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행복한 도시' 항저우의 매력

2019-12-1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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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 13년째 10대 '행복도시' 선정

유구한 역사·수려한 풍광, 애향심 대단

부촌에서 알리바바 둥지 튼 IT 메카로

교통·위생 등 선진적, 젊은층 선호 1위

항저우를 가로지르는 첸탕강변의 전경.[그래픽=이재호 기자]


중국 신화사 계열의 주간지 랴오왕(瞭望)은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중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10곳을 선정해 발표한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돼 13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중국인들도 "이번에는 우리 도시가 포함됐을까"라며 꽤나 관심을 보인다.
관영 매체의 발표인 만큼 선정 작업에도 공을 들인다. 자연환경·경제·취업·위생·교육·치안 등 12개 항목에 걸쳐 평가가 진행되며 올해의 경우 연인원 10억명이 설문 조사에 참여했다.

특히 해당 도시 거주민의 정체성과 소속감, 안정감, 만족감 등이 높은 비중으로 반영되는 게 특징이다. 그 도시에 살며 체감하는 행복 지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올해의 행복 도시는 청두에 이어 항저우·닝보·시안·광저우·창사·원저우·타이저우·퉁촨·쉬저우 등의 순이었다.

명단에 자주 이름을 올리는 단골손님이 있는가 하면 매년 새 얼굴도 등장한다.

시기별로 중국인이 선호하는 도시 유형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고질적인 대기오염·교통난·고물가 등이 심화하면서 최근에는 명단에서 모습을 감췄다.

2010년대 초반에는 톈진과 충칭 등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른 도시들이 주목을 받다가, 201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첨단산업이 발전하고 청결하며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시가 고득점을 획득하는 추세다.

이 와중에 13년 연속 10대 행복 도시로 선정된 곳이 있다. 그중 7년은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물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 중 하나. 저장성의 성도 항저우다.

지역과 세대, 계층을 아우르는 매력을 가진 도시 항저우를 찾았다.

◆애향심 최고, 토박이 비중 압도적

명·청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과 한나라·당나라의 도읍이었던 시안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광시좡족자치구의 구이린은 카르스트 지형이 빚어낸 절경이 천하제일로 꼽힌다.

항저우는 베이징·시안의 역사적 가치와 구이린에 필적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모두 갖춘 도시로 평가받는다. 실제 과거 남송의 수도였던 항저우는 아름다운 시후(西湖)와 대운하, 량주(良渚) 신석기 유적지 등 3개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항저우를 좌우로 가로지르는 첸탕(錢塘)강을 지날 때 보니 유람선은 물론 크고 작은 화물선까지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베이징부터 항저우까지 1515㎞를 잇는 대운하의 흔적이다.

첸탕강 북쪽에 위치한 시후는 동서 3.3㎞, 남북 2.8㎞, 둘레 15㎞의 자연호다. 1위안짜리 지폐 뒷면의 배경이기도 하다.

베이징 이화원 내 인공호인 쿤밍후(昆明湖)는 시후의 풍광에 반한 중국 황제들이 베껴 만든 것이다.

시후를 거닐다 보면 사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들이 들려온다. 시후변의 식당과 카페, 주점은 중국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런 환경에 터를 잡고 살아온 항저우 토박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1949년 신중국 수립 이후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 수많은 곡절 속에서도 항저우가 중국 대도시 중 이례적으로 높은 현지인 비율을 유지해 온 이유다.

상주인구가 1000만명에 육박하는 항저우의 외지인 비율은 27% 수준에 불과하다. 상하이(40.5%)와 광저우(38%), 베이징(37.3%) 등의 외지인 비율과 비교하면 격차가 확연하다. 그만큼 토박이들의 정착률이 높다는 뜻이다.

명·청 시대 저잣거리를 보존해 놓은 시탕구전(西塘古鎭)을 둘러보다가 항저우에서 나고 자란 73세의 천쿠이(陳揆)씨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같은 저장성 내의 닝보와 원저우 사람들은 외지로 나가 돈을 버는 걸 선호하지만 항저우 사람은 날품팔이를 해도 고향을 등지지 않는다"며 "(항저우 명물인) 룽징차(龍井茶)와 시후만 있으면 지상 낙원"이라고 웃었다.

항저우에서 만난 또 다른 현지인은 "예전부터 항저우에서는 상하이 사람을 만나면 '상하이 거지가 왔다'고 놀리곤 했다"고 말했다.
 

명·청 시대 저잣거리를 보존해 놓은 시탕구전(西塘古鎭)과 항저우 한복판에 자리한 자연호 시후(西湖)의 전경. [사진=이재호 기자 ]


◆상하이 무시하는 몇 안 되는 곳

이처럼 오만함에 가까운 자부심은 경제적 풍요와도 연관 깊다.

항저우 일대는 연중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온화한 기후 덕분에 삼모작(벼 2회·유채 1회)이 가능한 중국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였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비단 산지이며 풍부한 어류 자원, 값비싼 진주 양식지로도 유명하다.

예부터 '(항저우를 중심으로 한) 저장성이 풍년이면 천하가 태평하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대도시들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이룬 데 반해 항저우는 천혜의 관광 자원을 활용한 서비스업이 발달해 왔다.

고지식한 국유기업 대신 자유분방한 민영기업이 항저우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1999년 마윈이 창업한 알리바바가 대표적이다.

알리바바의 본사 소재지인 항저우는 자연스럽게 민영기업의 요람,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됐다.

항저우의 IT 인재 유입률은 중국 1위이며 하루 평균 600개의 기업이 탄생한다. 인구 8명 중 한 명꼴로 최고경영자(CEO) 명함을 꺼내 든다.

항저우 사람들은 굴뚝산업 없이 중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도시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난해 말 기준 항저우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4만2683위안(약 2417만원)으로 베이징(13만9678위안)이나 상하이(13만5134위안)보다 높다.

항저우에서 만난 고광호 대한항공 중국지역본부장은 "항저우의 소비력과 구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체감했다"며 "한국을 비롯해 해외 여행을 하는데 경제적 부담을 거의 느끼지 않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10월부터 인천~항저우 노선을 신규 취항하고 주 2회 운항 중이다.

◆젊은층 취업 선호 1위 도시

지난해 한국무역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청년 구직자가 가장 선호하는 도시로 항저우가 꼽혔다.

길거리만 나가 봐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뒷골목은 차치하고 대로변도 어수선하고 너저분한 베이징과 달리 항저우의 거리는 쓰레기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드물게 쓰레기 분리 수거를 시행 중인 항저우는 '사회 신용 제도'로 쓰레기 무단 투기 행위에 페널티를 부과 중이다.

또 신호등 없는 짧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기다려주는, 베이징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경험도 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시후 때문에 도로망 설계에 어려움을 겪는 항저우는 중국에서 알아주는 교통 지옥이었다.

2017년 알리바바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시티 브레인(城市大腦)'이 도입되면서 도심의 차량 통과 시간이 15% 줄고 주행 속도는 15% 증가했다.

AI 및 빅데이터 기술과 시내 곳곳에 설치된 5만대 이상의 폐쇄회로(CC)TV로 교통 흐름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고 있는 덕분이다.

IT 기술력은 각종 민원과 의료·양육·요양 분야의 원스톱 처리 서비스 시행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중국 스마트시티 백서'를 살펴보면 항저우의 '인터넷+사회서비스 지수'는 383.14로 중국 1위였다. 2위인 상하이(237.23)와의 차이가 상당하다.

중국인들은 '부유하고 미남·미녀가 많은 쑤저우에서 태어나(生在蘇州), 풍광이 아름답고 삶의 질이 높은 항저우에서 살다가(住在杭州), 관 짤 나무가 많은 류저우에서 죽고 싶다(死在柳州)'고들 얘기한다.

오래전부터 항간에 떠돌던 이 옛말 중 일부가 이제서야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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