구센터 고문은 “향후 각국 경제의 성패는 미래를 담보할 기업의 유무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을 리드하는 기업을 세심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GAFAM(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MS)이 코로나사태를 넘어서는 미래사회의 구조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약 5600조원으로 도쿄증시 1부기업의 시가총액을 웃돈다. GAFAM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비대면 구조에서 수익성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잘 버티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속에서도 기업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실물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가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GAFAM의 견조한 주가 흐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르네 스톨츠 교수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2015년 시점에서 20인 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미국기업은 약 60만개로 이 가운데 증시에 상장한 기업은 1%도 못미치는 3600개에 불과했다. S&P 500의 상위 5개사의 시가총액이 S&P 전체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특정 기업의 주가 흐름이 전체 흐름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스톨츠 교수의 분석이다.
시가총액이 많은 하이테크 기업들의 고용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것도 주가가 현실 경기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1962년 미국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았던 2개의 대기업, AT&T와 제너럴 모터스(GM)는 총 120만명 가까이를 고용했다. 반면 지난 2019년 S&P 시가총액 상위 그룹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이 고용하고 있는 종업원 수는 28만명에 불과하다.
한국의 주가도 미국과 일본의 주가 흐름과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2000대를 넘나들며 3월초 이후 강한 회복세를 타고 있다. 코스닥도 700선을 가볍게 상회하고 있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 보다 미래 기술혁신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경제상황이 엄중해도 시장 분위기는 다르다. 이를 반영하듯 엔씨소프트 시가총액이 SK텔레콤을 넘어섰다. 카카오는 시가총액 20조원에 육박하며 9위인 현대차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증권시장의 주도권이 전통 산업에서 IT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가와 실물경제의 괴리는 자칫 우리 경제와 기업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들 위험이 있다. 실물 경제회복 대책을 통해 착시현상을 제거해야 한다. 돈의 힘으로 올라가는 주가 흐름은 실물 경제가 계속 악화되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전개해 나가야 한다.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면 주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기업이 살아야 주식시장도 존립할 수 있다,
코로나사태로 생긴 이같은 주가와 실물 경제의 괴리는 세계 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미래 경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