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준의 취준생 P씨](1) 공교육 종사자 되기 위해 사교육 시장 찾은 사연

2020-04-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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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섯 P씨...세 번째 꿈 '교사' 향해 취준생활

임용고시 경쟁률 11:1···선발 인원 늘어나도 경쟁률↑

"노량진까지 찾아와서 응원해주는 지인들 감사"

[편집자주] 올해 2월 기준 국내 취업준비생(취준생)은 약 115만 명입니다. 누구나 이 신분을 피하진 못합니다. 준비 기간이 얼마나 길고 짧은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취준생이라 해서 다 같은 꿈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합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은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취준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매주 취준생들을 만나 속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응원을 건네려고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취준생은 합격(pass)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P씨로 칭하겠습니다.


첫 번째 P씨(26)는 중등 임용고시 준비생이다.

임용고시의 본말은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이다. 고등 고시만큼 어렵다고 해서 임용 ‘고시’라고 부른다. 2020학년도 서울시교육청 중등 임용고시 일반 경쟁률은 약 11:1이다. 지역마다 경쟁률에 편차는 있다. 지방의 경우 수도권보다 경쟁률이 비교적 낮다. 그래도 전국적으로 또 다른 임용고시인 초등 임용보다 경쟁률이 배 이상 높다. 같은 해 서울 초등 임용 일반 경쟁률은 3.41:1이었다.

높은 경쟁률에 불안한 고시생들은 각종 국가시험 대비 학원이 밀집한 ‘노량진’으로 모인다. 공교육 종사자가 되기 위해 사교육의 힘을 빌리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지난 9일 만난 P씨 역시 노량진에서 공부 중이다. 2년 차 고시생으로 한 차례 실패도 맛봤지만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 나가는 중이다.

◆성악가→회사원→선생님···3번 바뀐 꿈

P씨에게 교사는 벌써 세 번째 꿈이다. 첫 번째는 성악가, 두 번째는 회사원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악을 시작했어요. 대학교에 지원할 때 음대 두 곳, 사범대 한 곳에 (원서를) 넣었어요. 사범대는 어머니가 추천했었는데, 하다 보니 다시 선생님으로 왔네요.” P씨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노래하고 관심받는 걸 좋아해 무대 위에 서는 걸 즐긴 음대생이 어쩌다 교사를 준비하게 됐을까. 음대를 다니면서 성적이 좋았지만 정작 오디션에서 붙는 건 다른 사람이었다.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전공을 포기하고 회사원의 오피스 라이프를 꿈꾸며 미국으로 떠났다.

“외국계 회사를 준비하려고 미국에 단기 인턴을 3개월 다녀왔어요. 뮤지컬 티케팅 회사였는데 생각보다 회사 생활이 저랑 안 맞았어요. 윗사람한테 잘 보여야 하는 그런 걸 잘 못 해서...”

한국에 돌아온 P씨는 4학년 2학기부터 세 번째 꿈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원을 준비했다. 부모님의 권유에서 시작됐다. 막상 해보니 교생 실습과 교육 봉사가 너무 재밌었다. 매일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긴장하고 걱정되기도 했지만 수업 기회도 많았고 함께 한 선생님들도 좋았다. 의외로 잘 맞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 2, 3학년 학생 모두를 봤는데 다 괜찮았고 착했어요. 말 안 듣는 애들도 있지만, 중학생이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한 학생은 또래들 사이에선 상담사였지만 막상 자기 이야기를 할 곳이 없다고 해서 내가 들어줬어요. 저보다 키가 큰 학생 한 명은 우리반도 아닌데 저를 잘 챙겨줬어요. 인상 깊습니다.” P씨의 목소리에 순간 생기가 돌았다.
 

돌고 돌아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P씨 제공]


◆선발 인원 늘었지만 높아지는 경쟁률···코로나19도 큰 변수

임용고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하다. P씨가 공부하는 음악 전공의 경우 지난 2017년에 전국에서 244명을 뽑았는데 2030명이 지원했다. 2년 만에 선발 인원은 13명 늘었지만, 응시생은 436명 늘었다.

높은 경쟁률 탓에 사교육 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노량진에만 10여 개의 임용고시 학원이 몰려 있다. P씨는 “공교육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사교육의 힘을 빌리려고 노량진에 고시생들이 모인다”며 “출제위원들은 노량진 방식을 피해서 내려고 하다 보니 시험문제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럴수록 학생들은 더 노량진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큰 변수다. 지난 8일 노량진 대형 공무원 시험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와 일대 학원들이 비상 상태다. 대부분 학원이 이미 3월에 한 차례 휴강했던 터라 2차 휴원보다는 철저한 방역에 초점을 맞추는 곳도 있다. 학원생들은 오락가락하는 시험 일정에 마음이 뒤숭숭하다.

 

노량진 학원가에도 봄이 왔다. [사진=P씨 제공]

“학원이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어요. 코로나19 여파가 엄청 커요. 고시생들에게 사이클이라는 게 있는데... 공부를 시작 안 한 느낌이에요. 마음도 뜨고 불안하고, 집중이 잘 안 돼요. 주변에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 회계사 준비하는 친구들도 시험 일정이 계속 밀리니 더 힘들어해요.”

성악 전공을 살려 용돈 벌이를 하던 결혼식 오브리(연주) 아르바이트도 끊겼다.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식이 다 취소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부모님한테 손을 벌리진 않았다. 정부가 마련한 제도를 최대한 이용했다. “지금 집 전세금은 청년주택자금대출로 해결했어요. 관리비는 부모님이 지원해 주시지만, 식비·생활비 등은 청년 구직활동지원금을 신청해서 써요. 주변에 이런 제도를 추천도 했어요. 좋은 제도가 많은데 주변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아쉬운 낙방과 재도전···"응원해주는 사람들 모두 감사"

P씨는 작년 1월부터 노량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부한다. 매일 맨 앞 왼쪽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대학원 졸업도 병행하며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결전의 날, 무척 떨렸다고 P씨는 회상한다. 무대를 즐길 정도로 긴장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시험만은 달랐다. 긴장한 탓에 배가 아팠고 속도 안 좋았다. 컨디션 난조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좌절을 맛보고 휴식기를 가지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이판과 춘천 등에 다녀왔어요. 여행을 많이 다니고 밀린 영화도 봤어요. 시험에 아깝게 떨어졌는데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친구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점차 안정이 되더라고요.”

다시 돌아온 노량진에는 지난 1년간 P씨의 노력을 알아봐 준 사람이 있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던 P씨에게 학원 측이 먼저 조교 자리를 제안했다. 조교에게는 학원비 면제, 특강 우선 신청 등 어마어마한 혜택이 제공됐다.

 

P씨가 노량진에서 스트레스 해소하는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코인노래방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상반기까지. 시험이 닥친 하반기에는 일주일에 하루 늦잠 자는 게 휴식의 전부였다. 노량진까지 보러 와주는 지인들이 모두 엄청 고맙다고 한다. [사진=P씨 제공]


미래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교사’가 돼도 평생 직업으로는 못 할 것 같다고 한다. 만약 그만두게 된다면 애들은 참 좋지만, 학부모들과의 갈등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했다. 그리고 그전에 채용(합격) 걱정이 앞섰다.

“저희는 시험이 11월인데 수능이 12월로 밀리고 개학도 안 해서 임용고시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을 안 뽑는다는 말도 있고... 최소 3수라는 데 재수인 올해는 되겠죠.”

P씨는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고 스터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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