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1984년 서울로 남파된 22세 북한청년 공작원(쉽게 말해 간첩) 김기영이 20년 넘게 남한에서 살다가 갑자기 평양으로 귀환 명령을 받으면서 벌어진 하룻동안의 이야기다. 본인 스스로도 북한사람인지 남한사람인지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 김기영의 아이러니를 담기에 빛의 제국만한 표지도 없겠다 싶었다. 후일담을 들으니, 김 작가는 르네 마그리티 후손 측에 꽤나 비싼 저작권료를 지급했다고 한다. 그 역시 이 그림만한 표지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고 싶다.” 화가보다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르네 마그리트의 말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명은 어쩐지 엉뚱할 정도다. 담배 파이프를 덜렁 하나 그려놓고 ‘이미지의 배반’이라고 명했다. 커다란 녹색 사과 하나가 그려진 작품의 제목은 ‘리스닝 룸(Listening Room)’이다. 그의 기이한 그림들은 영화 ‘매트릭스’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모티브가 되는 등 현대 대중문화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많은 그림 앞에서 서면 ‘대체 이게 왜 이런 제목이지?’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짖궂은 화가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이번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은 말그대로 특별하다. 그냥 작품을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사진·다큐멘터리 영화 등 총 160여 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실감형 미디어 콘텐츠로 풍성하게 재구성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AR 증강현실, 실감형 영상 기반 체험물, 모노크로매틱 라이트, 교육 체험물 등이 풍성한 아시아 최초 멀티미디어 체험형 전시다.
그렇다면 ‘빛의 제국’은 어떻게 재현됐을까 호기심이 극에 달했다. 르네가 해를 달리해 그린 총 다섯 점의 ‘빛의 제국’이 전시된 공간 옆에 검은 거튼을 제치고 들어갔다. 순간 암흑같던 방에는 대조적인 낮과 밤이 조화롭게 결합된 ‘빛의 제국’ 다섯 점이 연작으로 구현돼 벽면과 바닥을 뒤덮으며 360도로 펼쳐졌다. 커다란 빛의 제국에 갇혀버린 느낌에 순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실제로 르네 마그리티의 작품을 온몸으로 체험할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특히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미스터리 룸(Mystery Room)’에선 마그리트가 1930년대 매료됐던 ‘금지된 재현’(1937) 작품의 주인공이될 수 있다. 작품 속의 거울에는 남자의 앞모습 대신 뒷모습을 비추고 있다. 거울의 특성과 반대인 것인데, 전시회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고 친구가 뒤에서 이를 찍으면 ‘나만의 금지된 재현’이 가능하다.
국내 크로스디자인 연구소가 특별히 개발한 증강현실 포토존 ‘플레이 르네 마그리트 존(Play René Magritte Zone)’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작품 앞에서 선 관람객의 얼굴을 자동 인식해 이미지가 증강되는 AR 포토존으로, 마그리트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된 모습에 너도나도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게 된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공간이다.
마지막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몽환적이고 압도적인 ‘메인 영상 룸(Immersive Room)’이다. 관람객들은 최신식 장비와 웅장한 사운드를 통해 몰입해 마그리트의 작품 이미지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이곳에선 르네 마그리트가 남긴 회화 초기작부터 마지막 시기까지 약 160여 점에 해당하는 다양한 작품을 확대하거나 시각적 효과를 더한 영상으로 구현했다. 약 40분간 펼쳐지는 작품은 벽면과 바닥을 360도로 에워싼다. 독창적이고 신비로운 마그리트의 사고와 정밀한 표현법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기분에 짜릿함마저 들었다.
전시회를 주최한 지엔씨미디어 관계자는 “이번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은 관람객의 감각의 환기를 선사하고 상식과 관습을 뒤엎은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를 통해 감정적 해방감을 만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은 9월 13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된다. 입장료는 일반 1만5000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린이 1만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