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니엘의 일본 풍경화] (6) 위기의 아베가 펼치는 측근 정치

2020-03-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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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오후 5시21분 이후 한국정부, 혹시 日전화 받았나요

[노다니엘]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국가가 합리적 행동자이며, 따라서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이익의 대립으로 본다. 그러나 현재의 한·일 간의 갈등에는 전략적 이익의 충돌 이외에도 감정적인 요소가 깊이 개재(介在)되어 있다. 특히, 양국의 지도자 간에 불신과 혐오마저 있는 듯한 실정이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두 지도자의 개인적인 불화보다 두 정권 모두 위기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현재 한·일 간의 가장 큰 갈등 사안은 코로나19 사태로 전개되고 있는 양국 국민의 입국 규제이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3월 5일 일본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방침을 밝히며, 그 방침을 사전에 한국 정부에 통보하지 않았다고 항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5일에 있었던 "신형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책본부 회의에서 오후 7시경에 결정된 사항을 약 2시간 전에 외무성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전화로 통보하였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외교 사안에 대한 발표를 놓고 두 나라 정부 사이에 이견과 충돌은 이미 지난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사건에서 심각하게 드러났다.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두 나라 정부의 의사소통 채널이 손상되어 있는 것인가?

이를 정부의 내부자가 아니라면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총리의 동정을 거의 분단위로 공개하여 매스컴에서 이를 보도한다. 그렇다면 3월 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관저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던가? 아베 정권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총리대신 관저

 

 



일본에서 ‘총리대신 관저’란 총리대신이 내각회의를 여는 등 집무를 보는 곳을 말한다. 한국의 청와대와 마찬가지이다. 총 5층 건물의 옥상에는 헬리포트가 있고, 지하에는 위기관리센터가 있다. 현재의 관저 건물은 2002년 4월에 완성된 것으로, 한국인의 귀에 익은 아카사카와 가까운 도심의 한복판에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관저의 경내에는 총리가 숙박할 수 있는 공저(公邸)가 있지만, 아베 총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부야구에 있는 개인주택(私邸)에서 출퇴근을 한다.

3월 4일의 동정

그렇다면 3월 5일에 총리 관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날은 이례적으로 아베가 종일 관저에서 다수의 정치가나 관료를 만나며 회의를 거듭하였다.

그전에 3월 4일의 일정을 먼저 볼 필요가 있다. 아베는 오전 9시 30분에 사저를 출발하여 13분 후인 9시 43분에 관저에 도착하였다. 집무실에서는 9시 51분부터 11시 19분까지 무려 88분 동안 오카다 나오키(岡田直樹) 관방부장관(57)과 독대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긴 시간이다. 오카다 나오키는 누구인가? 오카다는 아베와 같은 파벌에 속하는 참의원 의원이다. 이날 오후에는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오카다와의 긴 대화는 참의원에서의 대응에 관한 것임에 틀림없다. 오카다는 외교와는 관계가 먼 사람이다.

아베가 참의원 출석을 마치고 관저에 돌아온 것은 오후 7시 41분이었다. 그런데 관저에는 내각부(한국의 대통령비서실, 정책실 및 국가안보실을 합한 것에 해당)와 행정부의 요인 20명 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관방장관 및 부장관, 후생대신, 외무차관, 방위차관, 국가안전보장국장, 문부차관, 내각위기관리감 등이었다. 여기서 차관이란 사무차관으로, 국가시험을 통과한 각 성·청 공무원의 최고위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위에 정치가가 대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그 성·청을 대표한다.

이들이 스무명 이상이 모여 아베와 얼굴을 맞댄 시간은 불과 54분이었다. 무언가 중대한 협의사안이 있었던 것이다. 아베는 오후 8시 55분 관저를 출발하여 9시 8분에 사저에 도착하였다.


3월 5일의 동정 
 
이날 아베는 오전 9시 32분에 사저를 떠나 47분에 관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저녁 7시 35분에 관저에서 경내에 있는 관저로 이동하여 휴식에 들어갔다. 이날은 사저로 퇴근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은 총 9시간 48분 동안 관저에 있었으며 일체의 외출이 없었다. 그 시간 중에서 약 70분 정도가 ‘여성정치인 비약의 모임’과 ‘미래투자회의’라는 회의를 주재한 것 이외에는 모두 국가안전보장회의와 ‘신형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였다. 전날의 54분을 포함하여 10시간 가까이 아베와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한 사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노다니엘]


내각에서 온 사람들의 명단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이 후생성에서 대신과 사무차관, 그리고 의무기감이 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유행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집행하고 있는 경제산업성에서 사무차관과 정책입안심의관이 참석하였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이 지소미아와 관련이 되는 방위성에서 사무차관, 통합막료부장(한국의 합참차장에 해당), 그리고 방위정책국장이 참석하였다. 여기에 외교부에서 사무차관과 외교정책국장이 가세하였다.

후생성, 경제산업성, 방위성, 외무성의 최고위 간부들이 참석하였다는 것은 한국과의 갈등사안과 미국을 포함하는 외교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그 외에 농수산 무역과 관련되는 농림수산부의 사무차관, 그리고 유학생 문제를 관장하는 문부과학성의 사무차관이 참석하였다. 일본의 관료사회에서 사무차관은 그 부서의 실질적 최고위자이다. 이날 7개 부서의 실질적 총책임자가 모여 하루 종일 회의를 한 것이다. 결국, 3월 5일 일본 총리관저에서는 한·일 문제를 하루 종일 다룬 것이었다.

한편 같은 건물에서 총리를 보좌하는 내각부, 즉 관저의 관방장관, 부장관, 부장관보 7명이 2개 내지 그 이상의 세션에 참석하였다. 게다가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내각위기관리감이 참석하였고, 총리의 분신에 가까운 보좌관 두 명이 복수의 세션에 참석하였다. 일본정치를 관찰해 온 내 기억 속에, 일본 정권의 수뇌부라고 해도 좋을 26명의 인원이 하루 이상을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 본다면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국방부, 농림축산부, 교육부 장관과 청와대의 비서실, 정책실, 국가안보실의 최고위 간부 등 26명이 모여 하루 종일 대통령과 논의를 한 것이다.

오전 10시 15분에 시작된 회의는 오후 5시 21분에 중단된다. 앞에서 인용했듯이, 5일에 있었던 신형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책본부 회의에서 오후 7시경에 결정된 사항을 약 2시간 전에 외무성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통보하였다면, 이 5시 21분은 일단 중지된 시점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7시 10분에 대책회의가 끝나고 12분부터 22분까지 총무대신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아베를 면담한 것은 이날의 회의 내용을 내각의 다양한 정책들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를 정치적으로 상의하는 자리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아베의 측근 정치

일본정치 역사에서 총리로서 가장 긴 재임기간을 누리고 있는 아베의 정치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측근정치’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민당이 지배해 온 일본정치는 총리관저·집권여당·관료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여기에 경단련 등의 재계단체와 때로는 ‘학식경험자’가 참여하는 일종의 이해당사자의 연합정권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그림은 상당히 다르다. 한·일관계의 중대한 국면을 다루는 총리관저에서의 이틀간의 회의에 자민당 부총재인 아소 다로,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공명당, 재계 등의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 반면에 두드러지는 인물이 외교를 총괄하는 사무차관 아키바, 국가안전보장국장, 총리보좌관, 관방장관 및 부장관 등이다. 이 인물들에 관하여 지면의 제약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들을 ‘측근’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 측근중심주의는 입국 규제를 정하는 3월 4, 5일의 회의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금년 1월과 2월의 60일 사이에 총리관저에서 아베와의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총 참석횟수는 1073회이다(동일 인물 복수 참석). 여기에 참석한 인물들을 분야별로 보면, 관저 소속 479회, 관료 308회, 정치가 181회, 재계 29회, 기타가 76회이다. 흔히 아베의 오른팔이라고 인식되는 부총재 아소 다로가 총리관저의 회합에 참석한 것은 21회이고, 외무대신 모테기가 참석한 것은 16회이며, 심지어 총리의 ‘배우자’라고 불리는 관방장관(스가)가 참석한 것은 35회에 불과하다.

이에 비하여 경찰 출신의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참석한 세션 수는 65회이고, 경제산업성 출신의 두 측근, 즉 관방부장관 니시무라가 56회, 총리보좌관 이마이가 55회 세션에 참석하였다. 또한 이번에 눈길을 끄는 것은 코로나19와 관련된 부처인 후생대신 가토가 23회, 의무기감이 34회 참석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1월과 2월에 아베를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은 한국과의 현안인 수출 규제, 지소미아, 그리고 입국 규제에 관련되는 인물들이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가장 큰 시사는 현재의 아베 관저가 커다란 사안들에 대한 위기감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현안해결 중심의 관저정치를 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다니엘>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MIT에서 비교정치경제학을 전공하며 일본전문가로 교육받았다.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시작되던 1989년 3월에 도쿄에서 연구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다. 학자로서 홍콩과기대와 중국인민은행 등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컨설팅업에 종사하며 미국과 일본의 회사에서 일본과 관련한 일을 하고, 현재는 서울에서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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