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열린 사회와 그 방역의 적들

2020-03-10 15:35
  • 글자크기 설정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열린 사회’를 되새겨 본다. 20세기 위대한 과학·정치철학자 칼 포퍼의 대표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그 열린 사회(The open society)다. 포퍼에게 열린 사회는 한 인간이 개인으로 자유롭게 사는 개인주의 사회,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사회다. 그 반대는 닫힌 사회로, 역사의 법칙에 따르는 전체주의 사회, 폭력적인 혁명을 통해 구현되는 급진 사회다. 포퍼는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는 열린 사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2020년 대한민국은 열린 사회다. 중국을 닫지 않았고, 대구·경북을 봉쇄하지 않는 열린 사회다. 중국에 대한 문을 차단하지 않아 방역 참사가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확진자의 대구·경북 비율이 90% 넘는 상황에서도 “대구·경북을 차단하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모순이면서도 우리 대부분이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9일 외국언론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방역 전쟁의 개방성, 투명성을 설명했다. “한국은 봉쇄, 격리 등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감염병 대응 모델을 만들고 있다. 그 핵심은 열린 민주사회를 위한 역동적 대응체계다. 두 가지 중요한 핵심 가치는 개방성과 투명성에 기반해 시민들의 참여를 확보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존중해 첨단기술을 활용한 효율적인 대응수단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잘한 얘기만 하지 않고, 못한 부분도 시인했다. “가장 큰 잘못은 신천지와 같은, 정규 종교에서 벗어나는 종교의 대중 집회를 예상하지 못해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사회나 이런 집단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해 전략과 의료자원을 준비해야 한다.”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코로나19 정부합동 외신브리핑. 사진=KTV 캡처]


대한민국은 열린 사회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발견한 '열린 사회 방역의 적들’을 찾아 박멸해야 한다.

지난 2일 칼럼에서 ‘적어도 지금은’ 신천지를 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썼다. 신천지 지도부와 신도들의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정부도 “자칫 강압적 조치로 신천지 신자들이 음성적으로 숨으면 방역에 긍정적이지 않다”라고 했다.

검찰 역시 같은 논리로 압수수색 등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에 신중한 입장을 밝혀왔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방역 당국이 신천지 신도 명단을 확보해 당장은 강제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압수수색 시 대검과 협의할 것을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이달 초 대구경찰청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대구지검이 두 차례나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신중함을 유지하며 신천지 측에 시간을 주는 동안, 신천지 지도부와 신도들이 보인 행태는 도움이 아니라 훼방이었다. 검찰은 이제 대대적으로 ‘방역 미꾸라지’를 소탕할 명분을 얻게 됐다. 지난 3일 이만희 총회장의 사과 기자회견은 ‘언론플레이’였고 이후 신천지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방역에 협조하기는커녕 방역을 방해하고 있다.

대구시 신천지 교인의 97.6%가 진단검사를 받았는데 나머지 80여명은 검사를 거부하고 있다. 또 확진 판정을 받은 신천지 교인이 생활치료센터 입소를 거부하며 난동을 부리며 달아나다 붙잡혔다. 일반 교회에 다니며 ‘추수꾼’ 역할을 한 신천지 신도가 거짓말을 계속하다 CCTV 확인 후 사실을 실토한 경우도 있다.

‘코로나19 국가지정치료 병상’이 있는 분당서울대병원의 확진자 직원 역시 신천지 교인임을 숨겼다. 외래환자 안내를 담당한 이 직원은 신천지 신도임을 숨기고 있다가 정부 명단 배포로 사실이 밝혀진 뒤 출근 자제 권고까지 받았지만, 무시하고 지난 6일까지 병원에 출근했다.

이처럼 신천지 신도임이 확인됐음에도 그 동선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역학조사를 진행할 때 휴대폰 위치 추적, CCTV, 카드 사용 내역 등을 확인하지만 초기엔 확진자의 진술에 의존해 동선을 파악하기 때문에 이들의 거짓말은 치명적이다.

이들 모두 역학조사에 고의적으로 누락·은폐, 방해하는 행위를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현행범들이다.

무엇보다 대구 한마음아파트의 코로나19 확진자 46명 전원이 신천지 교인인 점은 더 이상 신천지에 ‘개전의 정’이 없다고 판단되는 이유다.
 

[육군 2작전사령부 병력들이 9일 집단 거주시설로는 처음으로 코호트 격리 중인 대구 달서구 한마음아파트 일대에서 대대적인 방역 및 소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사실이 심각한 이유는 한마음아파트처럼 기존 명단으로는 알 수 없는 교인들의 집단 주거지가 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천지는 코로나19와의 방역전쟁에 엄청난 혼선과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당초 신천지에 대한 고발을 유보하며 강제수사는 방역에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이던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난 8일 “신천지 측의 허위자료 제출 등으로 방역 전선에 지장을 초래하는 지금은 강력하고 신속한 강제수사와 자료수집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단단히 화가 나 있다.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를 받아서 지난달 28일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 포인트, 응답률 5.2%,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이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도 신천지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찬성이 86.2%로 매우 높다. 무엇보다 대구·경북의 찬성 비율은 95.8%로 압도적이다. 국민의 대다수, 특히 미래통합당의 절대 지지층인 대구·경북 주민들의 여론이 이렇다.

그럼에도 검찰은 주저하고 있다. 신천지 지도부가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신도 명단과 집단시설 같은 부동산 현황을 누락·허위·축소 제출해 역학조사를 방해한 걸 밝혀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는 우리가 낸 세금, 코로나19에 투입되는 국가예산과 곧바로 이어진다. 구상권 때문이다. 구상권은 채무를 대신 갚아준 사람이 채권자를 대신해 채무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그중 국가가 행사하는 구상권은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먼저 배상금을 지급한 뒤 불법행위자에게 그 돈을 받아내는 것이다. 즉, 정부가 방역비용이나 피해자 배상 등을 먼저 지급한 뒤 감염증 확산에 원인을 제공한 신천지 측에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래서 신천지의 범죄 혐의를 확보해 놓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구상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신천지 시설에 대한 현장 점검을 실시한 결과, 신천지 측이 제공한 170개소보다 32개소가 많은 202개소가 신천지 시설임을 확인했다. 이는 신천지를 상대로 한 구상권 행사에서 중요하다. 그들의 숨은 재산을 찾으면 구상권 액수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구리 이단상담소 신현욱 목사에 따르면 신천지의 2019년 한 해 전체 수입이 3834억원이고, 현재 통장잔액만 2873억원이다. 신천지 소유 부동산 1000곳의 가치도 2740억원에 이른다. 검찰 수사로 구상권 청구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를 입증하고, 은닉재산을 더 많이 캐내면 우리 세금을 아낄 수 있는 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신천지 교인 전수조사와 치료 비용에 구상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권영진 대구시장 역시 “신천지 교회에 구상권 등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신천지 측의 고의 방해 등이 밝혀진다면 정부로서는 당연히 구상권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9년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이제 윤석열 검찰총장이 나서야 한다. 그는 지난 5일 ‘대검찰청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코로나19 검찰대응본부’로 격상시키고 직접 본부장을 맡았다. 과거 그의 발언을 찾아보니 신천지를 초기부터 수사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었다.

2013년 10월 윤 총장은 “수사는 초기에 어떤 사태를 딱 장악해 정말 표범이 사냥하듯이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19년 7월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의 주인이자 의뢰인은 오직 국민밖에 없다”고도 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이끌 당시 “나는 ‘검찰주의자’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헌법주의자’다”라고 했다. 헌법 제7조 ①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이다. 공무원 윤석열 총장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