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김상용(仙源 金尙容․1561~1637)과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1570~1652) 형제는 여전히 조선시대 절의와 명분의 상징이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도성이 청나라 군대에 함락 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상헌은 남한산성에서 항복에 반대해 결사항전을 주장하다 청나라에 끌려가 옥고를 치러야 했다.
김상헌은 말년에 남양주 와부의 석실촌에서 기거했다. 당시 조선에선 청음 가문에 대한 존숭의 분위기가 높았다. 김상헌이 세상을 떠나자 유림들은 김상용 김상헌 형제의 충절과 지조를 기리기 위해 서원을 창건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이에 힘입어 1656년 석실서원(石室書院)이 창건되었다. 석실서원은 석실촌에서 좀 떨어진 한강변에 세워졌다. 이어 1663년 석실사(石室祠)라는 편액을 하사받고 사액(賜額)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97년엔 김수항, 민정중, 이단상이 배향되었고 이후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원행, 김이안, 김조순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대표적인 서인노론계 서원이었던 석실서원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단순히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건물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석실서원이 있었던 곳은 남양주시 수석동 한강변의 미음촌(渼陰村). 지금은 양주 조씨 사당인 영모재 뒤편에 석실서원 터였음을 알리는 표석만 뎅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이다. 현장에 가도 석실서원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이 석실서원을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겸재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를 개척한 인물. 중국풍의 산수, 관념 속의 산수가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렸기에 진경산수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겸재는 우리 산수를 우리 시각으로 바라보고 우리 방식으로 그려낸 창조적 화가였다. 그의 진경산수화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시각을 확 바꿔놓았다. 나아가 우리 국토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겸재를 통해 조선의 화단(畫壇)은 비로소 진정 조선다운 산수화를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겸재를 두고 ‘조선의 화성(畫聖)’이라 칭한다.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 꽃핀 한강변 석실서원
이 무렵 북악산 인왕산 자락은 안동 김씨 청음 가문의 세거지(世居地)였다. 또한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관아재 조영석(觀我齋 趙榮祏) 등 당대 최고의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거점 삼아 문화예술을 논하고 공유하고 있었다. 그 공유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로 안동 김씨 6창(六昌)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청음 김상헌의 증손이자 김수항의 여섯 아들로, 김창집(金昌集),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김창업(金昌業), 김창즙(金昌緝), 김창립(金昌立)을 가리킨다. 겸재는 37세가 되던 1713년 스승으로 모시던 김창협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보지 않고 벼슬에 나아갔다. 겸재는 김창협뿐만 아니라 김창흡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김창협은 그의 나이 44세 때인 1695년부터 한양의 북악산 인왕산 자락인 장동을 떠나 남양주 한강변 미호(渼湖)에 터를 잡았다. 석실서원에서 가까운 곳이다. 그는 이곳에 모래밭이 세 개 있다고 하여 삼주(三洲)라 이름 붙이곤 여기 삼산각(三山閣)을 짓고 살았다. 그리곤 석실서원에서 강학을 펼치자 곳곳에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석실서원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거기 이병연, 정선, 조영석도 포함되었다. 당시 겸재는 20세였고, 그 때부터 석실서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한양에서 배를 타고 한강 물길을 거슬러 남양주를 오갔을 것이다. 이렇게 김창협, 김창흡 대에 이르면 한양의 북악산 인왕산 자락에서 생활하던 추종 세력들이 석실서원에 본격적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겸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84세까지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우리 국토를 직접 답사하고 그린 진경산수화가 아닐 수 없다. 정선이 관심을 둔 우리 산천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자신이 살았던 북악산 인왕산 일대는 물론이고 한양 근교의 명승, 금강산, 동해안의 관동팔경 등 전국 곳곳을 훑었다.
겸재는 65세 때인 1741년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을 그렸다. 한양과 주변 풍경을 그린 화첩이다.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으며 수록 작품은 총 33점. 여기 한강 주변을 그린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배를 타고 한강 주변의 경치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린 작품들이다. 이들을 보면, 지금의 지명과 일치하는 그림도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을 그린 ‘압구정(狎鷗亭)’, 광진구 한강변을 그린‘광진(廣津)’, 송파구의 한강변을 그린‘송파진(松坡津)’ 등이다. 현재 서울의 간송미술관이 ‘경교명승첩’을 소장하고 있다.
신안동 김씨 김창협 김창흡 후원 받은 겸재
‘경교명승첩’에는 ‘미호(渼湖)’ 라는 제목의 그림 두 점이 있다. 하나는 석실서원과 주변을 그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창협이 짓고 살았던 삼산각과 주변을 그린 것이다. 미호는 석실서원과 미사리 일대의 한강이 호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예로부터 한강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정평이 났다.
‘미호-석실서원도’를 보면, 한강에서 바라본 석실서원과 주변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화면 왼쪽으로, 강변 언덕 위 기와집이 몇 채 보이는데 이것이 석실서원이다. 그 오른쪽 아래의 초가는 서원을 지키고 관리하거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추정된다. 초가들 주변으로는 목책이 쳐져 있다. 당시 석실서원에는 원생이 20명, 일하는 사람 50명 정도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와집 석실서원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전체 화면의 한 가운데에는 큼지막한 기와집이 있다. 이것이 청음 가문의 별서(別墅)일 것으로 추정한다. 물가 쪽으로 바위들이 몇 개 있고 그 앞 백사장 쪽으로 배 한 척이 평화롭게 떠있다.
겸재는 그 명성에 걸맞게 석실서원과 주변 풍광을 최대한 생생하게 그렸다. 집 한 채 목책 하나까지 말이다. 오랫동안 석실서원과 미호 일대를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따라서 석실서원의 위치, 건물 규모 등을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밝고 연한 초록빛 톤이다. 분위기와 색채로 보아 생동감 넘치는 이른 봄 같아 보인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미술연구소장은 “이들(이병연, 정선 등)이 석실서원과 삼산각을 얼마나 자주 드나들며 진경문화 배양에 주력했겠는가 하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겸재가 이곳을 소재로 손금 보듯이 세세히 그려낼 수 있었던 이유도 알 만한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서원은 자취없고 경교명습첩에만 남아
석실서원의 의미를 두고 평가는 다양하다. 충절의 상징 공간으로 조선의 자부심을 고양했다는 평가도 있고, 조선중화주의 철학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도 있다. 조선 후기 노론계 서원으로 당쟁의 한 축이 되고 급기야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뿌리가 되었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다양한 평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진경문화의 산실이었다는 점이다.
석실서원은 남양주와 한양의 북악 인왕을 한강의 물줄기로 연결하면서 조선의 진경문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1745년부터 김원행이 석실의 강학에 가세하면서 학문의 포용성과 개방성이 확산되었고 동시에 북학사상의 잉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 후기 위대한 문화의 물줄기는 이렇게 남양주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진경문화의 산실이었음을 웅변하고 그 가치와 미래를 논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은 쓸쓸하다. 유구(遺構) 흔적은 하나도 없이 사라졌고 표석 하나만 쓸쓸히 서있을 뿐 주변은 옹색하고 어수선하다. 절경이었던 바로 앞 한강의 미호도 제방공사로 인해 옛 분위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겸재 정선의 그림이 남아 있으니 이와 함께 석실서원의 흔적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석실서원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덜렁 서 있는 표석 하나만으론 곤란하다. 그건 조선 진경문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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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지원-남양주시(시장 조광한)
협찬-MDM그룹(회장 문주현)
도움말-남양주시립박물관 김형섭 학예사
참고문헌
1. 겸재 정선, 현암사, 최완수
2. 남양주 석실서원, 경인문화사, 윤종일 외
3. 조선후기 석실서원의 위상과 학풍, 조선시대사학보 11집, 조준호
4. 18세기 후반 석실서원과 지식·지식인의 재생산, 역사와담론 66집, 조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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