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수억원씩 하락하던 단지들이 초급매물을 소진한 뒤 바닥을 다지고 있는 모습이다.
1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79㎡는 지난달 말 급매물 가격이 17억2000만~17억5000만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직전 최고가인 21억5000만원에 비해 최고 4억원 하락했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의 전용 76㎡도 최근 18억원 초반대 매물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최고가 21억5560만원 대비 3억원가량 낮은 금액대다. 하지만 연휴기간에 분위기가 급변해 호가가 조금씩 오르는 추세다.
◇ 강남 재건축 청약 시장은 여전히 '후끈'…매머드급 단지 대기중
일단 현금을 두둑히 갖고 있는 투자자들은 대규모 재건축 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전국 주택가격 상승세는 주춤하지만, 청약시장은 여전히 뜨겁다는 데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강남4구 재건축 단지 중 가장 최근에 분양을 진행한 서초구 잠원동 '르엘신반포'(신반포 14차 재건축)는 일반분양 67가구 모집에 8358명이 청약해 평균 경쟁률 124.7대 1을 기록했다. 전용면적 100㎡는 8가구 모집에 3267명이 몰리며 408.3대 1을 보였다.
앞서 지난 1월에는 강남구 개포동 일대 개포주공아파트 4단지를 재건축하는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 1순위 청약 결과 232가구 모집에 1만5082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65.01대 1이었다. 전용 102㎡A는 1가구 모집에 283개의 1순위 해당지역 통장이 들어와 최고 경쟁률을 거뒀다.
12·16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길이 막혔지만, 청약에 당첨되면 최대 10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현금 부자'가 대거 몰린 것으로 보인다.
청약을 앞둔 예비청약자들은 매머드급 강남 재건축 단지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이 약세를 보이면서 '묻지마 청약' 대신 까다로운 '옥석고르기'에 나선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1만2032가구)은 일반 분양 물량만 4786가구에 달한다. 6월 조합원 총회를 통해 일반분양 또는 후분양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강남구 '개포주공 1단지 재건축'(6642가구) 단지에서도 일반분양 1206가구가 공급된다.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아파트(래미안 원베일리)와 방배6구역(아크로파크브릿지)도 총가구수가 각각 2990, 1131가구에 달하는 '강남 대어'로 꼽히고 있다.
◇ 강남 재건축 시장, 앞으로는 부담스럽다?
문제는 앞으로다. 일선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경기여건이 좋지 않고 규제가 지속되고 있어, '강남 재건축'의 투자 매력도는 예전같지 않다는 진단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재건축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정부는 규제를 완화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대출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상한제 등을 제대로 확인해보면 생각보다 부담이 크고 수익률은 낮을 수 있다"며 "강남 재건축 투자가 부담스러운 이유"라고 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코로나19 이후 경제전망이 불투명해졌고 2015년 이후 매맷값이 꾸준히 올라 피로감이 누적됐다. 현 정부는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이런 부분에서 보면 투자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다만 강남권의 대체 불가한 측면, 희소성 등을 감안, 실거주 목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며 "초기 대출규제가 강하기 때문에 자본여력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강남 집값이 지속적으로 빠지고 있는 만큼,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지난해 말 최고점보다 20~30%가량 내려간 매물은 선별적으로 매수를 검토할 만 하지만 나머지는 투자 매력도가 높지 않다"며 "현재 강남 집값의 하락 조정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 재건축보다는 정부가 밀어주는 강북 재개발 쪽으로 선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조언이다. 지난 6일 정부는 '5·6 공급대책'을 발표하며, 강북 및 수도권 재개발과 신도시 조성을 통해 공급에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했다. 분양가상한제 시행 등으로 강남권 등 서울시내 재건축사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복안이었다.
안 부장은 "정부는 재건축이 아니라 재개발로 방향타를 틀었다"며 "강북지역 재개발사업 멈춘 곳을 정부가 끌어가는 양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