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와 정치권의 만남 "알면서도, 혹은 모르면서도 온다"

2020-03-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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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치인들에게 '득표' 동원력 내세워 접근

이만희 회장 외부 노출할 때는 국내보다 국외 인사 섭외

# 한 지역구 의원인 A의원은 지난해 4월 경남 김해체육관에서 열린 제34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 참여했다. 당시 행사에는 1000여명이 참여했다. 이 행사에서 A의원은 IWPG라는 이름으로 접근한 한 단체와 사진을 찍었다. 해당 단체는 신천지 위장 단체로 ‘신천지 2인자’로 알려진 김남희씨가 전 대표로 있던 곳이다. IWPG는 이 사진을 통해 해당의원이 자신들을 응원했다는 식으로 홍보했다.

A의원 측은 이에 대해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서 초청이 오기 때문에 참여한 것 뿐”이라며 “당시도 봉사단체 중 하나인 줄 알고 사진을 찍은 것이지 신천지와 관련이 있는 곳인지 몰랐다”고 했다.

행사를 주관한 김해시 장애인 단체연합회 측도 “평소 IWPG가 봉사 관련 활동을 하는 곳인 줄 알고 왕래를 했었는데 전혀 신천지인 것을 몰랐다”며 “최근 코로나19로 논란이 생기면서 신천지 관련 내용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17년 국회의원 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통일포럼'. [사진=HWPL 홈페이지 캡처]


# 2017년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대강당에서는 '한반도평화통일포럼'이 열렸다. 이 행사에는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참석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곳은 HWPL(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이다. 이 회장이 대표로 있는 곳으로 신천지 위장단체 중 한 곳이다. 사진 속에는 국회 내 한 연구단체의 이름이 '후원'으로 명시돼 있다.

해당 연구단체 측은 "우리는 장소 대관만 해준 것이지 후원한 적이 없다"며 "후원이라고 멋대로 적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한 번에 신청이 들어온 게 아니라 다른 단체들의 이름을 빌려 통일과 관련한 행사를 열겠다고 해서 장소 신청을 대리해준 것뿐"이라고 덧봍였다.

신천지는 여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 등과 결탁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각종 신천지 위장 단체들을 활용하며 공을 들였다. HWPL(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IWPG(세계여성평화그룹), IPYG(국제청년평화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신천지라고 하면 거절하지만, 이름을 다르게 써버리니까 정치인들도 모르고 오기도 하고, 또 취지가 봉사 등이라니까 알면서도 온다."

신천지에서 활동했던 A씨는 신천지의 정치인 섭외 방법을 이같이 설명했다.

◆ 동원력 내세워 국내 정치인들에게 접근

과거 한나라당 선거에 신천지가 동원됐다는 정황도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신천지가 2003년 서청원 전 의원의 당선을 돕기 위해 전당대회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문서가 발표되는 한편, 2007년 신천지 신도들에게 한나라당 특별당원 입당을 독려하는 문서도 검찰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까지 신천지에서 섭외부차장을 맡았던 김종철씨는 당시 신천지가 동원능력을 내세워 정치권에 조직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천지 섭외부에서 활동하던 당시 신도들이 새누리당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013년까지 신천지 섭외부차장으로 활동한 김종철씨가 제공한 새누리당 당원증. [사진=김종철씨 제공]


김종철 전 섭외부차장은 "당원에 가입하지 않은 신천지 신도들도 정치 활동에 공공연하게 동원된다"면서 "처음부터 어떤 조건을 내세우며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인원이 많고 동원 능력이 있으니 선거에서 도와줄 수도 있다'며 접근하는 경우가 많고, 신천지는 이를 통해 정치권과 관계를 맺고 성전 건축 등의 큰 프로젝트에서 정치권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천지가 위장단체를 통해 평화나 여성 인권을 내세우는 행사를 하거나 활발한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봉사단체를 통한 활동으로 이슈를 만들고, 이를 통해 신천지와 직접적인 연결점을 갖기 부담스러워하는 정치인들과 접촉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신천지 위장단체는 이러한 '정치권 줄대기'의 초석으로 문화나 통일 등 다양한 단체들과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술 관련 협회의 상임고문 이모씨는 지난해 신천지 위장 단체 IWPG가 개최한 '제2회 평화사랑 그림그리기 국제대회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으로 섰다.

그는 IWPG 지부장과 미술 관련 행사에서 종종 접촉해 알고 있었다고 전하며, IWPG는 지역에서 봉사로 유명한 단체였고 특정 종교단체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모씨는 "지부장의 종교를 물어보니 천주교라고 답했고, 단체에 스님도 있고 수녀도 있어 특정 종교단체라는 이미지가 전혀 없었다"면서 "지역에서 눈에 띄게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여서 미술인들도 돈 한푼 받지 않고 심사위원으로 나갔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을 주관사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한·러공생위원회 한 관계자는 "HWPL이 평화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단체라 관심이 있다고 밝혀 주관사로 참여하게 한 것"이라면서 "회원들 중 HWPL 소속이 몇 명 있어 후원 형식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고 조계종이나 한기총에서 온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천지 유관단체들이 평화를 주창하며 봉사활동을 펼쳐 오면서 많은 정치인들도 '신천지'가 명시된 봉사단체에 표창장을 수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2017년 대구신천지자원봉사단에 표창장을 수여했고, 최영호 전 광주남구청장은 2018년 신천지자원봉사단에 표창장을 수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6년과 신천지예수교 한성교회 자원봉사단에 깨끗한 서울 가꾸기 사업 추진과 관련 모범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안희정 전 충청남도지사, 김부겸 의원, 한선교 국회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신천지 유관 봉사단체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 이만희 회장 내세우는 것은 국내보다 국외 인사로

신천지는 이만희 회장을 노출할 때는 국내보다 국외 인사들을 노렸다. 국내 정치인들에게는 이 회장의 이름이 알려져 있어 거절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각 지파에 국제부를 마련해 이런 활동을 치밀하게 전개했다. 해외 정치인들을 섭외할 때도 마찬가지로 위장 단체를 활용했다.
 

2013년 1월 30일 아웅산 수치 여사(오른쪽)와 이만희 총회장이 광주시 홀리데이 인 호텔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2013년 미얀마의 여성 지도자로 이름을 알리던 아웅산 수치가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 개막식 참석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신천지는 그에게 접근했다. 아웅산 수치가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했을 때 해당 구역 담당인 베드로 지파는 봉사 단체 등을 앞세운 채 그가 머무는 호텔에서 기다렸다. 이후 아웅산 수치가 호텔 로비에 등장했을 때 다가가서는 “한국에 사는 혼혈 아이들이 당신을 위해 이런 걸 준비했다”는 식으로 꽃목걸이를 전달했다. 이후에는 “이 아이들을 후원해주는 훌륭한 분이 계신다”며 이만희가 등장해 사진을 함께 찍었다.

이렇게 찍힌 사진으로 신천지는 아웅산 수치가 이 회장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동참의사를 밝혔다는 식으로 홍보했다.

이들은 이렇게 확보한 정치인들과의 사진 등을 활용해 내부 결속력을 다지고 외부 홍보에도 사용했다. HWPL을 비롯한 신천지 관련 홈페이지에서는 실제 이 회장이 각 국의 유명인사, 대통령과도 함께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

6여년간 신천지 대구 다대오 지파 국제부로 활동했던 서민준 구리이단상담소 간사는 “이런 사진 등을 내부에 보여주며 ‘우리 단체가 이렇게 응원받는다’, ‘외부에서도 알아주는 단체’라는 식으로 결속력을 다지거나, 유명인과의 사진을 내세워 다른 유명인들과의 관계를 만들거나 사진을 찍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각 단체들은 신천지와는 다른 입장을 보이며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같다는 게 서 간사의 설명이다. 서 간사는 “이름만 다를 뿐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행사에 동원되는 것도 모두 신천지”라며 “나도 (신천지로 활동할 때) 필요에 따라 HWPL가 됐다가, IPYG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이 치밀하게 접근하기는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신천지와 연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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