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증가하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이 폐쇄된 모습. [사진=저작권자.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편집자주>코로나19는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하다. 노인들은 공적구매 마스크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모바일이 낯설어 마스크 구매 앱을 이용한 주변 약국 검색이 서툴다. 몇시간씩 약국에서 줄을 서는 것도 체력으로도 힘들고 여의치 않다. 암환자의 경우 면역력이 떨어져 마스크가 필수지만 긴 줄 사이에서 마스크를 구매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암환자들은 통원치료를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병원을 오간다. 노인과 환자, 취약계층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는 현황과 이를 극복할 대책은 없을지 2회에 걸쳐 해답을 모색해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마스크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마스크를 대신 구매해줄 자식·손녀가 없거나, 온라인으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해 '마스크 지도'를 찾아다닐 여력이 없는 노인들이 주인공이다. 감염병이 확산되면서 최소한의 방역수단인 마스크 공급마져 노인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탑골공원으로 2년째 출퇴근을 한다는 이모 할아버지(65)는 누렇게 변한 흰색 면마스크를 쓴 채였다. 그는 "면 마스크를 한달째 빨아쓰고 있다"면서 "우리같이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약국에 가도 구하기가 쉽지 않고, 어디서 파는지도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입 부분에 헝겊이나 휴지조각을 대고 쓰면 괜찮다"면서 "사실 (나는)안 써도 상관은 없지만 여기서 놀려면 써야된다.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인근에서 만난 장모 할아버지(70)는 KF94마스크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는 "아는 사람이 며칠 전에 마스크를 몇장 줬다"면서 "햇볕에 말리면 소독이 다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걸리면 그냥 다 같이 죽는거야. 난 죽어도 상관이 없어"라고 말했다.
탑골공원 뒤편에서 만난 전모 할머니(70)는 "마스크 사기가 복잡하다고 하는데 나는 혼자 살아서 구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면서 "더러운 마스크를 써서 그런지 입술에 난 염증이 일주일 넘게 사라지질 않는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김모씨(55)는 "마스크값 2000원이면 여기선 육개장을 한 그릇 사먹을 수 있는 돈"이라면서 "아마 마스크보다 밥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정보에 취약하고 발품을 팔기 어려운 노인들이 마스크를 구하는 경로는 탑골공원이 위치한 종로3가부터 의료기기, 생필품 잡화거리가 형성된 종로5가다. 실제 이날 거리를 돌아보니 다수의 가게에서 마스크를 팔고 있었고, 이를 사려는 노인들도 쉽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기자가 거리에 위치한 약국과 의료기기 도매점, 잡화점 등 15곳을 무작위로 방문한 결과 KF80·K94마스크를 판매하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A의료기기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씨(55)는 "KF80·K94 등 보건용 마스크는 정부가 공공물량으로 풀면서 민간으로는 거의 넘어오질 않는다"면서 "보건용 마스크는 없고 덴탈마스크만 50장에 4만원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B잡화점에서는 우레탄으로 만든 마스크를 개당 7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잡화점 관계자는 "우레탄도 코로나 예방효과가 있다"면서 "빨아쓰려면 부직포보다는 우레탄이 낫다"고 홍보했다.
덴탈마스크란 병원에서 의료진이 쓰는 얇은 일회용 마스크다. 코로나19의 주요 감염경로인 비말(침방울)차단력이 KF80.94 마스크의 4분의 1 수준이다. 우레탄 마스크 역시 안 쓰는 것보다는 낫지만, 비말차단 효과가 보건용 마스크보다는 크게 떨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 정책이 오히려 취약계층의 고통을 키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여론에서는 마스크를 음성적으로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의료진과 그들의 지인, 회사에서 지급해주는 대기업 직장인, 마스크를 구하러 다니는 난민, 그마저도 소외받는 노인 등을 '마스크 카스트' 제도와 비교하는 자조도 나온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관계자는 "한국의 IT기술 발전은 정보의 투명화, 정보확산 등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디지털 기기 이용경험이 없고, 학습속도가 느린 고령층을 소외하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감염병 확산으로 고령층의 정보소외 현상이 부각됐고, 앞으로는 이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 갈등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