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속도 못 내는 재건축 이유 있다"...한국 정비사업 문제 보니

2020-05-2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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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가 자금 모두 떠안는 구조 문제...사업기간 줄이려는 노력 최선"

"규제완화, 분쟁중재 필요...공무원 또는 수사기관 전문성 제고도 과제"

[사진=아주경제 DB]

정비사업, 특히 재건축사업 관련 잡음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집행부와 비대위가 대치하는 조합 내홍뿐 아니라,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빚어지는 과열 경쟁, 제3자의 개입 등 여러 문제가 파생됐다.

이에 대해 '한국도시정비협회' 등 정비사업 전문가는 "사업속도 지연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업속도가 지연되면서 필연적으로 사업비용이 늘어나고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사업속도를 늦추는 가장 큰 원인은 불필요한 행정절차, 해마다 바뀌고 불어나는 규제 등으로 꼽혔다.

하재광 한국도시정비협회 사무국장은 "자본이 많은 시공사가 전체 사업비의 실질적 대여 주체가 돼버렸다"며 "조합이 돈 많은 곳에 의해 휘둘리게 되면 여러 부정부패가 끼어들 여지가 커진다"고 했다.

이어 "서울시가 '공공관리자 제도'를 도입하면서 추진위 단계에서 사업비를 대여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추진위는 필요한 금액의 10%도 채 대여받지 못한다"며 "필요 금액이 실제 집행되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리고, 서울시 예산이 넉넉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합사업이지만 시공사가 자금조달을 모두 떠안는 구조 자체를 뒤흔들기 어려운 만큼, 사업기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현실적이라는 게 하 국장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선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줄이고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전언이다.

그는 "시공사 선정 이후 이런저런 규제 때문에 사업이 늦어지면 조건이 바뀔 수밖에 없다. 기간이 갔고 물가가 상승했고 재료 단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며 "생각보다 추가분담금이 늘어나게 되면 비대위가 나올 개연성이 커진다"고 했다.

이어 "정부 자체가 재건축이나 재개발에 부정적이다보니 규제 위주로 정책과 제도가 나간다"며 "조합 단합이 아무리 잘돼도 갑자기 분양가가 40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깎이면 '천천히 하자', '정권 바뀌면 하자'는 얘기가 안 나오기 힘들다"고도 했다.

하 국장에 따르면 실질 공사기간(착공~준공)은 2년 6개월 정도가 적당하다. 이주는 6개월~1년이다. 빠르면 3년 6개월에서 4년, 변수가 있다 해도 5년 안에는 사업 완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론 웬만한 정비사업장이 10년을 우습게 내다보는 실정이다.

하 국장은 "집행부와 비대위간 분쟁중재만 제대로 해줘도 사업속도가 훨씬 줄어들 수 있다. 소송으로 가면 3심 기간이 너무 길다"며 "이미 공공관리자 제도 안에 의견청취를 하는 위원회가 있는데, 면피 수준의 형식적 의견청취만 하는 경우가 많고, 기본적으로 비대위를 약자로 간주하기 떄문에 기존 집행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효 없는 제도는 오히려 사업기간을 지연시킨다"며 "의무적으로 의견청취 단계를 밟아야 하므로, 두세 달이 의미없이 지나가버린다"고도 했다.

하 국장은 시공사 선정 과정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도 사업속도 지연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분양성, 수익성이 뛰어난 일부 단지 외엔 시공사를 뽑고 싶어도 못 뽑는다. 지원도 많이 하지 않고 하는 곳은 못 미덥다"며 "국가나 지자체가 이런 부분을 지원해야 하지만, 그런 건 없고 용산·강남 등 일부지역 잡기에 혈안이 됐다"고 힘줘 말했다. 또 "더 근본적으로는 건설사가 본인들 분석에 따라 제안한 조건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라고 첨언했다.

공무원이나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과제로 지적됐다.

하 국장은 "공무원은 순환보직 시스템이라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곳으로 옮긴다"며 "순환보직이 생긴 게 비리 근절을 위함이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선 전문성 있는 공무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몇 년 후면 나갈 텐데 해당 현장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게 공무원 입장에선 부담이 된다"며 "근무 끝날 때까지 결정을 미루고 조합은 사업기간 지연에 따른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또 "관리감독 나가는 변호사, 회계사 등이 정비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 업력이 얼마 되지 않거나, 조합 회계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 등"이라며 "일주일, 열흘씩 서류를 뒤져가며 흠집을 내려하고, 결국 조합원끼리 갈등이 불거진다"고도 했다.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는 일부 조합원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하 국장은 "자문변호사에 상담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합원에 증빙자료를 가져오라고 하면 '이런 말이 도는데 문제 아니냐'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증거없이 마타도어를 하는 이들도 문제이나 이에 부화뇌동하는 이들도 문제"라고 했다.

이 같은 문제는 구역 내 실거주 조합원이 적을 경우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전언이다. 세입자들이 반대의견을 내고 카더라통신을 많이 옮긴다. 세입자 처지에선 사업이 늦게 갈수록 이득일 수 있고, 이사비용을 지원받는 이해관계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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