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의 베트남 통(通)]화교 없는 베트남, 한국인에게 여전한 기회의 나라

2020-01-23 06:00
  • 글자크기 설정

베트남 내 화교 영향력 미비...베트남 통일 후 화교 배척 정책에 기인

베트남 ‘무용론’ 비판 시각에도 내수경제 진입 토양은 충분

베트남 호찌민시 5군에 위치한 한 중국사원.[사진=베트남통신사(TTXVN)]

“베트남은 화교가 없는 유일한 아세안 국가다. 특히 내수에 강한 현지 화교 기업이 없다는 점은 한국인에게 여전히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베트남 식품분야에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한 식품기업 회장의 평가다. 그는 사업 초장기 미리 시장을 선점한 화교 기업이 없었다며, 베트남 상황은 시작부터가 다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화교(華僑)의 경제적 영향력이 사실상 전무한 국가 중 하나다.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위세를 떨치는 화교 자본에 비하면 같은 역내에 위치한 베트남에서 화교의 영향력은 사실상 거의 없는 셈으로 쳐도 무방할 정도다.

이 같은 베트남 화교자본의 취약성은 역사적 배경 탓이 크다. 베트남 통일 당시 즈엉반민 정권이 패망하고 사이공(호찌민) 함락이 이어지자 대대적인 화교 축출이 시행됐다. 이때 베트남 공산당은 화폐개혁을 통해 베트남 남부를 장악하고 있던 화교들의 경제권을 흔들어 버렸다.

베트남 정부는 통일로 인해 남북 베트남의 화폐를 통일시키기 위한 당연한 절차라고 강조했지만 거대한 지하경제를 움직이던 화교 사업가들은 자금이 탈탈 털릴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화교경제권이 붕괴하고 베트남 정부를 불신하는 화교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1910년대 베트남에 초기정착한 화교들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캡처]


일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된 이후 1975~1995년에 걸쳐 약 80만명의 보트피플이 발생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중국계 베트남인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다만 베트남 화교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베트남 통일 후 지속된 반중감정과 배척정책에도 2010년 기준으로 여전히 100만명 이상의 화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에서는 화교를 통칭해 호아족(Nguoi Hoa)이라고 부른다. 현재 베트남 내 공식적인 화교 분류는 중국어를 말하는 민족 가운데 광둥성에서 주로 이주해온 산지우족과 중국과 가까운 객가 지역에서 이동한 응아이족으로 구분한다.

베트남 화교들은 아직도 대부분 과거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인 베트남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호찌민시 주변에 많이 산다. 화교들이 집중 거주하는 호찌민시의 5군은 아예 차이나타운까지 형성돼 있을 정도다.

5군 지역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관광지인 벤탄시장과 바로 맞닿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의 많은 화교들은 5군의 지역상권과 벤탄시장을 연결하며 생업을 이뤄나가고 있다.

◆베트남 내수시장 경쟁 가열에 연이은 현지 실패사례 부각
한국 기업의 영업방식 한계 지적··· 현지 진출 내수 성공기업 손꼽아


최근 베트남에 대한 투자물결 속에서 베트남 투자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앞다퉈 베트남에 진출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들이 참담한 실적을 안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제 무분별한 베트남 진출보다는 금융, 부동산, 유통 등 베트남 내수의 위험요소와 규모의 경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 무용론이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베트남보다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라는 베트남 대안 찾기도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현지 전문가들은 특히 베트남 내수분야에서 시장 개척은 여전히 권유할 만한 미지의 분야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기업들이 실패한 이유는 철저한 현지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며, 일부의 실패가 베트남 시장 전체의 실패로 연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은 다른 나라와 달리 수십년간 내수를 지배해온 화교기업이 없다는 점이 한국인들을 포함해 외국기업에는 최대의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베트남에도 ‘내수의 제왕’으로 불리는 베트남 최대기업집단인 빈그룹(VinGroup)이 있다. 다만 빈그룹 자체적으로는 서비스업을 모두 장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빈그룹 역시 외부투자와 선진 기술을 도입해 서비스분야 계열사를 키워나가고 있다. 태생적으로 수십년 전부터 화교상권이 장악해온 다른 아세안 국가와는 사정이 다른 현실이다.

베트남에 일정기간 거주한 교민이라면 베트남 서비스업의 낙후성을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매장의 물건 진열방식이나 손님응대 방식이 아직은 서비스업이 응당 갖추어야 할 부분에서 상당히 후진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필리핀 퀘존시티에 위치한 SM 노스에드사 지점.[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면 철저한 이윤추구의 화교기업이 키워온 필리핀과 태국의 서비스업은 국제적으로도 호평을 받는다. 필리핀 SM몰이나 태국 CP계열사의 몰 등은 한국의 쇼핑몰보다도 오히려 뛰어난 인테리어와 그림같은 물건 진열들을 자랑한다. 심지어 필리핀의 복합초대형 SM메가몰이나 SM몰오브아시아는 오히려 국내의 한 쇼핑몰이 그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애기까지 나온다. 

한재진 한얼컨설팅 베트남 대표는 한국기업들이 너도나도 베트남 내수분야에 진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몇몇 분야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들이 대기업 자본이라는 장점을 통해 내수에 적극 진출하고 있지만 정작 세밀한 부분에서는 놓치고 있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회사는 당연히 자사의 제품을 고품질로 홍보하며 판매하지만 정작 잘 팔리는 베트남 제품을 보고 배워서 그것을 좀 더 현지화해 판매하려는 방식은 취하지 않는 식이다.

사실 수많은 한국기업들이 진출했지만 현지에서 성공한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삼성전자 베트남이 베트남 GDP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점이 부각되면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삼성전자 베트남을 온전한 베트남의 내수기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베트남에서 내수 서비스업으로 실력을 키워온 한국 기업은 신한베트남, 락앤락, 오리온, 한화생명 정도다. 이들 기업의 장점은 철저한 현지화와 함께 상품 자체를 베트남 방식으로 바꾸고 베트남 직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영업망을 넓혀 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 락앤락은 베트남 중산층 주방의 대표적 아이템이 되고 오리온의 초코파이는 베트남 제사에서 단골로 놓이는 제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베트남 진출, 대형서비스업 보다 동네상권 소액투자가 더 용이
“한국인 특유의 근성 발휘할 때 지역 상권은 충분한 강점 발휘할 것”


한편에서는 대기업들의 진출보다 오히려 일부 소액투자를 통한 동네상권이 더 매력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는 대형 서비스업보다는 미용실, 편의점 등 동네상권에 특히 한국인은 강한 장점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대규모 서비스 기업들 간의 치열한 내수쟁투는 자본력과 기업의 시스템적 요소가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동네상권이야말로 한국인의 특성을 보여주면서 베트남 상권을 장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설명이다.

실제 호찌민의 한인음식점, 한인미용실 등으로 대표되는 한인 업종들은 여러 부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확장 추세다. 푸미흥에서 1호점을 시작한 한 삼겹살 전문점은 한인타운 내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진출 2년 만에 베트남 로컬 지역에 2, 3호점을 냈다.

호찌민의 한 교민은 “대표적 시내 중심지인 호찌민 1군은 아직도 빈 공터들이 많이 보인다”며 “어차피 이러한 지역들이 개발되고 활성화된다는 전제 하에 미개발 상권을 선점한다면, 신규 이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호찌민의 교민은 “베트남에서는 동네상권에 유독 강한 중국, 싱가포르인들보다는 한국 사람들이 주변에 가게를 차리는 것을 더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꼭 한류 업종이 아니더라도 동일업종을 피하고 좀 더 세련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쉽게 지역 내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베트남 무용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예전보다 더 많은 한국기업이나 한국인들이 베트남에 진출하고 있어 실패사례가 더욱 많아지고 있는 탓이다. 숫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경우의 수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분모가 늘어나면 분자 역시 따라간다는 대수(大數)의 법칙이다.

아세안 화교자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굴지의 기업들만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동네상권에서 출발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지금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의 동네상권은 화교계 주인들이 압도적이다. 결국 이들 화교 상권은 아세안 지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화교 자본의 근간이 되고 있다.

한재진 베트남 컨설팅 대표는 “아직까지 대부분 베트남인들로만 구성된 동네상권은 한국인들에게는 최대의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부분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경쟁에 단련되고 전략적 사고를 하는 성향이 여느 국가와 비교해도 앞서는 장점”이라며 “최근 대대적으로 본토 중국인들이 베트남에 들어오면서 베트남 골목상권에도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 어쩌면 화교 등 외국 상권들이 자리잡지 못한 지금이 베트남 지역상권에 진출할 수 있는 마지막 적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