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근로환경' 탓에 선천성 질환 아기 출산..."산재 인정"

2020-04-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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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가 근로환경 때문에 선천성 질환 아기를 출산하게 된 것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A씨 등 4명이 요양급여 신청을 반려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를 이유로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질병)과 관계없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국가 역시 이러한 위해 요소로부터 여성 근로자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이뤄지도록 할 책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들어 "모성의 보호는 공동체의 존속·유지와도 관련되므로 국가는 임신, 출산 등의 부담을 덜어주고 지원해야 할 의무를 진다"고도 강조했다.

제주의료원에서 일해 온 간호사 A씨 등 4명은 2009년 임신해 유산 징후를 겪은 뒤 이듬해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나머지 임산부 간호사 11명 중 5명은 유산하기도 했다.

이에 A씨 등은 임신 초기 유해한 요소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에 질병이 생겼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지만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제주의료원은 불규칙한 교대 근무, 부족한 인력 등 노동강도가 높아 이직률이 높았거니와 특히 간호사들에게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에 금지된 알약을 가루로 분쇄하는 업무를 맡겼던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에서는 이 같은 근로 환경이 태아들의 선천성 질환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 범위에 태아가 포함되는지 등이 쟁점이 됐다.

1심은 "원칙적으로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며 태아에게 미치는 어떤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권리·의무는 모체에 귀속된다"며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 업무로 인해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했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고 간호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인 원고들 본인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원고들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에 A씨 등이 상고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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